서점가는 대통령이 읽는다는 <칼의 노래>를 찾는 이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당선 이후 힘들고 질퍽거리는 국정 운영의 혼란 속에 그가 '이순신'을 읽는다는 사실은 궁금증을 유발하기에 충분하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충무공 이순신이란 암울한 군사 독재 시절에 오직 무인이라는 사실만으로 엄청나게 추앙 받은 역사적 인물이 아니었던가. 역사적 필요에 의해 최고로 추앙 받은 한 무인의 삶을 새롭게 조명하였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책은 화제가 될 만했다.
특히 언론사 출신 인기 작가 김훈의 글 솜씨로 새롭게 탄생한 이순신의 삶은 독특하다. 기존의 위인전에서 그는 '위대하고 리더십 있으며 뛰어난 지혜와 인품을 가진 무인'으로만 묘사되었다. 그러나 이 책에서 그는 유신시절 미화되었던 '위대한 이순신 장군'의 모습은 아니다.
<칼의 노래>에서 이순신은 극도의 혼란과 심적 고통을 지닌 지극히 '인간적인' 존재로 묘사된다. 군사 정권에 의해 왜곡되고 과장되었던 그의 모습은 철저히 파괴된다. 작품의 서술자이자 주인공인 이순신은 무력으로 모든 것을 통제하는 군사 독재 시절의 우상이 아니다.
이 책에서 이순신은 고뇌와 책임감 속에 존재하는 실체로서 독자들 앞에 드러난다. 나라의 운명을 등에 지고 있는 한 '인간'으로서의 이순신이 느낀 고뇌는 이 사회의 지식인으로서 작가 김훈이 느끼는 고뇌와 유사할지도 모르겠다.
저자 김훈은 책의 서문을 통해 사회의 한 지식인으로서 느끼는 자신의 절망과 회의감을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2000년 가을에 나는 다시 초야로 돌아왔다. 나는 정의로운 자들의 세상과 작별하였다. 나는 내 당대의 어떠한 가치도 긍정할 수 없었다. 제군들은 희망의 힘으로 살아 있는가. 그대들과 나누어 가질 희망이나 믿음이 나에게는 없다. 그러므로 그대들과 나는 영원한 남으로서 서로 복되다. 나는 나 자신의 절박한 오류들과 더불어 혼자서 살 것이다."
작가가 이 사회에 대해 느끼는 회의와 환멸감은 그가 묘사하는 이순신의 모습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칼의 노래>에서 백의종군하는 이순신은 임금의 정책이나 관리들의 처신에 대해서 불만을 갖지만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는 존재로 표현된다. 그는 다른 무엇보다 조선의 백성들을 생각하는 무인이다.
"임금은 진실로 종묘사직 제단 위에 가토의 머리를 바치고 술 한 잔을 따르고 싶었을 것이다. 나는 정치적 상징성과 나의 군사를 바꿀 수는 없었다. 내가 가진 한 움큼이 조선의 전부였다. 나는 임금의 장난감을 바칠 수 없는 나 자신의 무력을 한탄했다. 나는 임금을 이해할 수 있었으나, 함대를 움직이지는 않았다."
이순신이 겪는 심리적 혼란과 고통, 나라에 대한 책임감과 자신의 미래에 대한 생각은 대통령으로서 노무현이 겪는 고뇌일지도 모르겠다. 비자금 수사와 국정 운영의 난맥 속에서 대통령 노무현 또한 '과연 무엇이 진리이며 정의인가' 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고뇌하는 이순신에게 칼은 상징적인 대상이다. 그는 칼이 '뜨거운 물건인지 차가운 물건인지' 구별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하여 칼이 살기(殺氣)를 품은 끔찍한 물건은 아니다. 칼은 이순신을 존재하게 하는 유일한 힘이자 열정이다.
그것은 또한 자신을 지탱시키는 힘이면서 자존심이다. 끝까지 이순신이 믿는 존재는 오로지 '칼' 뿐이다. 소설의 구성이 진행될 수록 이순신은 자신이 '죽을 자리'를 찾는다. 그것은 올바르게 죽고 싶은 자신의 의지이며 세상을 헛되이 보내지 않으려는 마지막 노력이다.
"그 소통되지 않는 고통과 무서움의 운명 위에서, 혹시라도 칼을 버리고 적과 화해할 수도 있을 테지만 죽음은 끝내 소통되지 않는 각자의 몫이었고 나는 여전히 적의 적이었으며 이 쓰레기의 바다 위에서 나는 칼을 차고 있어야 했다. 죽이되, 죽음을 벨 수 있는 칼이 나에게는 없었다. 나의 연안은 이승의 바다였다."
그렇다고 하여 칼이 그저 '따뜻한 존재'로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니다. 남쪽 바다를 온통 적의 피로 염(染)하고 싶다는 그의 욕망은 적에 대한 증오이며 깊은 분노이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실행하지 못하며 자신의 죽을 자리를 찾아 최후의 전투를 벌인다.
"적이 죽어 가는 것인지 내가 죽어 가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죽음을 언어로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희망을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언어로 개념화되는 어떠한 미래도 생각하지 않았다. 희망은 멀어서 보이지 않았고, 희망 없는 세상에서 죽음 또한 멀어서 보이지 않았다."
절망의 늪에서 희망을 찾기란 어렵고도 어려운 사회, 정권과 임금의 엎치락뒤치락하는 세력 싸움의 연속. 그 속에서도 끝까지 칼을 놓지 않으며 적과의 대결을 유지하는 이순신은 어딘지 모르게 대통령 노무현이 추구하는 삶의 모습과 닮아 있는 듯하다.
하지만 이 길고 긴 싸움에서 결국 제풀에 물러나는 일본군을 쫓다가 장렬히 전사할 것인지, 아니면 적절한 타협점을 찾아 새로운 길을 열지는 본인의 선택이다. 이순신은 끝까지 칼을 놓지 않고 적을 쫓아가 죽음을 맞이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선택하는 그 길이 어떤 것일지는 모르지만, 이순신처럼 이 사회를 '절망'으로 단정하고 '죽음'으로 향하는 길은 아니길 바란다. 그리고 또 이 사회를 '희망으로 보지 않는' 작가 김훈과도 다른 방향이기를 바란다. 우리에게는 이제 칼의 양면성 '따뜻함'과 '차가움'의 공존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