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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의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손길이 부쩍 늘어났다고 합니다. 올해 중으로 사극으로 방송되는 탓도 있겠지만 아마도 노무현 대통령이 이 책을 읽는다는 언론 보도가 큰 원인으로 짐작됩니다.
작가 김훈의 <칼의 노래>는 좋은 작품입니다. 하지만 저는 우려스럽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어떤 고뇌를 하실까 생각하면 그렇습니다. 그러기에 조용히 그 책을 덮으시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아무리 노무현 대통령을 지지하는 국민의 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어찌 책 읽을 자유까지 침범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저는 욕먹을 각오하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건 노무현 대통령을 걱정하기 때문입니다. 허무는 짙어지고 절망은 새로워지는 전장의 나날을 지켜야 하는 이순신 장군의 심정보다는 인내할 줄 알고 있는 사람을 만나 보라 권하고 싶습니다. 뜨거운 지 차가운 지 알 수 없어도 버릴 수 없는 칼을 갖고 군사들을 이끄는 지도자보다 자신을 걱정스레 바라보는 사람들을 안심시키는 포용력 깊은 사람을 만나 보라 권하고 싶습니다.
어쭙잖은 지식으로 제가 책을 하나 추천하려 합니다. 아마 노무현 대통령도 아실 것입니다.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감옥에서 기나긴 세월을 보냈던 신영복씨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입니다.
"없는 사람이 살기는 겨울보다 여름이 낫다고 하지만, 교도소의 우리들은 없이 살기는 더 합니다. 차라리 겨울을 택합니다. 왜냐하면 여름징역의 열가지 스무가지 장점을 일시에 무색케 해 버리는 결정적인 사실-여름징역을 바로 옆사람을 증오하게 한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모로 누워 칼잠을 자야 하는 좁은 잠자리는 옆 사람을 단지 37'C의 열 덩어리로만 느끼게 합니다. 이것은 옆 사람의 체온으로 추위를 이겨 나가는 겨울철의 원시적 우정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형벌 중의 형벌입니다. 자기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을 미워한다는 사실, 자기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으로부터 미움받는 사실은 매우 불행한 일입니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중에서)
이 책은 현대 고전 중 하나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동시에 많은 사람들이 내용을 보지도 않고 외면하는 책이기도 하지요. 아마도 통혁당 사건에 연루된 작가의 내력이 예비 독자들로 하여금 편견에 사로잡게 하기 때문으로 생각됩니다. 하기는 그럴 수도 있습니다. 20년이나 교도소에 있던, 그것도 한국에서 아직도 용납되지 않는 사건으로 연루됐으니 그럴 법도 합니다.
그러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사색'만이 있을 뿐 어떤 정치적인 의견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세상에 대한 원망이나 고뇌가 아니라 여유가 가득합니다. 자신을 바라보는 친지들에게 꼬박꼬박 안심시키려고 노력하는 신영복씨의 자세가 묻어나 오히려 이 사람이 무기수가 맞는가 하는 의문이 들 정도입니다. 더욱이 교도소에서 사람들을 만나며 깨달음을 얻어 가고 있음을 귀띔해 주기도 합니다.
"한 그루의 나무가 되라고 한다면 나는 산봉우리의 낙락 장송보다 수많은 나무들이 합창하는 숲 속에 서고 싶습니다. 한 알의 물방울이 되라고 한다면 저는 단연 바다를 선택하고 싶습니다. 그리하여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나지막한 동네에서 비슷한 말투, 비슷한 욕심, 비슷한 얼굴을 가지고 싶습니다."
"사람의 아름다움도 이와 같아서 타고난 얼굴의 조형미보다는 은은히 배어나는 아름다움이 더욱 높은 것임과 마찬가지입니다. 뿐만 아니라 인생을 보는 시각도 이와 다르지 않다고 믿습니다. 첩경과 행운에 연연하지 않고, 역경에서 오히려 정직하며, 기존과 권부에 몸 낮추지 않고, 진리와 사랑에 허심 탄회한... 그리하여 스스로 선택한 '우직함'이야말로 인생의 무게를 육중하게 해주는 것이라 생각합니다."(<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중에서)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 책을 여유롭게 읽고 있지만 생각할수록 신영복씨는 대단한 사람입니다. 영혼까지 빼앗으려는 캄캄한 감방에서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했으니 말입니다. 분노를 다스리고 사람들을 향해 권하는 신영복씨의 사색은 그러기에 더욱 빛을 발합니다. 그리하기에 많은 사람들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본 후에 신영복씨를 존경해 마지않습니다.
사면초가라고 표현할 수 있겠습니다. 보수언론과 보수세력의 견제 속에서 현재 대통령직에서 잠시 손을 뗀 노무현 대통령은 결코 편안 상태만은 아닐 것입니다. 나라에 대한 걱정, 국민에게 다하지 못한 책임감, 그리고 당신을 견제한 그들에 대한 다스리기 어려운 마음….
그러나 어찌하겠습니까. 당신은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사람입니다. 국민 속에서 있는 사람입니다. 당신이 지도자로서, 무사의 고뇌를 겪기보다는 인내할 줄 알고 어려운 위치에서도 사람들을 안심시키는 그런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 또한 국민들을 위해 우직함을 선택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기에 <칼의 노래>를 덮으시라고,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읽으시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당신이 나무들의 합창으로 가득한 울창한 숲 속의 한 그루 나무가 되기를 바래 마지않습니다.
"징역살이 속에는 물론 토요일 오후의 그 상쾌한 여유가 있을 리 없습니다. 그러나 무기 징역이라는 길고도 어두운 좌절 속에는 괭잇날을 기다리는 무진장한 사색의 광상이 원시로 묻혀 있음을 발견하였습니다. 저는 우선 제 사고의 서랍을 엎어 전부 쏟아내었습니다. 그리고 버리기 시작하였읍니다. 아까울 정도로 과감히 버리기로 하였읍니다. 지독한 '지식의 사유욕'에, 어슬픈 '관념의 야적'에 놀랐읍니다. 그것은 늦게 깨달은 저의 치부였읍니다. 사물이나 인식을 더 복잡하게 하는 지식, 실천의 지침도, 실천과 더불어 발전하지도 않는 이론은 분명 질곡이었읍니다. 이 모든 질곡을 버려야 했읍니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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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의 노래
김훈 지음, 문학동네(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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