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2004 파리서적박람회(3월 19일~3월 28일)에 참석한 쟈끄 베르제스. 베르제스는 최근 '국가의 범죄'라는 저서를 출판했다
2004 파리서적박람회(3월 19일~3월 28일)에 참석한 쟈끄 베르제스. 베르제스는 최근 '국가의 범죄'라는 저서를 출판했다
사담 후세인은 이라크 형법재판소에서 200여명의 후세인 지지자들과 함께 재판을 받을 것으로 알려졌으나, 베르제스는 지난달 28일 <라디오 유럽1>과의 인터뷰에서 "이라크 법정이 될지 혹은 미국 법정이 될지 그도 아니면 국제 법정이 될지는 아직 미지수"라고 말했다.

베르제스는 만약 그가 후세인의 변호를 담당하게 될 경우, "과거 후세인을 만난 일이 있거나 혹은 지원한 적이 있는 서방 지도자들을 증인 자격으로 법정에 세울 계획"이라고 밝혔다.

"내일 당장 소송이 시작된다고 해도 법률상 후세인의 무죄를 예측할 수 있다"고 전제한 베르제스는 "만약 후세인을 죄인 취급할 경우 부득이하게 '후세인은 서방의 모든 지도자들의 친구'였음을 명확히 해야한다, 후세인은 그들의 친구였을 뿐만 아니라 동맹이기도 했다"고 역설했다.

이어 베르제스는 후세인에게 부과된 '민간인 학살죄'를 언급하며, "가장 많은 민간인(어린이와 노인 50만여명)의 죽음은 이라크에 가해진 통상제재의 결과였다"고 주장했다. 다시 말해 병원과 오수 처리 공장을 폭격한 것은 사담 후세인이 아니라 미국과 영국이었으며, 결과적으로 '반인도범죄와 인간 살육은 미국과 영국의 몫'이라는 것.

"럼스펠드와 키신저, 증인 자격으로 법정에 세울 것"

이와 관련해 베르제스는 자신이 변호사로 확정될 경우, 후세인 재판정에 도널드 럼스펠드 미 국방장관과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을 출두시킬 예정이라고 지난달 28일, 라디오 유럽1(Europe1)을 통해 밝혔다. 럼스펠드는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제조를 위한 '화학 성분과 독소 외판원'으로 증인 채택될 것으로 보인다.

1984년 럼스펠드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밀사 자격으로 이라크를 방문한 것과 관련, 베르제스는 "지금은 그 존재 여부조차 불투명하지만 대량살상무기를 판매한 것은 미국과 영국"이라며 "후세인이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무기는 당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잘 알고 있던 서방 국가 모두'가 제공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베르제스는 이것이 바로 이번 변론의 핵심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량살상무기를 이라크에 판 것은 미국이라는 사실을 망각한 채 후세인에게 대량살상무기 보유 가능성을 추궁하는 것은 언어도단"이라고 강하게 비판한 베르제스는 다음과 같이 말하며 현재 펜타곤에 있는 럼스펠드는 당연히 후세인 편이 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당시에 일어난 모든 일들이 루머였는지 아니었는지 혹은 당시 이라크 정부의 동맹국이 져야할 책임은 무엇인지 밝혀내야 한다."

"미국 등 제네바협약 위반, 국제형사재판소에 제소할 것"

지난달 27일 저녁, 불어권에 송출되는 TV5에 출현한 베르제스는 사담 후세인 체포 직후 미국의 태도를 아래와 같이 강력하게 비난했다.

"후세인이 체포된 이후 마치 수의사처럼 보이는 의사 한 명이 후세인의 치아와 머리카락, 혀를 검사하는 장면이 전세계에 공개됐는데, 이것은 후세인을 장터의 짐승처럼 취급한 것이나 다름없다."

죄수를 심문, 검사, 전시한 것 그리고 바닥에 누운 죄수의 가슴에 군홧발을 얹고 있는 모습을 카메라로 찍는 것은 명백한 제네바협약 위반이라고 베르제스는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베르제스는 미국과 영국, 스페인, 이탈리아, 폴란드 등의 유럽 국가들이 제네바협약을 비준했는지 여부를 확인한 후, 이들 국가의 제네바협약 위반 사실을 국제형사재판소(ICC)에 제소하겠다고 말했다. 동시에 '적십자의 보호 아래 후세인을 접견할 수 있도록 적십자국제위원회(IRC)에 요청할 것이며, 또 제네바협약 보장을 요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내가 두려운 것은 재판전에 후세인을 죽일지 모른다는 것"

변호사 쟈끄 베르제스는 누구?
악명 높은 인물들 변호 자청해온 화제의 인물

프랑스에서 가장 언론에 많이 노출되기로 유명한 변호사 베르제스는 경력 또한 화려하다. 작은 키에 낚시와 엽궐련을 즐기는 베르제스는 태국에서 태어났으며 프랑스인 아버지와 베트남인 어머니를 두고 있다.

어린 시절을 레위니옹 섬(Reunion, 아프리카 동쪽 인도양 상의 프랑스령)에서 보내고 17세때 레지스탕스 그룹인 프랑스 자유군(FFL)에 뛰어들었으며 1945년 공산당에 입당했다.

1951년부터 1954년까지 국제공산당운동 간부로서 프라하에 머물렀으며 1955년 말, 젊은 변호사 신분으로 알제리 민족해방전선(FLN)을 위해 싸우기도 했다. 1957년 프랑스공산당(PCF)을 떠난 베르제스는 알제리에서 발생한 다수의 폭탄 테러 주범인 쟈밀라 부히레드(Djamila Bouhired)와 결혼했다. 1970년과 1978년 사이 행방불명됐던 베르제스는 비밀리에 폴포트(Pol Pot)가 이끄는 크메르루즈(Khmers rouges)에 협력했던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변호의 근거가 희박한 사건들을 자청하는 등 도발적인 취향으로 이름난 베르제스가 지금까지 변호를 맡았던 수많은 인물 중에는 알제리 전쟁 당시의 민족해방전선 조직원들을 비롯해 '리용의 백정'으로 알려진 옛 게슈타포(나치 독일의 비밀 경찰) 고위 인사 클라우스 바르비(Klaus Barbie), 연쇄살인범 샤를르 소브라즈(Charles Sobrhraj), 테러리스트 죠르쥬 이브라힘 압델라(Georges Ibrahim Abdallah), 우리에게는 '자칼'이라는 이름으로 유명한 국제적인 테러리스트 카를로스(Carlos) 등 악명 높은 인물들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최근에는 2002년 유럽 인권재판소에서 전 유고 대통령 슬로보단 밀로세비치(Slobodan Milosevic)를 변호한 바 있다. / 박영신
한편, 베르제스는 후세인의 재판이 불가능할지 모른다는 예상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재판이 아니라 재판 이전에 그들이 후세인을 죽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라디오 <프랑스 엥떼르(France Inter)>에서 이와 같이 말한 베르제스는 미국 정부가 피고석에 서지 않는 한, 소송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베르제스는 현재까지 후세인을 상대로 진행되고 있는 소송절차가 전무할 뿐만 아니라, 아직 판사, 검사도 지명되지 않은 상태인 터라 후세인의 소송이 원만하게 진행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확신하지 못했다.

또 베르제스는 "후세인 체포 직후, 그의 시선은 정상이 아니었고 동작도 어설펐다"며 "죄수에게 약을 먹일 수 있는 사람들은 죄수를 죽일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뿐만 아니라 "재판을 통해 그들(?)의 책임이 드러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점령군이 후세인을 죽이는 것을 용납해서는 안 된다"라고 경고했다.

이어 그는 "재판을 하기 전임에도, '사담 후세인은 유죄이며 사형돼야 마땅하다'는 부시 대통령처럼 후세인에게 압력을 가하는 정책만 있을 뿐"이라며, "진실을 밝히는 길은 오직 재판뿐이며, 지난 일에 대한 책임을 한 사람 또는 한 쪽에만 전가시키려는 것을 용인할 수 없음이 내 변론의 원칙"이라고 말을 맺었다.

아직 베르제스가 후세인의 변호인으로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프랑스 현지 언론은 그가 후세인의 변호를 맡게 될 것을 기정사실화 하고 있는 눈치다. 실제로 베르제스가 후세인의 변호를 위해 프랑스와 알제리의 젊은 변호사들과 협력할 것으로 알려져 그 귀추가 주목된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