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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강임
4월의 제주도 동쪽 바다는 벌써 계절이 무르익어 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쪽빛바다 위에는 전설처럼 주렁주렁 오징어가 매달려 있었다.

봄 꽃 구경에 벅찬 가슴을 봄 바다에 가서 비워보자. 제주도 동쪽 해안도로를 타고 떠나는 여행은 바다를 담아 올 수 있는 풋풋함이 있었다. 벌써 봄 바다에는 봄처녀가 마중을 나와 있었다.

자동차의 창문을 열지도 않았는데도 어디선가 새어 나오는 바다냄새는 가슴을 두근거리게 한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바다냄새는 느껴봐야 그 맛을 알 수가 있다. 짭짤하면서도 풋풋한 실바람 같은 냄새가 차안으로 밀려 왔다.

ⓒ 김강임
벌써 하얀 백사장에는 멀리 수평선까지 달려간 사람들이 있었다. 마치 이들의 모습을 여름을 부르는 것 같았다. 물이 빠진 하얀 백사장은 겨우내 입었던 두꺼운 옷을 벗겨내고 있었다. 흰 속살을 훤히 드러내 보이면서….

제주도 동쪽에 자리잡은 행원과 한동 마을. 그 마을 동쪽 끄트머리에는 바다가 있었다. 그리고 그 바다에는 벌써 여름이 있다. 쪽빛바다는 계절을 건져내고 있는 사람들.

ⓒ 김강임
차 안에서 내린 남편과 나는 자동차의 트렁크 속에서 운동화를 꺼냈다. 백사장으로 달려가기 위해서였다. 하얀 백사장은 여름인데 백사장 한 켠 돌 틈에는 이제야 봄이 올라오고 있었다. 동글동글한 돌 틈에 파릇파릇 돋아나는 새싹. 그리고 바다 향기.

나는 그 돌 틈에 고여있는 바닷물에 손을 담갔다. 아직 한라산 백록담에는 잔설이 묻어있는데…. 백록담의 잔설이 녹아 흘러흘러 이곳까지 내려 왔다고 생각하니, 바닷물이 차갑게 느껴진다.

ⓒ 김강임
우리보다 바다를 먼저 마중 나온 사람들은 바다를 줍는 여인들이다. 옆구리에 무엇인가 차고, 긴 장화를 신고 바다 속에서 무엇인가를 건져내고 있는 여인들의 모습이 풍요로워 보인다.

저렇게 바다는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고 있는데, 우리는 자연에게 무엇을 돌려주었을까? 가슴이 뜨거워지는 순간이다.

ⓒ 김강임
김녕바다에는 보름의 물때를 만난 사람들이 백사장에 가득하였다. 물 빠진 바다 속에 않아 호미로 바다를 캐는 모습. 누가 넘실대던 바닷물을 다 건져 갔을까? 김녕바다 모래 속에서 바다를 캐는 사람들의 모습은 마치 추억과 낭만을 캐고 있는 것 같았다.

ⓒ 김강임
검은 갯바위 틈에서 보물찾기를 하는 젊은 부부의 모습. 무엇을 캐고 있는 것일까. 검은 비닐봉지에 담겨진 것은 아마 소라, 고동이 아니라 바다를 건져 올렸을 것이다.

그 꼬불꼬불 이어진 해안도로를 따라 가니, 갯바위에 않아 있는 강태공들의 모습이 신선처럼 보인다. 자신들의 범주 안에서 열심히 살다가 잠시 그 테두리에서 벗어나 여유를 즐기고 있는 사람들. 이렇게 바다는 우리에게 휴식의 공간을 제공하고 있었다.

ⓒ 김강임
잠시 우리는 갯바위에 앉아 보았다. 그리고 그동안 삶의 현장에서 정신없이 살아왔던 순간을 녹이기로 했다. 세상 속으로 들어가면 다시 시달리게 되는 경쟁의 틈바구니. 물이 빠져나가는 바다를 바라보며 내가 느낀 것은 가슴에 꽉 차 있는 욕망과 허영을 조금이라도 버릴 수 있는 작업이었다. 그러나 꽈 채워진 욕심의 용량을 몽땅 이 바다에 비워버리기엔 왠지 아쉬움이 많았다.

ⓒ 김강임
시커먼 갯바위는 마치 징검다리처럼 놓여 있다. 그 징검다리를 하나씩 건너본다. 갯바위에는 바다가 키워낸 양식들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톳과 우뭇가사리. 그리고 바위틈에서 자란 고동. 모두가 살아 숨쉬는 생물들이다.

바위에 뿌리를 내리고 바닷물을 영양분으로 먹고사는 사는 생물들. 잠시 먹이사슬의 피라미드가 생각났다. 아주 작은 생물들이 지구 곳곳에서 살아 숨쉬고 있다는 것을 잊은 채 살아오지 않았던가? 달리고 넘어지고 부서지면서 말이다.

ⓒ 김강임
갯바위 위에는 누군가가 바다 속에서 건져낸 바다선물이 한 소쿠리 담겨져 있다. 동쪽 마을에 사는 아낙네가 따 올린 바다 선물이다.

나는 그 아낙을 찾아가 "아주머니 이게 뭐예요?"라고 물었다. 그 아주머니는 "우뭇가사리! 아니 꽈" 라며 친절하게 대답해 준다. 김녕 바다에서 만난 아주머니는 다시 바구니 옆에 끼고 갯바위로 달려가고 있었다. 어쩌면 아낙에게는 동쪽 바다 에서 건져 낸 우뭇가사리가 보물이 아닐런지.

세상을 살다보면 같이 공유하며 살아가는 것들이 많다. 그것이 비록 아주 보잘것없는 작은 것들이지만, 그 작은 것들은 미처 우리가 보지 못했던 것들로부터 다시 깨어나게 한다.

ⓒ 김강임
끝없이 이어지는 제주의 동쪽 쪽빛 바다를 따라 달려 간 곳은 성산 일출봉 앞 바다였다. 일출봉이 보이는 식당에서 전복죽으로 바다를 목구멍에 삼키는 순간, 유리창에는 진주를 캐러 가는 해녀들의 그림이 그려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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