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민주주의의 대표적 방법인 '주민발의 조례청구권'이 오히려 주민의 참여를 가로막고 있어 이를 수정해야 한다는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달 30일 서울시 학교급식조례제정운동본부는 서울시민 14만6258명의 이름으로 ‘학교급식조례제정청구서’를 서울시에 제출하고 “주민발의 청구인 수를 축소하고 조례제정 청구 절차와 방식을 간소화해 시민들이 지방자치의 실질적인 주인이 될 수 있도록 관련법, 조례, 규칙을 조속히 개정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절차·방식 터무니없이 까다로워
현행 지방자치법 제13조에 따라 주민이 지방자치단체장에게 조례를 제정하도록 청구하기 위해서는 20세 이상 주민 총수의 20분의 1의 서명이 있어야 한다. 인구 700만 이상인 시도의 경우 14만명의 서명이 필요해 학교급식조례제정운동본부는 서울시와 경기도에서 이 같은 조건 때문에 지난해 10월부터 대대적인 서명운동을 벌여왔다.
그 결과 서울시는 14만6258명, 경기도는 16만6024명의 서명을 받아 서울시장과 경기도지사에게 급식조례제정을 청구할 수 있었다.
서울시 급식조례제정운동본부는 약 20만명의 서명을 받았지만 서명을 알아볼 수 없거나 주민등록번호, 주소가 미비한 서명은 자체 검열을 통해 걸러내는 작업을 1주일 가까이 해야 했다.
이를 정리한 문서파일도 디스켓에 들어가지 않아 CD로 제작했고 서명용지도 1톤 트럭 1대 분량이다. 서명을 받더라도 서명의 유효기간이 6개월밖에 안 되고 타인이 식별할 수 없는 서명(사인, sign)은 인정되지 않는 등 조건도 까다로워 이번 급식조례제정청구는 ‘기적’이라는 것이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서울시의회 심재옥 의원은 “14만명이라는 엄청난 서명을 요구하면서 사인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주민발의를 하지 말라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주민들의 개인정보보호에 대한 의식이 높아진 만큼 관련법의 개선이 있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심 의원은 “이렇게 서명을 해 조례제정청구를 하더라도 시장이 거부권을 갖고 있어 주민의 의지를 훼손할 수 있는 등 제도가 주민의 참여를 봉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시장의 거부권은 주민참여 봉쇄” 비난
서울시는 이번에 제출된 14만명의 서명을 각 구, 동별로 일일이 복사해 1주일간 열람할 수 있도록 이의신청기간을 두고 주민등록과 대조작업을 거쳐 본인 확인을 해야 한다. 서명이 모자랄 경우 5일간의 유예기간 동안 보완할 수 있다.
시민자치정책센터 김현씨는 “현재 지방자치법이 주민발의 수를 정한 규정을 고쳐 각 지역에서 주민발의에 필요한 주민 수를 정해야 하고 일정수의 주민서명을 받으면 조례청구가 아니라 지방의회에 ‘상정’할 수 있도록 개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한 김씨는 “주민들의 의식이 충분히 성숙했다”며 “직접민주주의를 경험할 수 있도록 주민 참여 통로를 넓혀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