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하의 유대인지구는 8세기 경 프라하시(市)가 타민족들의 박해와 배척에 방황하던 150여 명의 유대인들을 한 곳에 정착해 살게 함으로써 게토로 정착되었다. 그러나 프라하시가 게토 주변에 높은 장벽을 쌓아 유대인들을 다른 민족들과 격리시키면서 가난하고 황폐한 장소로 변하게 된 프라하의 게토는 결국 19세기말 시 행정부의 도시계획과 위생, 미관 등에 어긋난다며 해체되기에 이른다.
현재 프라하의 파리즈스카(Pařížská) 거리로부터 연결되는 구시가는 그 당시 유대인들이 거주하던 유대인지구로 남아있으나 지금은 게토의 사실상 의미보다는 시나고그(유대교회당)와 유대무덤 등 관광객들의 필수 방문지로 더 유명하며 ‘살바토레 페라가모’, ‘랄프 로렌’ 등의 고급 브랜드 상점들이 가득한 ‘부촌’으로 탈바꿈했다.
파리즈스카 거리에는 이른 아침부터 쇼핑을 시작하는 체코의 부자들과 외국인들로 붐빈다. ‘BMW’와 ‘메르세데스 벤츠’를 주차하고, ‘골든 리트리버’나 ‘말라뮤트’ 등의 값비싼 개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잉글리쉬 블랙퍼스트’와 ‘카페 라떼’로 브런치를 즐긴 후 한가로운 쇼핑을 하는 체코 신흥 부자들은 지도를 들고 다니며 바쁘게 시나고그를 찾아다니는 배낭여행객들과는 철저하게 구별된다.
체코는 1990년대에 실시된 여러 가지 경제 정책 등으로 인해 동유럽 국가중 슬로베니아에 이어 헝가리, 폴란드 등과 어깨를 겨루는 경제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만, 체코의 일반 국민들이 600코로나(현재 환전시세로는 3만원, 유럽 현지 물가로 치자면 2만원) 정도의 티셔츠도 비싸서 사기 망설인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파리즈스카 거리는 일반국민들에게 있어 오만한 거리일 뿐이다.
파리즈스카 거리는 유대인 지구를 재미있게 둘로 나누는 역할도 수행한다. 파리즈스카의 왼쪽으로는 으슥한 유대무덤과 소박한 분위기의 시나고그가 위치한다면, 그 오른쪽으로는 화려한 양식을 자랑하는 스페인 시나고그가 자리한다.
제일 처음 방문한 곳은 핀카소바 시나고그다. 2차 세계대전 중 나치의 탄압에 끔찍하게 죽어간 유대인들의 이름이 벽면 가득 적혀있는 곳으로 유명한 핀카소바는 참혹하고 으슥했다. 셀 수 없는 유대인들의 이름은 유대 알파벳의 순서에 따라 성(姓)으로 정리되어 적혀있다. 방문객중의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가족과 친척들의 이름을 찾아내고선 경건한 마음으로 흐느끼기도 했다.
나치의 희생물이 되어 죽어간 전세계 유대인들중 체코계 유대인들만 7만7297명. 이곳 핀카소바에 그들의 이름이 모두 적혀있다는 사실이 놀라우면서도 참혹했다. 8만명에 가까운 체코계 유대인들은 나치에 의해 강제 연행된 뒤 테레진에 수용되었다가 여러 과학생체실험실로 보내져 마루타로 죽어갔거나 끔찍하게 사형당했다.
핀카소바 시나고그와 연결된 클라우소바 시나고그에는 당시 나치에 의해 테레진에 강제 수용되었던 어린아이들이 전쟁과 희망에 대해 그린 그림과 글들, 장난감, 책가방과 도시락 가방 등이 전시되어 있는데 죄없는 아이들의 사진들을 보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이 두 곳의 시나고그와 연결된 곳에는 구 유대인공동묘지가 자리한다. 오래전부터 유대인들의 공동묘지로 사용되어온 이 곳은 그 스산함만으로도 프라하의 유대인들이 얼마나 가혹한 수난을 받았는지 한 눈에 짐작할 수 있는 곳이다.
정상적인 공동묘지라면 한 묘지에 한 비석이 있어야 하건만 이 곳에는 한 묘지에 평균 8구의 시신이 겹겹이 쌓여있으며 심한 묘지는 12~15구의 시신이 함께 놓여있다고 한다. 이렇게밖에 묘를 쌓을 수 없었던 이유는 프라하시가 바로 이곳 게토 내부가 아닌 어떤 다른 곳에도 유대인들의 묘지를 만들지 못하게 했기 때문이다. 하여 이곳(눈짐작으로 대략 500평 정도)에만 10만명 정도의 유대인 시신이 묻혀있다고 한다.
묘지에 쌓여있는 비석들은 길가의 자갈들처럼 이리저리 비뚤비뚤 놓여져 있으며 성한 비석 하나 없이 모두가 부서지고 오래되어 비가 오거나 흐린 날씨에는 더욱 무섭고 오싹할 게 분명했다.
다행히 독일에서 온 관광객들을 이끄는 가이드의 독일어 관광가이드를 슬쩍 엿들은 바, 유대인들의 비석에는 그들의 직업을 나타내주는 기호나 상징이 새겨져 있으며 결혼한 여성의 비석에는 남편의 직업을 나타내주는 그림도 함께 그려져 있다고 한다. 비석에 새겨진 생년월일 및 사망일자는 모두 유대교 달력을 따른 것이며, 크고 화려한 비석일수록 은행가나 사업가 등 부자들의 비석이라고 한다.
공동묘지 맞은편에 위치한 마이셀로바 시나고그는 유대인들과 관련된 많은 물품을 전시하고 있어 유대박물관으로도 불린다. 그런데 유대박물관으로 불리는 이유는 참으로 황당하기 그지없다. 당시 나치는 유대인들을 모두 멸종시킨 뒤 이곳을 유대박물관으로 만들려는 계획하에 유대인들의 여러 가지 유품및 기록, 종교용품과 생활물품 등을 모았다고 한다. 그리하여 현재 이곳에 전시된 물건들은 대부분 나치의 황당한 계획하에 모아진 물건들이라고 한다.
16세기 유대인 학자 랍비 로위가 만들었다는 재미있는 인조인간 골렘(Golem)의 전설이 전해지고 있는 스타로노바 시나고그는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시나고그로 1389년에 일어났던 반 유대인 폭동 당시 이곳에서 희생당한 유대인들의 혼을 기리기 위해 이제껏 한 번도 보수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 5곳의 유대인지구를 다 둘러보았다면 파리즈스카 거리를 건너 스파넬스카 시나고그, 즉 스페인 시나고그로 향하면 된다. 이 곳은 여타의 다른 시나고그와는 달리 웅장함과 화려함를 자랑하는 곳이다.
스페인 및 포루투칼의 지중해 지방에서 볼 수 있는 무어(Moor)족의 무어양식으로 지어진 시나고그는 바깥에서 보면 그저 그런 평범한 건물로 보이나, 내부에 전시된 거대한 전등과 창문, 무엇보다 2층으로 된 높은 돔(Dome)은 매우 독창적이다.
2층에 특별히 전시된 유대물건들은 스페인계 유대인들의 저항 및 수난의 역사를 보여주며, 나치의 탄압 아래 죽어간 유대인들의 벨트를 모아놓은 상자 등은 화려한 인테리어의 시나고그 역시 슬픔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었다.
예쁘고 로맨틱한 도시 프라하에 유대인들의 이런 아픔이 공존한다는 것은 참 아이러니하다. 일년 내내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프라하. 멋진 경관과 아름다운 문화유산이 프라하의 양지라면 유대인들의 상처가 아물지 않은 이 곳은 프라하의 음지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양지와 음지가 함께 있기에 더 값진 곳, 아픔과 상처도 잘 보존하여 드러내면 아주 훌륭한 관광상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이 곳 프라하에 와서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