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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은 목을 비틀면 한 두번 숨을 꼴깍꼴깍 넘기다가 곧바로 제 숨을 거둔다. 자식들의 몸보신을 위해 어렸을 적 닭을 잡던 아버지는 닭의 목을 비틀었다.

생사를 넘나들던 닭은 아버지의 손아귀에서 가까스로 벗어나 동네 한 바퀴를 빙빙 돌며 도망쳤다. 급기야 닭 쫓는 일이 아버지를 포함해 전 가족의 몫이 됐었다. 그때마다 닭은 닭대로, 우리는 우리대로 쫓기고 쫓는 극을 연출해야만 했다.

왜 닭을 잡던 어렸을 적 이야기를 꺼내는 것인가. 류진운의 소설 <닭털 같은 나날>(소나무, 2004)을 읽으면서 느낀 바가 그렇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닭의 피와 털이 난무하는 이 세상의 혼란스럽고 골치 아픈 일상사가 상세하게 그려져 있다.

중국의 혁명 이후 공동체 건설의 꿈은 자본주의 물결로 인해 물거품처럼 사라지게 되고, 결국 그 시절의 개개인이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거침없이 보여주는 책이다.

"현실에서 데어낼 수 없는 그림자는 오히려 더욱 깊이 있게 현실 세계의 구조와 논리를 드러내 보이고 있다. 그의 작품들은 마치 현미경으로 중국인과 중구 사회의 세포를 분석해서 그린 DNA 지도처럼 보인다."(옮긴이의 말)


우선, 표제작인 <닭털 같은 나날>에는 대학을 나온 맞벌이 부부 임씨네의 지리멸렬한 일상사가 그려져 있다. 주인공은 매일 아침 값싼 두부를 사기 위해 국영상점 앞에서 줄을 서 대기하고, 물 값을 아끼려고 수도꼭지를 가늘게 틀어놓다가 절름발이 수도 검침원 아저씨에게 망신을 당하기도 한다. 또한 아내의 직장을 옮기려고 코카콜라 한 상자를 뇌물로 바치려다 그만 좌절당하는, 지극히 소시민적 삶의 나날을 살아간다.

"모두 대학을 졸업했고, 성취욕도 강했다. 서로 열심히 노력하면서 밤에는 등불을 밝혀 공부했고, 웅대한 이상도 갖고 있었다. 하지만 몇 년이 지나자 그들도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똑같은 얼굴을 한 군중의 새까만 대열 속에 빠져 있으리라고 누가 생각했겠는가?"(p.21)

"그는 죽은 듯이 잠을 잤다. 그리고 꿈을 꾸었다. 꿈에서 그는 잠자리 위에 닭털을 한 무더기 덮고, 밑에는 많은 사람이 떨어뜨린 껍질을 깔았다. 또 꿈에서 시커먼 군중들이 일제히 앞으로 쏟아져 나왔다. 그들은 또 비를 기원하는 개미떼로 바뀌었다."(p.96)


대중적 인기를 누리는 주인공에게 중요한 것은 자존심이나 체면이 아니었다. 그가 무엇보다도 중요시 여겼던 것은 체면치레보다는 순간순간 쓰러지지 않고 사는 끈기, 그것도 가난한 소시민적 하루살이의 연명이다.

두 번째 작품인 <관리들 만세>에는 중국의 현대사회에 대한 속살이 드러나 있다. 공산당 국가체제에서의 행정기구 사무실이 실제적으로 묘사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원 국장이라는 국장 밑에서 7명의 부국장들이 벌이는 중국 공산당 내의 권력다툼과 각 계파간의 노선다툼 등이 그것이다.

그들 모두는 정년을 앞두고 있는 까닭에 언제 그만두어야 할지 모르는 불안감에 휩싸여서 살아간다. 겉으로는 대의를 내세우는 척하면서도, 내심으로는 자신들의 앞날을 위해 최대한도의 권모술수와 합종연횡까지도 마다하지 않는 치열한 생존전략들을 펼쳐나간다.

"더우면서 바람이 없으면 폭우가 쏟아진다는 것을 안다. 당신이 자전거를 타고 갈 때 날씨가 이렇다면, 힘껏 달려 집으로 돌아가 폭우를 피하는 것이 최선이다. 당신이 피하지 못한다면 물에 빠진 닭 꼴이 되는 것을 면치 못할 것이다."(p.178)


결국 두 명을 제외한 나머지 다섯 명과 원 국장까지도 궁지에 몰려 쫓겨나게 된다. 나름대로 자신들의 기개와 노련미를 내세웠지만 ….

마지막 작품인 <1942년을 다시 돌아보다>는 얼핏 보아 다큐멘터리 같은 인상을 받게 된다. 작가의 고향이기도 했던 하남성 사람들이 겪은 1942년의 대기근 상황에 대해 당시 생존한 주민들의 회상과 외국인 신문기자가 쓴 신문 기사의 인용 그리고 지방 내 사료들을 모아 편집하는 등의 형식을 빌리고 있기 때문이다.

당시 중국 내 공산당과 국민당이 반목과 질시로 서로를 견제하는 가운데 일제는 침략의 고삐를 계속 당기고 있고, 설상가상으로 하남성 국민들은 300만 명이나 죽어나는 아사 상태를 겪게 된다.

"남은 소는 이제 거의 다 잡아먹었고, 돼지도 뼈만 남았습니다. 닭은 굶주려서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합니다."(p.223)

"그의 가족이 피난길에 오르자마자, 그의 어머니가 병이 났다. 어머니의 병을 고치기 위해, 그는 어린 딸을 팔았다. 어린 딸을 팔았으나, 어머니는 병이 낫지 않았고, 결국 황하 앞에서 죽었다. 또 기차를 타고 동관에 갈 때, 아들이 가치에 올라타다 넘어져 바퀴에 치어 죽었다. 아내와 그는 섬서성에 도착해, 땅을 지키고 양치는 일을 했다. 아내는 그와 같이 고생스럽게 사는 것이 싫어, 한 사기꾼과 도망쳐 버렸다. 결국, 그는 혼자 남게 되었다."(p.244)


당시 하남성 통치의 총 책임자인 장개석은 그들의 기근에 대해서는 그저 평범한 일로 냉정하게 취급할 뿐이었고, 오히려 서방 기자들이 그 비극을 바깥 세상에 알리는 역할을 하게 된다. 뿐만아니라 침략자 일본군의 전략적인 군량미 방출 작전은 굶주린 농민들을 자기들 편으로 되돌려 놓는데 성공했다.

식량 때문에 부모가 제 자식을 삶아 먹어야만 하고, 어린애들을 길바닥에 버려야만 한다면, 그들의 기억 속에서 남아있는 굶주림이란 과연 무엇을 가져다주게 될까?

그들은 그것이 반민중적 통치 집단에 의한 정책적 과실에 기인했다는 사실은 감히 생각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아니, 그런 생각을 할 겨를조차도 없었을지 모른다. 단지 먹고 살아남는 일이 더 중요했기 때문에.

"이 문제를 굶어죽어 가는 기아 난민들에게 그대로 묻는다면, 이 문제는 '차라리 굶어 죽어 중국 귀신이 될 것인가? 아니면 굶어 죽지 않고 매국노가 될 것인가?'라고 바뀔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후자를 택했다. 이것이 내가 1942년을 돌아본 뒤, 얻은 마지막 결론이다."(p.292)


작가 류진운은 20세기 20대 중국 작가다. 또한 <닭털 같은 나날>은 20세기 100대 세계 명작이란 과찬을 보낸다는데, 이 책을 읽고 나니 정말 그렇게 평가해도 전혀 손색이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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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털 같은 나날

류진운 지음, 김영철 옮김, 소나무(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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