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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정사 적광전. 1964년에 지어진 건물이다.
월정사 적광전. 1964년에 지어진 건물이다. ⓒ 우동윤
대구에서 중앙고속도로를 타고 원주를 거쳐 오대산으로 쉬지 않고 달렸다. 국립공원이기에 이정표가 잘 설치돼 있어 처음 가는 길이지만 어렵지 않게 닿을 수 있었다. 4시간 남짓 걸려 오대산 월정사에 도착했을 무렵 오후 4시가 조금 지나고 있었다.

팔각구층석탑. 북쪽지방에서 유행했던 양식으로 고려초기 석탑을 대표한다.
팔각구층석탑. 북쪽지방에서 유행했던 양식으로 고려초기 석탑을 대표한다. ⓒ 우동윤
신라 선덕여왕 12년인 643년에 자장율사에 의해 세워졌다지만 지금의 건물은 1964년 새로 지어진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고찰(古刹)의 분위기는 그리 진하지 않다. 하지만 적광전 앞의 팔각구층석탑은 그 화려함에 한 번 놀라고 빛 바랜 석탑의 고색창연함에 두 번 놀라는 명탑이다.

월정사에는 이처럼 시원한 산책로가 잘 조성돼 있다.
월정사에는 이처럼 시원한 산책로가 잘 조성돼 있다. ⓒ 우동윤
곳곳에 불사가 이루어지고 있어 기대했던 산사의 고즈넉함은 덜했지만 월정사가 대한불교 조계종 제4교구 본사라고 하니 옛 절의 모습만 기대하는 것도 혼자만의 욕심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늦은 오후였지만 관광버스를 타고 전국에서 올라온 불교신자들로 분주한 이 곳이 그리 불만스럽지도 않다.

지난 해 여름 우리나라를 강타했던 태풍 매미의 흔적이 이곳에도 남아 있다.
지난 해 여름 우리나라를 강타했던 태풍 매미의 흔적이 이곳에도 남아 있다. ⓒ 우동윤
상원사를 찾았다. 이 절은 월정사에서 산길을 따라 차로 10여분 떨어진 곳에 있다. 상원사는 월정사의 말사로 신라 성덕왕 23년인 724년 역시 자장율사가 지었다고 전해진다. 그 때의 흔적은 종각이 유일하고, 다른 건물들은 8.15 광복 이후에 세워진 것이라고 하니 다시 한번 시간의 무상함을 느껴진다. 하지만, 1300여년 전 지어진 종각 안에 보관된 동종만 생각해도 상원사 여행의 의미는 충분할 것이다.

상원사
상원사 ⓒ 우동윤
학창시절 국사시간에 무수히 들었던 상원사 동종, 현재 남아 있는 한국의 종 중에서 가장 오래되고 아름다운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 이 종은 신라 경덕왕 24년인 725년 조성돼 조선 예종 원년인 1469년에 이 곳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종신에 조각된 비천상과 음통, 안으로 오므라든 종신형 등은 한국 종의 모범이 돼 양식적인 변천을 거쳐 이후의 종들에게 계승됐다고 한다.

너무나 유명한 상원사 동종. 종각안으로 들어갈 수 없어 창틀 사이로 촬영했다.
너무나 유명한 상원사 동종. 종각안으로 들어갈 수 없어 창틀 사이로 촬영했다. ⓒ 우동윤
상원사 역시 불사가 진행 중이다. 쇠파이프로 둘러싸인 건물과 곳곳에 널브러진 시멘트 포대가 눈에 거슬리지만 내 욕심만 부릴 일도 아니다. 월정사와 비교해 보잘 것 없는 규모지만 오히려 이 ‘작음’과 ‘단순함’이 묘한 매력을 풍긴다.

종각. 뒤에 보이는 종은 최근에 만든 것이다.
종각. 뒤에 보이는 종은 최근에 만든 것이다. ⓒ 우동윤
어찌 보면 탑인 것 같기도 하고, 또 달리 보면 아닌 것 같기도 한 ‘쌓은 돌’(상원사 영산전 5층석탑으로 확인됨...편집자 주)을 월정사의 팔각구층석탑과 함께 생각해 보면 상원사의 매력이 좀 더 분명해 진다. 이 ‘쌓은 돌’에도 네 분의 부처님이 모셔져 있다. 아는 것이 짧아 뭐라 부를 이름이 없어 그저 ‘쌓은 돌’이라고만 부름을 사람들이 욕하지 않을까 걱정스럽기도 하다.

상원사 영산전 5층석탑. 통일신라시대 만들어진 석탑이나 이후 손실됐다.
상원사 영산전 5층석탑. 통일신라시대 만들어진 석탑이나 이후 손실됐다. ⓒ 우동윤
깜깜한 어둠으로 물든 오대산을 헤드라이트로 밝히며, 오대산 관통 도로를 따라 동해안으로 향하면서 월정사와 상원사를 생각했다. 본사와 말사라는 신분적 차이를 떠나 깊고 깊은 오대산 자락에 자리잡은 두 곳의 산사를 생각했다.

'쌓은 돌'에 모셔진 부처님.
'쌓은 돌'에 모셔진 부처님. ⓒ 우동윤
월정사가 크고 화려한 곳이라면 상원사는 작고 단순한 매력이 있는 곳이다. 상반된 매력이 있는 이 두 절이 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어 오대산이 더욱 유명해진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있는 그대로 보고 느끼면 될 것을 굳이 월정사와 상원사를 비교하려고 하는 것은 내가 크고 화려하지 못한 사람이기 때문이리라.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상원사의 ‘쌓은 돌’과 동종이 머리 속을 떠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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