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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일요일 낮 10시경 우리 집에 불이 났어요.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리라는 것은 예상도 못했어요.

그 날 우리 부부는 집에서 1㎞쯤 떨어진 산마루 고추밭에 비닐을 씌우는 작업을 하고 있었지요. 그런데 밭 아랫집 아주머니가 아내에게 고함을 질렀어요.

"도성아! 도성 엄마! 도성이네 집에 불났어."

나는 그 소리에 '저 여편네가 무슨 쓸데없는 장난을 치나, 무슨 소리야' 하면서 그 말을 믿지 않았어요.

"여보, 큰일났어. 우리 집이 불타고 있어. 여보 어쩌지?"

산아래 건너편 우리 집을 바라보던 아내가 울음보를 터뜨리며 소리를 질러 그때야 나도 변괴가 생겼구나 하고 정신 없이 집 쪽으로 차를 몰아갔지요.

한옥 고가인 우리 집 부엌에서 불덩이가 치솟아 밖으로 불길이 쏟아져나오고 있었어요. 부엌에 있는 냉장고에 불이 붙어 타고 있었고, 부엌 안은 연기에 싸여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어요. 불길은 마루와 천장을 핥으며 번지고 온 집안이 검은 연기에 휩싸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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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내가 등을 잡아당겨도 물건을 하나라도 꺼내겠다며 연기가 나오는 안방으로 달려 들어갔고, 마을 사람들은 물통으로 물을 길어다 부었지만 불은 삽시간에 집 전체로 번지고 말았어요. 고추밭 일로 한창 바쁜 온 마을 사람들이 밭에서 일하다 솟구치는 불길을 보고 모두 달려와 발만 동동 굴렀어요.

"그 놈의 소방차는 꾸물대고 안 와! 누가 119 소방차는 불렀나?"

마을 사람들이 제가끔 한마디씩 했어요.

나는 그때 냉장고에 붙은 불을 끄려고 여러 사람을 붙잡고 "지렛대로 냉장고 좀 쓰러뜨리고 물을 붓자"고 소리를 질렀지만, 검은 연기가 꽉 찬 부엌에 누구 하나 뛰어들려 하지 않았어요. 지나고 생각하니 그건 나 혼자의 욕심이었지요. 그 당시 불길 속에 뛰어들었다가 화상을 입거나 큰 화를 당할 수도 있는데 누가 감히 그 불 속으로 뛰어들려 했겠어요.

한참 시간이 지나 불이 번질 때 연이어 소방차 3대가 산모롱이를 돌아 도착했어요. 내가 사는 곳은 충남 안면도 끝자락으로 안면도에서도 교통이 제일 불편하고, 찾기 힘든 오지예요. 거기다 급한 나머지 마을의 119신고자들이 제대로 교통 안내를 못했지요. 그러니 읍내 멀리 있는 소방차가 길을 못 찾아 옆 동네를 헤매다 왔더군요.

불은 건조한 목조 고옥을 성냥개비처럼 태우면서 덧붙인 내장재까지 불이 붙어 지붕 꼭대기로 연기가 치솟았어요. 소방대원이 지붕에 올라가 쇠스랑으로 기왓장을 들고 소방호스로 물을 쏘아댔지요.

나는 그때 아무 것도 할 수 없어 집 뒷산에 멀찍이 주저앉아 불길에 싸인 우리 집을 멍청히 바라보고 있었어요.

용감한 소방대원들 덕분에 불길은 그래도 단 시간에 잡혔어요. 화마가 핥고 간 집안은 엉망이 되었지요. 집이 내려앉진 않았지만 목재가 거의 다 타 쓸모 없이 되었지요.

전기배선도, 전화선도, 안방에 쌓아둔 책들, 부엌 살림, 기둥에 걸린 거울, 평생 직장의 동지들이 퇴직 기념으로 사준 벽시계도 타 버렸어요. 서울과 부산에 사는 아들 딸 4남매가 올 적마다 사다 쌓아놓은 세제와 식용유까지 모두 탔어요.

하필 세탁기 위 선반에 큰딸이 두고두고 쓰라고 사보낸 식용유통을 올려놓은 탓에 그 기름이 녹아내려 세탁기에 기름 붓고 불지른 셈이 되었지요. 세탁기가 그렇게 잘 탈 수가 없었어요.

불난 다음 날, 파출소와 소방서 등에서 화재 원인 재조사가 나오고 확인 전화가 오니 그것도 귀찮은 일이었어요.

불나기 전날 환경 문제에 무심해 우리 집 주변을 엉망으로 만든 옆집 목사와 내가 대판 쌈질을 했는데 불이 나니 별생각이 다 들더군요.

'전기누전? 전자제품(냉장고) 누전?, 방화? 목사님의 저주 기도?' 등등. 하지만 그 걸 따지고 싶지 않아요. 그 걸 알아 어쩌자는 건가요? 화재 원인을 알아내는 것도 골치 아픈 일이에요.

이번 화재에서 정말 웃기는 것은 '준비성이 강한' 내가 집 안채에 소화기를 두 대나 비치해 두고도 써먹지 못했다는 거예요. 무용지물이었지요. 내가 달려 왔을 때 한 대만 들이댔어도 부엌 안의 불길을 잡을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요.

"어허, 이 집에 좋은 소화기가 두 개나 있네. 아저씨, 불났을 때 이 좋은 소화기를 왜 안 쓰셨어요?"

소방서원이 소화기 얘기를 하자 그때야 소화기 생각이 났어요. 나이 탓인지, 당황했던지 나는 소화기 생각은 하지도 못했어요. 더 웃기는 것은 소화기를 살펴보니 안전핀을 뽑을 수 없게 제조회사에서 철사로 꽁꽁 매놨더군요. 그걸 풀어서 즉시 사용하게 두었어야 옳았는데 말이에요.

지난 대구 지하철 참사 때도 소화기 쓸 생각을 한 사람이 없었던 건 아닐까요? 소화기를 집 기둥마다 매달아 놓으면 무얼 해요. 쓰지 않으면 무용지물이지요.

나는 기자 생활하기 전에 초·중등학교 교사로 근무했는데 당시 소화기를 활용하는 소방훈련을 하고, 민방위 교육 때 소방교육도 받았지요. 그런데 그 걸 언제 써먹나요? 제 집에 불이 나도 활용하지 못하는 헛 교육을 받은 걸 후회해요.

내 일은 제백사(除百事)하고 집 마당에 불 놓고 소화기 사용 실습을 하고, 소화기를 점검해야겠네요. 하지만 내 평생에 설마 우리 집에 또 불날까 하는 하는 생각이 아직도 내 마음 한편에 도사리고 있어요. 더 당해봐야 제 정신이 들까요?

지금 우리 부부와 매연 속에 불길을 잡으려 수건으로 입을 막고 용감하게 진화작업을 했던 아랫집 친구는 진한 연기를 들이켜 기관지에 손상이 가 기침과 가래에 시달리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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