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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보에게 던지는 표는 사표다! 죽은 표가 된다!"

죽다니? 표가 죽었다니? 이 무슨 해괴망측한 소리인가?

사표(死票), 즉 '죽은 표'를 뜻하는 이 단어는 다분히 도발적이다. 정녕 낙선한 후보에게 던진 표는 모조리 죽은 것이란 말인가? 아니, 표가 죽는다는 표현 자체가 성립 가능한 것이기나 할까?

우선 개인적인 사례를 하나 얘기하겠다. 나는 지금까지 총선과 대선, 그리고 지자체 선거를 포함해 총 7차례 선거에 참여해 약 15장의 투표용지에 기표한 바 있다. 저들의 표현을 빌자면 그 중에서 단 한 장을 제외한 나머지 여남은 장의 표는 싹 죽고 말았다. 생존률이 5~6%에 불과한 어리석은 짓을 저지른 것이다.

사실 그 동안 투표를 하면서 내가 선택한 후보가 당선될 것이라는 기대나 확신을 가진 적은 그리 많지 않다. 당선권에서 한참 벗어나 있는 줄 알면서도 주저없이, 그러나 또 분명히 치열한 고민 끝에 한 표를 던지곤 했다. (낙선할 줄 알면서도 몇 번이고 우직하게 표를 던졌던 나도 ‘아름다운 바보’로 불러달라고 한다면 무리일까?)

일단 이 쯤까지만 생각을 해도 화가 치민다. 나는 내가 던진 한 표 한 표를 무척이나 소중하게 여기고 있다. 그 표들은 당장에 빛을 보지 못하더라도 멀지 않은 미래에 새로운 싹을 돋게 하는 근원이 될 것임에 틀림없다고 자부했다.

그런데 죽었다니? 세상에 이런 청천벽력이 또 어디 있단 말인가? 그러면 이제 나는 무엇을 해야 한단 말인가? 고운 햇빛 한번 보지 못하고 소리소문없이 죽어간 표들을 모셔놓고 제사라도 지내란 말인가? 혹시나 치열한 고민과 부푼 꿈을 머금었던 표들이 그냥 죽은 게 억울해 구천을 떠돌지도 모를 일이니 굿판이라도 벌여야 할 판이다.

자, 개인적인 넋두리가 길었다. 그 만큼 정신적인 데미지가 심했다는 것을 이해해 주시라.

하고 싶은 말을 요약하자면, 표는 어느 후보에게 던졌는가에 상관없이 모두 유효하다는 것이다. '사표'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그 표들은 당장 효력을 발휘하지 않더라도 한 유권자의 정치적 의사가 표현된 민주주의 프로그램의 아웃풋이라는 사실만으로도 가치를 인정해야 한다.

이는 개별적인 주장이 아니라 전략적 방법론과 연계해서도 적용하고픈 말이다. 전략적 투표를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에 비유하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우리는 이념정책 투쟁과정에서, 그리고 현실정치 속에서 새로운 세력의 ‘2보 전진’은 실현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것을 역사로 체험해 왔다. 오히려 한 번 뒤로 물러나면 다시 그 자리를 찾기까지도 쉽지가 않았다.

특히나 보수 일색의 한국정치 지형에 진보세력이 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선 끊임없이 기존세력의 틈바구니를 파고들어야 한다. 지금 1보 전진할 수 있는 기회를 미루고 1보 후퇴한다고 쳐보자. 과연 다음 기회에 쉽게 2보씩이나 전진할 수 있을까? 오히려 차후엔 1보 전진조차 더욱 힘겨워질 것이다.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보수진영이 이끄는 사회는 보수색채가 더욱 짙어질 것이며, 그것은 결국 진보진영의 진입을 가로막는 장벽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혹시 누가 보증인이라도 세우고 진보세력의 2보 전진을 보장해 준다면 또 모르지만.)

그리고 모든 정치세력과 언론, 그리고 일반국민에게 고한다. 유권자를 무시하고 농락하는 '사표'라는 단어 자체를 이제는 제발 걷어치우기 바란다. 축구용어에서도 이제는 ‘자살골’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 ‘자책골’로 대체하고 있다. ‘죽음’이라는 뜻이 담긴 표현은 당사자에게 가혹하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사표’라고 불리는 그 표들이 절대 죽었다고 생각하지 않고 있지만 말이다.

굳이 그 표들에 대한 통칭이 필요한다면 ‘밑거름표’, 또는 적어도 유권자의 의사를 반영한다는 뜻에서 ‘반영표(反映票)’라고 표현하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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