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원리 오층석탑을 찾아가는 길은 그리 수월치 않다. 무엇보다 변변한 이정표 하나 없이 좁은 비포장 도로를 따라가야 하기 때문이다. 대형버스는 아예 진입조차 불가능하다. 교통이 편리하고, 잘 가꾸어진 유적지에 너무 익숙해져 있어 더 힘들게 느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마치 초등학교 소풍 때의 보물찾기처럼 찾아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리고 마침내 나원리 오층석탑을 발견하면 그 어떤 보물보다도 아름다운 탑의 자태에 반할 것이다. 그냥 보물이 아니라 나라가 그 가치를 인정한 것이라서 국보 제 39호로 지정됐다.
8세기쯤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나원리 오층석탑은 통일신라시대의 다른 석탑과 달리 오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높이도 9.76m로 경주에서는 감은사터 삼층석탑과 고선사터 삼층석탑 다음으로 크다. 앞의 두 탑이 삼층석탑이라 전체적인 느낌이 크고 장중하다면 나원리 오층석탑은 10m에 달하는 높이만큼 날씬한 맵시가 볼수록 예쁘다.
1300여년 전 세워진 석탑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깨끗한 것이 놀랍다. 안내판에도 ‘이끼가 끼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여 나원백탑(羅原白塔)으로 불린다’고 적혀 있다. 왜 이끼가 끼지 않는 것인지, 여기에는 어떤 재미난 이야기가 전해지지 않는지 궁금했지만 그 어디에서도 찾을 길이 없어 아쉽다.
‘혼자 보기 아깝다’라는 말은 바로 이럴 때 하는 말인가 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외딴 곳에 변변한 이정표 하나 없이 방치되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푸대접도 이런 푸대접이 없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달리 생각해 보면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것이 이 탑에게는 해로울지도 모를 일이다. 순백의 탑신이 사람들의 손때와 매연으로 더럽혀질지도 모르지 않은가.
탑과 이별하고 돌아오는 길에 가득 피어있는 흰 꽃을 봤다. 과수원 같이 보이는 곳이었는데 도무지 무슨 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일하고 계시는 할머니께 여쭤보니 대뜸 “배꽃 아이가!”라며 고함을 치신다. 그것도 모르느냐는 꾸중이 담겨 있는 것 같았다.
잠시 차에서 내려 가까이서 하얀 배꽃을 감상했다. 문득 배꽃이 나원리 오층석탑과 무척이나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