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국사를 세운 김대성이 석가탑을 만들 때 당시 가장 뛰어난 석공이던 백제사람 아사달을 청했다. 아사달은 사랑하는 아내 아사녀를 백제에 남겨 두고, 신라로 초빙돼 석가탑을 만드는데 혼신의 힘을 다했다. 아사녀는 신라로 간 낭군이 보고파 애태우다가 홀로 먼길을 떠나 불국사까지 왔다.
하지만 석가탑이 완성될 때까지 여자를 절 안에 들이지 않는다는 문지기의 말에 아사녀는 불국사 주위를 맴돌며 아사달을 보고자 원했다. 그런 아사녀의 정성에 감복한 한 스님이, “근처에 영지란 못이 있으니 거기에 가 기다리시오. 석가탑이 완성되면 그 못에 탑의 그림자가 비칠 것이니 그때 아사달을 보러 불국사로 오시오”라고 일러 주었다. 아사녀는 스님이 일러 준대로 영지로 가 못에 탑의 그림자가 비치기만을 기다렸다. 하지만 끝내 탑의 그림자는 비치지 않았고, 아사녀는 영지에 몸을 던져 목숨을 끊었다.
석가탑이 완성되고 사랑하는 아사녀가 영지에 와 있다는 소식을 들은 아사달은 한달음에 영지로 달려갔으나 아사녀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아사달은 사랑하는 아내를 잃은 슬픔에 통곡하다가 영지 옆에 불상을 하나 조각해 놓고는 고향으로 돌아갔다. 이후 사람들은 석가탑을 그림자가 비치지 않는 탑이라 하여 무영탑이라 불렀다 한다.
아사녀가 몸을 던졌다는 영지는 지금 큰 저수지로 변해 있다. 무영탑의 전설을 모른다면 그저 강태공들이 한가로이 낚시대를 드리우고 있는 저수지로만 알고 지나치겠지만, 아사달과 아사녀의 슬픈 이야기를 알고 보면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근처에 아사달이 아사녀를 그리며 조각했다는 ‘영지 석불’이 있어 이야기가 보다 생생하게 느껴진다.
영지석불(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04호)은 연화좌대 위에 단정하게 앉아 있다. 하지만 얼굴부분은 마모가 심해 형태를 알아보기 힘들다. 긴 세월이 지나는 동안 마모가 됐을 수도 있지만, 원래 미완성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당대 최고의 석공 아사달도 이미 저세상 사람이 된 아사녀의 얼굴은 차마 조각하지 못했던 것일까.
경주 불국사에서 이곳까지 석가탑의 그림자가 비칠리 만무하지만 그렇게 따져 가면서 생각할 일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예술을 향한 옛사람들의 순수하고 아름다운 열정과 아사달과 아사녀의 슬픈 사랑 이야기를 음미해 보는 것이 아닐까.
저수지 옆으로는 콘도미니엄 공사가 한창이다. 한창 짓고 있는 건물을 보니 그 규모가 만만치 않다. 이 주변을 본격적인 위락지로 개발할 모양인 듯하다. 그렇게 된다면 아울러 아사달과 아사녀 그리고 무영탑에 얽힌 이야기도 사람들의 관심을 받을 수 있게 되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