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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들이 사는 바다마을을 찾아왔던 그 호랑이들은 호종단과 수단을 금방 육지로 올려다 주었습니다.
"곧 누군가 당신을 맞으로 나올 것이요. 일이 끝나면, 그와 함께 대왕이 사는 곳으로 올 수 있오."
호랑이들은 그렇게 말하고는 어딘가로 사라져 버렸습니다.
육지에 다시 올라온 호종단은 잠시 정신이 산만하긴 했지만, 바로 제 정신으로 돌아온 듯 했습니다. 그러자 엣날의 그곳으로 다시 돌아온 감회가 떠올라 묘한 기분에 휩싸였습니다.
한반도의 수맥을 끊고 물줄기를 마르게 하기 위해서 송나라에서 온 호종단은, 목적을 다 이루지 못하고 송나라로 돌아가다가 제주 앞바다에서 풍랑을 만나 지금까지 바다 밑 영혼이 되어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이후 수백년만에 다시 나온 인간 세상이었습니다.
한반도의 강물들은 놀랄만큼 깨끗했습니다. 죽기 전 한반도의 모든 강물을 말릴 수 있었지만, 지리산에 사는 선녀들의 꾀로 실패를 한 나머지, 그곳의 샘물 두 개를 말리지 못했습니다. 그 모든 것을 역술서의 탓으로 돌리고 지리산에서 그 역술서를 찢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 지리산에 남아있던 두 샘물이 흘러 흘러 한반도를 적시고 있었고, 그 샘물이 있는 곳에 살고 있는 그 강의 선녀들이 지리산에서 찢어버렸던 역술서를 모아 가지고 있었습니다. 호종단이 바다밑 영혼이 되어 살고 있는 사이, 그 샘물은 한반도를 전부 적실 만큼 불어있었던 것이었습니다.
호종단의 눈은 마치 투명한 바닷물 속을 들여다보듯 땅 아래로 흐르고 있는 물길을 볼 수 있었고, 순식간에 물을 마르게 할 수도 있었습니다. 역술서가 없이는 수많은 강들의 기원이 어디에 있는 찾을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이번엔 분명합니다. 자신이 남겨둔 샘물은 지리산에 있었습니다.
저 앞에 강이 보였습니다. 수단을 강은 보자마자 신나게 강쪽으로 뛰어가 물로 뛰어들었습니다. 수단의 몸에서 이글거리는 듯한 불꽃이 타올랐습니다. 그러자 강물이 펄펄 끓어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순식간이었습니다. 강물에서 헤엄을 치던 물고기들은 미처 도망 나오지도 못하고 죽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강을 바닥을 보이면서 순식간에 말라버렸습니다.
다른 강에 이르자 호종단은 수단을 시켜 그 속에도 입을 담그게 했습니다. 수단이 물 속에 주둥이를 잠시 담그고는 다시 호종단에게 돌아왔습니다.
“ 알고 보면 역술서를 얻어서 수맥을 말리는 것보다 이것이 더 좋은 방법인지 모르겠군."
호종단은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역술서를 얻기를 바라는 호랑이 대왕은, 무언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역술서가 있으면 수맥을 말리는 것만이 아니라, 세상의 물들을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는 방법이 생긴다는 것을, 호랑이 대왕도 알고 있는 것이 분명했습니다. 역술서가 할 수 있는 일은 단지 그 만이 아니었습니다.
수단은 가는 곳마다 보이는대로 시내와 강물에 주둥이를 담갔습니다. 수단이 주둥이를 담근 곳은, 그 다음 날이면 어딘가로부터 더러운 물이 흘러들어서 강물이 온통 더러워졌습니다. 물고기가 죽어서 떠올랐습니다. 그 강물에 세수를 하는 어린이들의 얼굴에 병이 나기 시작했고, 그 물을 마신 사람들이 이상한 병에 걸려 죽기 시작했습니다. 그 강물은 수단의 주둥이가 닿지 않은 깨끗했던 옆강에도 흘러들어, 그곳으로 더러운 물이 흐르게 만들었습니다.
바다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수단이 주둥이를 담그고 지나가면, 어디선가 부서진 큰배가 와서는 기름을 쏟아버렸습니다. 바닷물이 파랗게 변하기도 했습니다.
호종단과 수단이 거의 지리산에 도달할무렵, 꼬리를 단 키 작은 아이 하나가 길가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그들이 오는 것을 보자 쪼로록 달려와 인사를 했습니다
“ 넌 누구냐?'
“ 호랑이 대왕의 어명을 받고 지리산을 안내하러 온 산오뚝이올시다.
“ 오호, 네가 바로 산오뚝이로구나, 듣던대로 참 신기한 꼬리를 가지고 있구나.”
그 얘기를 들은 산오뚝이는 자랑을 하려는 듯 꼬리를 공중에 흔들었습니다.
“ 꼬리가 바로 우리가 도술을 부리는데 꼭 필요한 것이외다. 따라오시구려, 그 두 선녀가 살고 있는 곳을 알고 있으니.”
그 곳에 가는 길에 호종단을 산오뚝이에게 이것저것 물어보았습니다.
“ 역술서는 어디에 있더냐?”
“ 두 선녀들이 깊은 숲 속에 보관하고 있네다. 선녀부채가 항시 역술서 옆을 지키고 있는데, 낯선 사람이 지나가면 그 선녀부채가 색깔을 바꾸어서 그 역술서를 보지 못하도록 하외다. 두 개의 부채가 앞뒤에서 역술서를 보호하고 있수다. 선녀부채가 색깔을 참 잘 바꾸외다. 나뭇잎 색깔이 되기도 됐다가, 나무 색깔이 되기도 했다가. 그런데 선녀 하나가 죽으면 그 부채도 따라 힘이 없어지외다, 부채 하나로는 역술서를 지킬 수가 없으니, 선녀 하나만 처치하면 되외다.”
“ 역술서는 선녀들이 뭐하러 가지고 있다고 하더냐?”
역술서를 가지고 있으면 좋은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님은 자신도 알 수 있었습니다. 물의 흐름과 성질을 다스릴 수 있는 그 책으로 강물과 바다를 제압할 수도 있었습니다. 산오뚝이는 말했습니다.
“ 역술서는 용왕이 직접 사용하외다, 바다 속에 그 역술서를 노리는 자들이 많아서 숲 속에 보관하는듯 싶소이다.”
호종단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 대왕은 거사를 언제부터 시작한다고 하더냐.”
“ 지난 번 서천꽃밭에서 오름꽃과 뼈오름꽃을 수천 송이 훔쳐왔수다. 시작하는 것은 오늘부터라도 문제없을 거외다.”
지리산에서 두 수원을 지키고 있는 새미 선녀와 매미 선녀는, 호종단이 바다마을에서 나와 지리산을 향해 오고 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반야봉에 살고 있는 새미는 반야봉 샘물의 물을 호리병에 담았습니다. 그리고는 날개옷을 입고는 유유히 산 아래로 날아서 내려갔습니다.
새미 선녀는 큰길 입구에 내려 맴을 한번 돌자 여행객의 모습으로 변했습니다. 그 곳엔 관광객들이 음식을 사먹는 휴게실이 몇 군데 있었습니다. 추위가 한창인 12월이라서 그런가,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새미는 휴게실 몇 군데를 둘러보았지만, 문이 굳게 잠겨있거나, 안에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마침내 휴게실 한 곳을 지키고 계신 할머니를 볼 수 있었습니다.
여행객으로 변한 새미선녀는 그 휴게실에 들어가 할머니를 보더니 말했습니다.
“ 할머니, 이 호리병 좀 맡아주시겠어요?
할머니가 짜증이 난듯 말했습니다.
“ 이 호리병은 뭐하러 나한테 맡아달래?
“ 좀 중요한 일이라 그래요, 제가 금방 다시 와서 가지고 갈게요. 조금만 맡아주세요.”
할머니가 이상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습니다.
“이 호리병이 중요해 봐야, 뭐가 그리 중요하누. 새미 선녀 네가 관리하고 있는 샘물이라도 들어있는게야?”
할머니가 농담을 하고 있는지, 아니면 정말 그 사실을 알고 이야기하는 것인지, 할머니의 말을 들은 새미 선녀는 순간 말을 멈추고 그 자리에 서있었습니다. 휴게실 안에 바람이 부는지 할머니의 치마가 펄럭였습니다. 새미 선녀는 무언가 눈치챘지만, 이미 그 호리병은 할머니 손에 들려있었습니다.
“ 이번에도 지난 번과 같은 수법으로 사태를 모면하려고 하는구만.”
그 할머니는 호리병을 열어 물을 땅으로 전부 쏟아버렸습니다. 그리고는 재주를 한번 돌더니 산오뚝이의 모습으로 돌아왔습니다.
“ 아 !”
새미는 사스러치게 놀라 물었습니다.
“ 어디 갔지? 호종단은?”
산오뚝이는 말했습니다.
“ 네가 지키고 있는 맑은 물을 길어다가 호종단이 지나가고 난 다음 다시 그 자리에 쏟으면, 다시 맑은 강물로 되살아날 수 있수다,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너만이 아니외다. 너희 선녀들은 왜 하나 같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옛날이나 지금이나 똑같은가? 우리 산오뚝이들의 생각은 점점 발전해 가고 있다는 사실을 어디에 가서든 꼭 알려주길 바라외다”
그 말이 끝나자, 새미는 연기가 되어 사라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당시 호종단과 수단은 이미 새미가 지키고 있는 샘물에 올라가 물을 말려버리고 만 것입니다.
새미의 샘물이 말라버리자, 반야봉 언저리의 숲의 나무들이 하나 하나 주저앉기 시작했습니다. 땅에 발을 대고 서있던 산오뚝이는 갑자기 발바닥이 간지러워 지면서 서있기가 힘들어 휴게실 마루 위로 냉큼 올라가 버렸습니다. 땅에서 한참동안 연기가 피어올랐습니다.
날개를 단 산오뚝이는 호종단이 기다리고 있는 반야봉의 샘물로 올라갔습니다.
그를 보고는 호종단이 말했습니다.
“ 어디라고 했지?
“ 매미라는 다른 선녀는 칠성봉에 살고 있는데, 새미 선녀가 이미 죽었으니 매미의 부채 하나로는 아무 쓸모가 없네다. 이제 천왕봉에 올라가서 역술서를 가지고 오면 되오이다.”
호종단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 지금 바로 천왕봉으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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