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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태우
화창한 봄날, 어머니와 함께 아버지를 찾았다. 아버지가 누우신 3평 남짓한 땅도 초록의 잔디로 덮여 있었다. 아버지가 잠 드신 지도 어느덧 만 6년이 다 되어가지만, 아직도 아버지의 무덤 앞에 서면 가슴 한 쪽이 서늘해지고, 어금니를 물게 된다.

살아계실 때, 아버지는 나의 최대 라이벌이었다. 막내이자 장남이었던 나는 시시때때로 아버지와 대립했다. 좀처럼 무엇 하나 같은 취향이 없을 정도였다. 시국에 관해서도, 종교에 관해서도, 심지어 미래의 설계에 대해서도 아버지와 나는 너무나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아버지와 나는 시시각각 부딪쳤다.

20대의 나는 지나치게 솔직하고, 직설적인 화법을 구사하는 아이였다. 아버지는 내가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어하는 걸 좋아하지 않으셨다. 아버지의 주장은 "왜 그렇게 힘들고 어려운 길을 가려고 하느냐?"는 것이었다. 나는 아버지께 언젠가 화가 나서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말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넌 안 돼" 그렇게 말해도 돼요. 그건 아무 상관없어요. 오히려 더 독기를 품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아버지가 그렇게 말하면 그건 달라요."

제대를 3달 정도 남겨두었던 때였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아버지는 그 때 이미 간경화 진단을 받으셨다고 했다. 아버지는 파주까지 아프신 몸으로 직접 운전을 하고 나를 찾아와 말씀하셨다. 입을 여시는 그 순간, 오랫동안 고민하셨다는 걸 나는 단박에 눈치챌 수 있었다.

"제대하고 나면 문예창작과로 편입해라. 요즘엔 편입도 가능하다고 하니까."

아버지가 부대 위병소를 빠져나갈 때, 나는 후회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도 아니고, 아버지의 이야기인데, 내가 정말 '글 쓰기의 힘겨움'에 대해 곰곰이 고민해 보았는지 내게 자문해 보았다.

ⓒ 김태우
그리고 아버지가 돌아가셨던 여름, 나는 처음으로 후회를 했다. '글을 쓴다'는 행위가 무엇이길래, 그렇게 아버지를 아프게 만들면서까지 지켜야 했던 걸까. 차라리 그냥 쓰지 않는다고 말할 걸….

세월이 지난 후에야 알게 되는 사실이 너무 많다. 어느 순간 나는 아버지가 내게 늘 질 준비를 하고 계셨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그렇게 아버지는 내게 남아있고, 나는 아직도 글을 쓰기 위해 안간힘을 쓰면서 인생을 살고 있다.

아버지가 누우신 곳을 찾을 때마다 어머니의 눈가엔 물기가 언뜻언뜻 보인다. 나는 그때마다 다짐을 한다. 아버지의 몫까지 내가 잘 해야 하는데… 어머니마저 속상하게 만들면 안 되는데…. 아버지는 돌아가신 후에도 아들을 성장시키고, 성숙시키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버지는 내게 그런 의미다.

ⓒ 김태우
영화 <애널라이즈 디스>에서 로버트 드 니로는 마피아 두목으로 출연한다. 그는 어릴 적 아버지가 살해당하는 현장을 직접 목격하고 그 내상을 간직한 채, 살아온다. 그래서 그의 표현은 더욱 거칠어지고, 난폭해진다. 정신과 의사로 출연한 빌리 크리스탈은 그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숨겨진 아버지의 기억을 끄집어 내어 치료해 준다. 로버트 드 니로가 자신의 내상을 인정하며 눈물을 흘리는 장면에서, TV를 통해 흘러나오는 대사가 있다.

"인생의 절반을 살면서 다짐했지. 아버지처럼 살지 않을 거야. 아버지가 떠난 후에 난 다시 다짐하게 됐어. 내가 나머지 인생의 절반을 살면서, 아버지의 절반 만큼이라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사람들은 흔히 말한다. 자식은 부모를 땅에 묻고, 부모는 자식을 마음에 묻는다고. 하지만 이 말은 틀렸다. 나는 아버지를 마음에 묻고, 아버지의 힘으로 살아갈 거다.

아버지, 세상의 모든 아버지들에게 축복이 있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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