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장에도 봄이 옵니다. 해발 1000m를 넘나들며 조성되어 있는 대관령 목장은 워낙 높은 곳에 자리 잡고 있어 겨울이 이르고, 봄도 늦은 곳입니다. 더욱이 올 봄처럼 서둘러 여름으로 달려가는 해에는 봄날의 짧은 순간마저 느끼기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지난 18일 대관령의 기온은 27도였습니다. 그날 강릉의 낮 최고 온도가 32.7도. 강릉과 대관령의 그런 날씨는 기상관측이래 4월의 온도로는 가장 높았습니다. 그날 목장의 일부 계곡에는 쌓인 눈이 다 녹지 않아 그 얼음에서 빙벽을 타는 기분을 내며 놀았습니다.
이쯤 되면 아직 녹지 않은 계곡의 눈은 봄 속의 겨울모습이 아니라, 여름 속의 겨울쯤으로 이야기해야 좋을 듯합니다. 반소매 티셔츠만을 입고 아직 남아있는 눈과 얼음을 밟는 즐거움이 상상이 되시는지요?
하지만 그런 따뜻한 날씨에도 목장에는 아직 젖소는 방목되지 않았습니다. 초지에 풀이 무성하지 않은 때문입니다. 목장을 안내해 주신 분의 이야기로는 우리 안에 있는 소들은 하루가 다르게 솟아오는 봄 풀들의 향기에 코를 벌름거리며 입맛을 다시고 있다고 했습니다.
열흘만 지나도 대관령의 육백만 평 초원이 푸른 풀밭이 될 것입니다. 그때는 푸른 초원에서 한가롭게 풀을 뜯는 소들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번 여행에서 목장에 남아있는 눈을 보는 것은 아주 즐거운 일이었지만 아직 푸르게 올라오지 않은 초원은 서운했습니다. 하지만 계곡 곳곳에서 봄을 키워가고 있는 대관령의 야생화를 보며 그 서운함이 사라졌습니다. 대관령은 야생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입니다. 대관령 목장에는 야생화를 잔뜩 만날 수 있는 탐방로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곳은 아니지만 두 시간 정도 그 탐방로를 따라 걷다보면 우리의 풀과 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 수 있는 곳입니다. 그 탐방로에서 가장 많은 꽃은 얼레지였습니다. 그 꽃의 꽃말은 “바람난 여인”이랍니다. 화창한 봄볕이면 '치마'를 활짝 들어올리고, 날이 흐리면 금세 치마를 내린다하여 그런 꽃말이 붙었습니다. 물론, 그런 꽃의 움직임은 날이 맑으면 곤충을 불러 수정을 해야 하고, 흐리면 제 몸을 보호해야 하니 당연한 일입니다.
다른 곳에서 꽃을 피운 지 한참이 지난 동의나물, 양지꽃, 현호색, 제비꽃도 대관령 목장의 야생화 탐방로에서는 이제 막 꽃을 피웁니다. 큰개별꽃, 노루귀, 산괴불주머니, 꽹이눈, 홀아비바람꽃, 꿩의바람꽃도 아름다움을 맘껏 뽐냅니다. 그 꽃 속에서의 두 시간은 앞으로 오래 기억될 것 같습니다.
그곳을 다녀온 지 겨우 이틀이 지났지만 그 탐방로가 벌써 그리워집니다. 어느 계절에 걷더라도 스무 가지 이상의 야생화를 만나게 된다는 그곳을 다시 걷고 싶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