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여름, 배우 김혜자는 비영리 기독교 자선단체인 월드비전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막 드라마를 끝내고 딸 아이와 유럽 여행을 준비하고 있던 시점이었다. 수화기 저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는 "아프리카에 함께 가자"고 제안했다.
그녀는 망설였지만, 막연하게 나마 <정글북>과 영화 <장원>을 통해 본 아프리카의 이미지를 떠올리며 그 여행에 동행했다. 그리고 그 뒤로 10년 동안 그녀는 난민촌 아이들의 친구가 되어주었다. 책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는 혹독했던 그 10년의 기록이다.
곳곳의 난민촌을 여행하면서 보고 느꼈던 감정들을 그녀는 고스란히 적고 있다. 이 책을 통해 그녀는 우리에게 그녀의 눈과 귀를 빌려준다. 그녀는 하나라도 더 기억하기 위해 사진을 찍듯 난민촌을 유심히 관찰했고, 하나라도 더 들려주기 위해 귀를 세웠다고 한다.
그녀의 촘촘한 기록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난민촌의 한가운데에 서있게 된다. 그곳에서 그녀가 소개해 주는 불쌍한 아이들을 소개 받게 되고, 그 아이들을 굶주림으로 몰아넣은 사회적 배경을 알게 되며, 인간의 어두운 본성과 신의 무심함에 안타까워하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며 필자는 몇 번이나 원인 모를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다. 그리고 몇 번이나 숨을 멈추고 호흡을 조절해야만 했다.
살아있다는 사실이 고통 이상 아무 것도 아닌 사람들, 풀을 뜯어 먹어 입가가 파랗게 물든 아이들, 차로 45분을 달려야 되는 거리를 죽 한 그릇을 먹기 위해 걸어온다는 아이들, 마약에 취해 살인을 저지른 소년병들, 항생제 한알이 없어서 눈이 머는 아이들, 종교와 인종을 내세우며 벌이는 살육의 이야기를 들을 때, 필자는 마음이 아팠다.
과연 어떤 삶이 '좋은 삶'인가
이 책은 가난한 아이들에 대한 기록일 뿐 아니라, 우리의 삶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성찰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과연 어떤 삶이 '좋은 삶'인가. 배우 김혜자는 독자들에게 묻는다.
첫 구호 활동으로 에티오피아를 다녀온 김혜자는 국민적 호응과 감동을 불러 일으켰다. 월드비전에서는 다시 그녀에게 소말리아로 가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그녀는 망설였다. 그 아이들을 본다는 게, 신에 대한 절망에 사로잡힌다는 게, 시체가 나뒹구는 그 거리를 걷는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경험한 그녀는 솔직히 두 번 다시 그런 곳에 가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그 갈등을 솔직하게 고백한다.
"그러던 어느날 구로공단에서 일한다는 한 처녀로부터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방송을 보고 그 동안 소년소녀가장 돕기에 쓰려고 모아온 8만1천원을 '사랑의 빵' 성금으로 내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아, 이 처녀가 또 나를 소말리아에 가라고 하는구나. 나는 그 처녀의 본래 목적이었던 소년소녀가장 돕는 것은 내가 해주겠다고 말했습니다. 구로공단에서 일해서 받는 돈이 얼마나 될 것인가. 나는 이제 더 주저할 수 없었습니다."
그 이후 11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리고 김혜자는 바쁜 일정 속에서도 난민촌을 찾아가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그녀는 오드리 햅번이 쓴 글을 인용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어느 책에서 읽은 것처럼, 세상 사람들에게 내 눈을 빌려주고 싶습니다. 이 고통 받는 아이들을 보라고, 세상 사람들에게 내 두 팔을 빌려주고 싶습니다. 이 아이들을 꼭 껴안아주라고."
굶주림의 원인은 종교와 인종, 다이아몬드로 인한 분쟁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는 김혜자의 '단순한 난민촌 소감문'으로 읽히지 않는다. 그녀는 사회적, 정치적으로 어떤 상황이 이러한 굶주림을 야기했는지 분석하고, 그 의미를 인간의 본질과 연관시켜 파헤치고 있다. 타 인종에 대한 편견과 오만, 타 종교에 대한 배타심, 그리고 권력을 향한 무절제한 욕망이 난민을 만들어낸다고 진단한다.
"모든 여성이 갖고 싶어하는 최고의 보석 다이아몬드는 이처럼 아프리카 사람들의 피와 눈물의 결정체입니다. 아프리카를 다니면서 다이아몬드가 대학살의 주범이라는 사실을 알고부터 나는 다이아몬드가 대단히 슬픈 보석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중략)
당신의 손가락에 끼어 있는 다이아몬드가 내전의 소용돌이 속에서 신음하고 있는 아프리카인들이 흘리는 고통의 피 눈물이라는 걸 아는지요?
전세계 다이아몬드 생산량 15위를 차지하는 국가들 중 아홉 개 나라가 정치 체제의 불안정으로 인해 내전이 끊이지 않는 아프리카의 가난한 나라들입니다."
다이아몬드는 아프리카에서 일어나는 내전의 군수 자금으로 사용되고 있다. 자료를 통해 그녀는 반군들이 광산을 차지하기 위해 전쟁을 벌이고, 그들의 수중으로 들어간 다이아몬드가 대량 살상 무기로 바뀐다고 증언한다.
심지어 반군들은 주민들에게 공포감을 주어 다이아몬드 광산에서 주민들을 몰아내기 위해 그들의 손을 자르기까지 했다. 그리고 그로 인해 가난과 굶주림은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들의 사람들에게 일상이 되어버렸다.
누구는 다이아몬드로 인해 피를 흘리며 죽어가고, 기아에 허덕이는데, 같은 지구상에 살고 있는 누군가는 그 다이아몬드로 사랑을 고백하고 있다.
그녀는 종교로 인해 전쟁이 일어나는 현실에 대해서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신의 사랑을 구하며 간구하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신의 이름으로 죽이는 전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진정한 종교인이라면 그래서는 안 될 것이다. 굳이 미국과 이라크를 들먹이지 않아도 '모든 종교인'이 반성에, 반성을 더 해야 한다.
"지난 1백년 동안 지구상에서 전쟁이 일어나지 않은 날은 불과 14일뿐이라고 합니다. 그 수많은 전쟁 중에 종교가 원인인 것이 불과 10분의 1이라고 해도 전세계 종교인들이 참회해야 하는데, 10분의 9를 넘는데도 또 새로운 전쟁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믿는 신이 중요하다면 다른 사람이 믿는 신 또한 그렇다는 관용의 자세가 중요하다. 다른 신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들만의 신을 인정하라고 하는 한 이 지구상에서 종교 분쟁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타 종교에 대한 관용'이야말로 신앙심의 필수 조건이다. 이러한 종교적 관용이 없다면 그야말로 신앙이란 허울 좋은 이기심일지도 모른다.
분쟁을 줄이고 화해의 길로 나서기 위해서 전세계가 하나가 되어야 한다. 약자에 대한 연민과 동정의 마음이 없다면 그게 어떻게 사람일 수 있겠는가. 그건 사람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건 드라마가 아니니까요
그녀의 글 속에서 발견되는 가난과 굶주림, 성적 학대의 고통은 모두 '사람의 편견'의 산물임을 느꼈다. 이제 그들에게 그들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지구 반대편에도 있다는 걸 보여 주고 싶어하는 김혜자의 마음이 전해지기를 빈다.
그녀는 이 책의 수익금 전부를 구호단체에 기증하기로 했다. 정말 이 책이 많이 팔려서 배고프고 힘든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해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서평을 쓰면서 이런 글을 쓰면 안 되는 지는 모르겠지만, 이 책은 충분히 그럴 가치가 있다.
마지막으로 그녀가 한국의 오드리 햅번이 되어 사랑을 전하는 천사가 되어 주기를 소망한다. 그녀는 글 말미에 적는다. 자신의 다짐과 약속을. 정말 그 말들이 꼭 이루어지기를 아울러 빈다.
사람들은 내게 묻습니다.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가난한 아이들 찾아가는 일은 언제까지 할 건가요? 몇 년 채우고 그만둘 건가요?"
그러면 나는 대답합니다.
"그 일은 내 생명이 다할 때까지 할 거예요. 왜냐하면 그건 드라마가 아니니까요. 드라마가 아니라 실제로 아이들이 죽어가고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