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서울 대학로에서 열린 114주년 노동절 행사에 참석한 노동자들은 한번은 웃고 한번은 울어야 했다.
행사를 주관한 민주노총은 이날 노동절 행사에서 오는 6월 국회에 입성할 '노동자 국회의원' 10명에게 '두 가지 선물'을 전달했다. 하나는 '부패정치를 갈아엎을 새 불판', 다른 하나는 <전태일 평전>이었다.
참석자들은 당선자들이 '새 불판'을 들어 보여줄 때는 폭소를 터뜨리면서 큰 박수를 보낸 데 반해 <전태일 평전> 선물에 대해서는 웃음을 멈춘 채 '엄숙한 박수'를 보낸 것이다.
비정규직 철폐 등 6가지 이슈 쏟아져..."남한정치에 지각변동 일어났다"
114주년 노동절 행사에서 쏟아진 주된 이슈는 ▲비정규직 차별 철폐 ▲이라크 파병 철회 ▲WTO의 FTA 반대 ▲노동건강권 쟁취 ▲노동3권 강화 ▲사회공공성 강화 등 6가지였다.
특히 노동절 본행사가 열리기 전 '최저임금실천단'도 연설을 통해 비정규직 차별 철폐와 최저임금제 개선을 주장하며 민주노동당과 정규직 노동자의 동참을 호소했다.
"아침 6시부터 일하고도 일당이 2만80원이다. 한달 꼬박해도 56만7650원밖에 못받는다. 56만원 가지고 생활할 수 있나.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정규직 노동자 임금의 절반은 받아야 한다. 최저임금제도를 개선하지 않고 노동자간 빈부격차를 해결해 나갈 수 없다. 민주노동당 10명 당선자들도 최저임금제를 개선하는 데 동참해 달라. 정규직 노동자들도 앞장서 달라."
개회가 선언되고 각 단체들의 깃발이 등장한 뒤 이수호 민주노총 위원장은 축사에서 "114년 전 싸움으로 쟁취한 우리의 권리를 쟁취하고 확대하고 특히 비정규직에 대한 부당한 처우를 막아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위원장은 "자본가들은 전세계적인 신자유주의 자본공세가 노동자들의 고임금과 욕심 때문이라고 악의적인 선전을 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특히 "이라크 전쟁은 미국의 이익을 위한 추악한 침략전쟁이기 때문에 여기에 우리가 개입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고 이라크 파병에 대한 반대의사를 분명히 했다.
이 위원장에 이어 연단에 올라선 권영길 민주노동당 대표는 먼저 "드디어 민주노동당이 이 땅의 가장 중요한 세력으로 명실상부한 제3당으로 올라섰다"고 '진보야당시대'를 선언했다.
권 대표는 "많은 나라에서 노동절은 축제가 되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탄압받고 착취받는 노동자의 투쟁의 장"이라며 "60%의 비정규직문제를 풀지 않으면 경제를 살릴 수 없다"고 비정규직 차별 철폐를 거듭 주장했다.
권 대표는 "민주노동당 당선자 10명은 17대 국회가 열리면 비정규직을 만들어낸 근로자 파견법을 철폐시키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겠다"며 "또 16대 국회에서 주5일 근무제를 졸속 처리해 많은 노동자들이 임금을 삭감당하고 있는데 여기에 대한 보완장치를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권 대표는 이어 "선거 때 공무원노조와 전교조가 민주노동당을 지지했다는 이유로 지도부들이 구속됐다"며 "하지만 이는 헌법에 보장된 양심적 행위이기 때문에 모든 노동자들에 대해 사면복권 조치를 해야 한다"고 노무현 정부에 촉구했다.
정광훈 민중연대 상임의장은 "오늘은 웃는 날"이라고 말문을 연 뒤 "남한에 정치적 지각변동이 일어났다"며 "노동자·농민·빈민 등의 합법적 지지를 받아 진보정당이 국회에 진출했다"고 민주노동당의 원내진출에 정치사적 의미를 부여했다.
정 의장은 이어 "우리의 무기는 말과 촛불인데 이제 우리는 무기를 들어야 한다"며 "우리는 더 큰 등불을 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중댄스그룹 '젠'의 아지프로 인상깊어..."노동자 세상 원하면 단결투쟁하라"
서정길 전농 부의장은 "우리의 대표가 국회에 진출했기 때문에 민중의 요구를 제도화할 수 있게 됐다"며 "우리의 대표들이 노력해서 살맛나는 세상을 만들 수 있도록 하자"고 호소했다.
행사에 참석한 내빈 중 유일한 시민단체 인사인 정현백 한국여성단체연합 대표도 "오늘은 대단히 의미있는 날"이라며 "노동자를 대변하고 있는 민주노동당이 10석을 차지해 노동자에게 큰 힘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 대표는 이어 '여성의원 39명 입성'을 언급한 뒤 "UN의 권고도 무시해 무산된 호주제 폐지와 73%의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차별을 철폐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행사 중간중간에는 노래패 '우리나라'와 이주노동자 율동패가 무대에 올라 노래와 율동을 선보였다. 특히 민중댄스그룹인 '젠'은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는 <공산당선언>의 끝 구절을 외치며 랩이 가미된 <인터내셔널가>를 불러 많은 노동자들의 시선을 붙잡았다.
특히 '반자본'을 선언한 젠의 '아지프로'(선전선동)는 참가자들뿐만 아니라 행사를 구경하던 시민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주었다.
"자본가들은 신자유주의를 담담하게 받아들이라고 한다. 또 고용시장 유연화가 이루어져야 경제가 산다고 한다. 저 놈들은 왜 당당하고 뻔뻔한지 아는가. 왜 우리를 두려워하지 않는지 아는가. 노동계급에게 혁명의 전망이 없기 때문에 우리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제 우리는 계급의 원칙과 변혁의 열망이 있다는 걸 보여주어야 한다. 노동자 세상을 원하는가. 그러면 단결하고 투쟁하라. 투쟁하지 않는 노동자에게 미래는 없다."
젠의 공연이 끝나고 열린 '노동자 정치원년' 한마당에서는 민주노동당 10명의 당선자에게 '새 불판'과 <전태일평전> 등 두가지 선물이 전달됐다.
'감격적인 선물'을 받은 최순영 당선자는 "거리투쟁의 결과로 지금의 희망을 이루어냈다"며 "이제부터 시작이고 4년 후에는 제1야당으로 우뚝 설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참가자들은 대학로 행사를 마무리하고 광화문까지 행진했다. 일부에서는 "노동절 행사가 민주노동당의 총선 승리을 위한 축제의 장으로 변질됐다"고 지적하기도 했지만 국회의원 당선자가 노동절 집회에 참석하기는 역사상 처음이어서 노동자들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의 관심도 뜨거웠다. 특히 민주노동당의 위상이 과거에 비해 크게 높아졌음을 보여준 노동절 행사였다는 게 참가자들의 평가다.
천지인 특별공연에 이주노동자도 참여해 눈길..."손에 손잡고 단결하라"
한편 노동절 본행사가 시작되기 전 대학로에서는 운수노동자결의대회와 함께 민주노동당이 주최한 집회도 열렸다. 특히 운수노동자들은 "철도, 지하철, 항공, 화물, 택시, 버스 등 이 사회를 움직이는 바퀴는 다 모였다"며 "정부와 자본가에게 우리의 요구를 보여주자"고 외쳤다.
특히 최초의 원내진출로 안팎의 관심이 높아진 민주노동당의 노동절 집회에서는 언론사들의 취재경쟁이 치열했다. 민주노동당 당선자들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취재대상이 될 정도였다.
권영길 대표는 "10명의 당선자들은 국회에 들어가더라도 현장과 결합해 국민의 목소리를 담아낼 것"이라며 "당원과 국민에게 약속한 대로 모든 특권을 반납하고 현장 동지들과 다름없이 의정활동을 펴겠다"고 약속했다.
권 대표는 "민주노동당이 있음으로 해서 정치개혁이 되고 부패금권정치가 없어지고 지역주의와 패거리정치가 청산될 것"이라며 "4년 후 총선에서 제1야당이 되고 2012년에는 집권당이 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천영세 당선자도 "10명의 당선자는 5만 당원과 1300만 노동자와 400만 농민, 350만 도시 빈민 등과 함께 하겠다"며 "그분들의 뜻을 올곧게 반영하겠다"고 다짐했다.
긴 수염과 개량한복으로 유명해진 강기갑 당선자는 "국민들이 민주노동당에 걸고 있는 희망을 가슴에 안고 민주노동당 당선자들과 손잡고 4년 동안 죽었다 하고 열심히 기겠다"고 말해 좌중에 웃음을 선사했다.
이날 민주노동당 행사에는 민중록밴드 '천지인'이 특별출연해 많은 박수를 받았다. 특히 외국의 노동가요인 'Hand in hand we must unite'('우리는 손에 손잡고 단결해야 한다')를 부르는 와중에 이주노동자도 동참해 노동절의 '국제연대정신'을 보여주기도 했다.
[1신 : 1일 새벽 4시]
"노동자는 하나, 정규직-비정규직 단결하자"
[현장] 114주년 노동절 전야제... 민주노동당 당선자 5명도 참가
"노동자는 하나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단결해 비정규직을 철폐하자"
114주년 노동절을 하루앞둔 4월 30일 저녁 8시, 중앙대 대운동장에서 열린 '노동자 결의대회'에서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현실이 집중적으로 떠올랐다. 민주노총의 올해 최우선 과제가 비정규직 철폐임을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타워크레인 노조, 마일드세븐판매노조, 현대중공업 사내하청노조 등 다양한 단위의 비정규직 노조 대표자들이 무대에 올라 자신들의 상황을 설명했다.
이수호 민주노총 위원장 역시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바꾸고, 부득이 비정규직이 필요하다면 차별이 없어야한다. 오히려 비정규직이 임금을 많이 받아야 공평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서울 집중 없어도 예년과 비슷한 규모
이날 대회에는 5000여명의 노동자와 대학생들이 모여들었다. 운동장 가득히 각 단위 노조와 민주노동당 지구당 깃발, 대학 깃발 등이 나부꼈다.
참여인원은 예년하고 큰 차이가 없었지만 올해 노동절이 각 지역에서 열린다는 것을 감안하면 오히려 늘어난 셈이다. 애초 민주노총이 예상한 3000명을 훨씬 뛰어넘었고, 뒤늦게 결의대회를 찾은 학생들은 무대 바로 앞 운동장 땅바닥에 앉았다.
대학생들은 라면 등의 먹을거리를 박스로 쌓아놓고 뒤풀이에 대비(?)하는 모습이었다. 노동자들도 노숙을 위한 침낭, 매트리스를 가져온 경우가 많았다.
대회가 시작하기 전 대운동장 입구에는 이주노동자 투쟁기금마련을 위한 '혁명가 티셔츠' 판매, 노동관련 서적 판매, 인터넷 정치패러디 수사반대 변호사비 마련모금, 룡천돕기 모금 등 각종 모금 및 판매부스가 마련됐다.
정규직·비정규직 한목소리 "비정규직 철폐"
이날 결의대회에서는 비정규직 문제를 겪고 있는 몇몇 노조들이 특별결의발언을 맡아 자신들의 노조 상황을 전달했다.
고 박일수씨 분신사건으로 부각됐던 현대노동차 사내하청노조의 김주익 위원장은 "너무 작은 성과로 투쟁을 접었다. 사측은 무자비한 탄압을 계속하고 있다"고 전했다. 김 위원장은 "아직 그 때의 약속을 지킬 기회가 많이 남았다"며 "깨질 때 깨지더라도 다시 시작하는 노동자가 되자"고 당부했다.
장애인, 이주노동자 등 다양한 차별을 경험하는 노동자와 한달 약 57만원 최저생계비만을 임금으로 받는 저임금노동자도 차례로 이날 무대 위에 섰다.
박영희 장애이동권연대 공동대표는 휠체어로 무대에 오른 뒤 "장애인도 한 인간으로, 노동자로서 제대로 이동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저임금노동자들은 부대자루에 '사회복지 깡통예산'이라고 적힌 빈 깡통을 주렁주렁 달고, '빈곤문제해결'이라는 피켓을 목에 걸어 눈길을 끌었다.
결의대회는 밤 11시께 '쇠머리대기' 대동놀이로 흥겹게 끝났다. 각각 '단결'팀과 '투쟁'팀으로 나뉜 노동자들이 '쇠머리'를 맞부딪히며 힘을 겨루는 놀이였는데, 이날 놀이에서는 '단결'과 '투쟁'이 반갑게 손을 맞잡는 것으로 끝이 났다.
맞닿은 쇠머리에는 각각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가 함께 결의문을 낭독했다. 김혜정 보건의료노조 서울대지부 대의원(정규직)과 서쌍용 현대자동차 울산 비정규직 노조 사무국장(비정규직)은 결의문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단결해 비정규직을 철폐하자, 여성노동자, 이주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 연대해 열사의 뜻 계승하자"고 호소했다.
| | | "노동절 투쟁의 의미, 민주노동당의 토대" | | | 민노당 당선자 무대인사로 원내진출 결의 밝혀 | | | |
| | | ▲ 4월 30일 노동자 결의대회에 참석한 민주노동당 당선자들이 '철의 노동자'를 부르고 있다. 왼쪽으로부터 천영세, 강기갑, 단병호, 심상정, 조승수 당선자. | ⓒ권박효원 | 이번 노동절은 지난 총선에서 민주노동당 원내진출로 노동자, 농민의 정치세력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더 눈길을 끌었다. 이수호 민주노총 위원장은 "우리 힘으로 뽑은 민주노동당 당선자들이 (노동관련) 법안을 만들고 힘차게 싸울 수 있도록 만들어줘야 한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이날 결의대회에는 민주노동당 당선자 5명이 무대에서 자신의 결의를 밝혔다. 특히 단병호 당선자는 작년까지 민주노총 위원장이어서 노동자들에게 더 큰 박수를 받았다. 무대에서 내려온 단 당선자에게 사인을 요청하는 노동자나 대학생들도 많았다.
단 당선자는 "114년 내려온 투쟁의 의미를 생각해야 한다. 한국도 87년 대투쟁 이후 민주노조가 들어섰고 민주노동당도 그 토대에서 시작해 의원까지 나왔다"며 노동절에 대한 애정을 나타냈다. 천영세 당선자 역시 "노동자, 서민과 함께 국회에 진출하는 것과 같다"며 연대감을 나타냈다.
무대 위에 올라선 당선자들은 "노동해방 새 세상을 열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민주노동당과 서로 믿고 비정규직 철폐를 위해 싸우자"고 입을 모았다. 다음은 민주노동당 당선자들의 30초 연설.
천영세 당선자 민주노동당이 국회에 입성합니다. 299명 중에 10명이 의회에 가서 누굴 믿고 싸우겠습니까. 여기있는 노동자, 농민들을 믿고, 여러분은 10명을 믿고 철폐를 위해 싸웁시다.
강기갑 당선자 일하고 싶은 사람은 열심히 일할 수 있는 세상. 열심히 일하면서 희망과 보람, 긍지를 느낄 수 있는 세상, 일한만큼 더 잘 살수 있는 나라. 노동자, 농민이 하나되어서 만듭시다
단병호 당선자 저희 10명을 국회르 보낸 뜻을 잘 알고 있습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약속드리겠습니다. 함께 있겠습니다. 또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심상정 당선자 감사합니다. 똑바로 잘하겠습니다. 비정규직노동자, 여성, 이주노동자, 성적소수자 차별이 철폐되고 노동자, 농민이 잘사는 노동해방 새 세상을 엽시다
조승수 당선자 지금 정치는 기만적인 정치, 가진 자의 정치, 사기 정치입니다. 비정규직이라는 이름이 없어질 때까지 열심히 하겠습니다.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