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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 백호는 선녀들에게 물었습니다.
"측간신 말고, 이 근처에 살고 계신 가신이 또 누가 있어?”
진달래 선녀가 말했습니다.
"저 고개를 건너가면, 논두렁에 삼신 할머니가 앉아계실 거야, 그런데 거기는 이미 우리가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라서, 너희들 둘만 가야되겠다. 우리들 날개옷 입고 가면 금방 갈 수 있을텐데..."
"뭐, 저 고개 건너는 것쯤이야 일도 아니지, 부지런히 가면 반나절이면 가겠다."
백호가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는 사이, 바리는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그 고개는, 바리가 보기에 그리 만만한 높이가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그 산 주변으로도 산들이 쭈욱 이어져 산들을 돌아넘어간다는 것도 어려워 보였습니다.
"어, 저 높은 산을 또 넘어가자구?"
바리가 볼멘 소리로 이야기하자, 백호가 말했습니다.
"일단 이 마을만 걸어서 빠져나가자."
선녀들이 말했습니다.
"바리야, 백호야, 우리 또 볼 수 있을 거야, 무슨 일이 있더라고, 포기하지 말고.. 우리는 너희들이 끝내 성공할 거라고 믿는단다."
"삼신할머니 보고든, 꼭 우리 안부를 전해다오, 이 마을에 요즘엔 한번도 안 놀러오셔서 전부 삐져 있다고 하면 아실 거야."
그러자 선녀들은 학교 마친 중학생 언니들처럼 또 까르르 웃었습니다.
마을을 건너가는 길은 참 추웠습니다. 눈은 내리지 않았지만, 한겨울로 가고 있는 그때 부는 바람은, 조금만 걸어도 볼이 빨갛게 달아오랐습니다. 추위 때문인지 한산한 마을을 지나서 산비탈에 이르자, 백호가 바리 앞에 엎드리면서 타라고 했습니다.
"바리야, 내 목을 꼭 붙들어야 한다."
바리가 백호 등에 올라서 목을 꼭 붙들자, 백호는 금세 일어나서 성큼성큼 산을 뛰어오르기 시작했습니다. 큰 걸음으로 산을 오르는 백호의 모습은, 꼭 날다람쥐가 나무 사이를 날아다니는 모습과 같았습니다.
저 멀리서 산을 내려오는 사람 두 명이 보였습니다. 그 아저씨들은 저 아래에서 호랑이를 타고 올라오는 바리를 보자마자 얼어붙은 듯 가만히 서 있기만 했습니다. 바리는 호랑이를 보고 무서워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큰 소리로 겁내지 말라고 외치고 싶었습니다.
그 아저씨 중 한 사람이 옆사람에게 큰소리로 외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자네.. 저 여자애가 웅크리고 앉아 날아오는 거 보이는가?"
"귀신, 귀신이 아닌가? 왜 이런 낮에 날아다니는 거야?"
백호 등에 업힌 바리는 그 아저씨들을 지나가면서 외쳤습니다.
"저 귀신 아니에요."
그러면서 바람과 같이 휭 날아가버렸습니다. 백호가 말했습니다.
"저 사람들한텐 내 모습이 보이지 않으니까, 저는 지금 혼자 날아다니고 있는 것처럼 보일 걸?"
"뭐라구?"
그렇다면 저 아저씨들이 바리는 귀신으로 착각한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바리를 보고 놀라 부리나케 달아나고 있는 아저씨들을 생각하니 저절로 웃음이 나왔습니다.
"바리야, 더 꼭 붙잡아!"
백호와 바리는 이제 산 정상에 도달해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바리는 호랑이의 목을 꽉 껴안았지만, 자꾸만 몸이 기울면서 앞으로 고꾸라질 것만 같아 겁이 났습니다. 자기도 모르고 소리를 지르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백호가 말했습니다.
"정말 내일부터 이 산은 날아다니는 꼬마귀신이 나오는 곳으로 알려지겠군. 소리 좀 그만 질러, 귀신이 우는 줄 알겠다."
"그러게 제발 천천히 좀 가. 무서워 죽겠어."
바리가 말하자마자 백호는 이미 산을 다 내려와 있었습니다. 호랑이 등에서 내려온 바리는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습니다.
"다음부턴, 헉헉... 제발... 헉... 천천히 가자."
추수가 끝난 논들은 사람들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날씨가 추워서 그런지 공 차러 나온 아이들도 없었습니다.
"와, 이 넓은 논에서 어떻게 삼신할머니를 찾아내지??"
바리가 고개를 아무리 둘러보아도 근처에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저 논두렁 어딘가에 앉아계실 거야."
백호가 어슬렁어슬렁 걸으면서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습니다. 저 건너편에 나지막한 나무 한 그루가 보였습니다. 그 나무 밑 의자에 머리가 하얀 할머니 한 분이 앉아계셨습니다.
백호는 얼른 다가가 그 할머니 앞에서 절을 올렸습니다.
"백두산 산신님의 분부를 받고 내려운 백호와 바리입니다. 바리야, 너도 인사해."
바리는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했습니다.
"안녕하세요. 바리에요."
그 할머니는 고개를 돌려 바리를 바라보았습니다. 고개를 까딱하시면서 바리의 귀여운 인사를 받기는 하셨는데, 어디가 모르게 안색이 안 좋았습니다. 바리는 백호를 툭툭 치면서 귓속말로 물었습니다.
"백호야, 저 할머니가 삼신할머니 맞아? 무슨 고민이 있는 것 같애."
백호가 할머니에게 물었습니다.
"이 아이, 아시죠? 할머니께서 점지해주셨을 거에요. 저와 함께 가신분들의 기를 모으러 다닙니다. 붉은눈호랑이들이 극성입니다. 어서 이 여의주에 기를 불어넣어주세요."
삼신할머니가 천천히 입을 열었습니다.
"기억하고 말고, 귀여운 바리, 이세상에 모든 아이들은 다 내가 친히 서천꽃밭에서 자라는 꽃들을 모아다가 점지를 해주지, 바리는 특별히 더 기억나. 아주 화창한 봄날이었지, 그때가? 바리에게 줄 살오름꽃과 뼈오름꽃을 가지고 선녀들이랑 바리 잡으로 가고 있는데, 그때 바리네 동네 앞에 진달래들이 아주 아름답게 피었더라구. 그때 내가 그 진달래 한송이 꽃을 꺾어서 바리 살오름꽃에 넣었어. 그래서 바리는 다른 아이들보다 더 용감하고, 씩씩한 아이가 되도록 말이야. 내 예상이 맞았구나. 바리가 이렇게 훌륭하게 자라서, 이렇게 만나게 되다니."
바리는 짐짓 기분이 좋았지만, 일부러 표 내지 않기 위해서 일부러 조금 인상을 찌푸리고 말했습니다.
"할머니, 여의주에 할머니 기를 불어넣어주세요. 저 백호하고 빨리 우리 어머니 아버지를 구하러 가야 돼요."
주름이 지긴 했지만, 아주 고운 할머니 얼굴은 금세 잿빛이 되었습니다.
"나도 이야기는 들어서 알고 있다만, 지금은 나도 너희들을 도와줄 수가 없구나."
"아니. 무슨 일이에요?"
백호가 놀라 말했습니다.
"그게 몇 년쯤 전이야. 꽤 오래 전이지. 서천꽃밭이 산오뚝이들한테 습격을 당한 적이 있었어. 도깨비 따라다니면서, 공부나 하던 것들이, 언제 그런 능력을 얻었는지... 이제 날아다니기까지 한다더군. 그 귀한 도깨비들의 뿔인장을 훔쳐낼 줄도 알고…. 그때 산오뚝이들이 서천꽃밭에서 훔쳐간 꽃들이 수천 송이는 될 거야. 그 꽃들을 키우려면 수백 년이 걸리는데 말이야."
"그래서요..."
바리가 침을 꿀꺽 삼키고 물었습니다.
"그 살오름꽃하고 뼈오름꽃을 가지고, 그 산오뚝이들이 무슨 짓을 꾸미고 있나 알아보니, 그 꽃들을 전부 태백산맥에 살고 있는 호랑이 우두머리에게 바쳤다는 거야. 그동안 그 호랑이들에게 빌붙어 살면서 오만가지 도술을 다 배웠던 게야. 호랑이들이 사람들이 잡아오면, 그 사람들을 호랑이들로 전부 바꾸어 버리는데, 그때 서천꽃밭의 살오름꽃이 필요했었어. 그 살오름꽃을 사용하려면, 꼭 가지고 있어야하는 게 있는데..."
"그게 뭔데요?"
할머니가 말끝을 흐리자, 백호가 물었습니다.
"내가 아이들을 점지할 때 쓰는 버드나무가지란다. 그 버드나무 가지들로 주문을 걸어야지 그 살오름꽃이랑 뼈오름꽃들이 살이 되고 뼈가 되거든. 그 버드나무 가지를 빼앗아 가버린 게 벌써 몇 달 전이야. 그래서 나는 요즘 아이도 점지할 수가 없단다. 게다가 그 버드나무 가지가 있어야지, 너희들에게 기를 넣어줄 수가 있단다. 나 혼자서는 도저히 감당을 못해."
할머니는 한숨을 푸욱 쉬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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