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딸아이가 다니는 천안 B여고 2학년이 올해 봄 소풍을 4일 홍성 용봉산으로 온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냉큼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딸아이는 중학생 시절에 '가족 나들이'로 이미 두번이나 올라본 홍성 용봉산으로 학교 소풍을 가게 돼서 실망스럽다고 했지만, 나는 날짜도 꿰어 맞춘 것 같고, 그런 다행이 없지 싶었다.
딸아이는 1학년이던 지난해 봄 소풍을 안면도 꽃지로 오게 되었을 때도 실망스럽다는 말을 했다. 하지만 나는 고향 근처로 학교 소풍을 온 딸아이도 만나고 자연스럽게 선생님들께 인사도 드릴 수 있는 기회여서 반가운 마음이 컸다.
올해도 처음에는 지난 해처럼 딸아이의 김밥 도시락을 준비하고 또 생선회도 마련해서 차에 싣고 가서 선생님들을 뵙고 인사를 드릴 생각이었다. 하지만 올 봄에는 이런저런 일로 지출이 많았던 데다가 생선회 상자를 들고 용봉산을 오른다는 것도 수월한 일이 아닐 것 같아서 포기하고 말았다.
그래도 내가 용봉산으로 가서 딸아이를 태우고 태안 집으로 오는 일은 시행하기로 했다. 다음 날이 어린이날 공휴일이고, 또 지난해 작고하신 장모님의 1주기가 되는 날이라서 보령시 청라면의 산소를 성묘하는 일이 계획되었기 때문에….
딸아이에게 전화로 그 얘기를 해주고 소풍 도시락을 네가 준비하라고 했더니, 녀석은 오히려 반색을 하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유부로 '유부초밥' 도시락을 쌀 생각이라고 명랑하게 말했다. 처음부터 집의 수고를 만류한 녀석이었다. 지난해 봄소풍 때는 집에서 김밥 도시락을 싸서 갖다 주겠다고 하자 반색을 했었는데, 올해는 오히려 집의 수고를 걱정하는 녀석을 보니 일년 사이에 뭔가 좀 더 성숙을 한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아이는 용봉산에서 점심을 먹고 근처 고건축박물관으로 이동을 한 시점에서 내게 전화를 걸었다. 나는 태안에서 40분 거리인 그곳에 오후 2시 40분쯤 도착해서 미리 담임 선생님 허락을 얻고 정문 앞에 나와 있는 딸아이를 내 차에 태울 수 있었다. 거기까지 가고서도 선생님들께 인사를 드리지 못하는 것이 적이 죄송했지만 여덟대의 버스가 막 출발을 하는 중이어서 그러기도 어려운 일이었다.
서산과 해미를 거치고 덕산고개를 넘어 그곳에 간 것과는 달리 돌아올 때는 천수만 A·B지구 간척지 제방 길을 타고 한껏 드라이브 기분을 냈다. 간월호 근처 길옆의 작은 화원 앞에 차를 멈추고 정자 안으로 들어가 앉아서 드넓은 A지구 들판을 바라보며 아이가 준비해 온 과자를 먹기도 했다.
그 정자 안에서, 그리고 다시 제방 길 드라이브를 하면서 모처럼 만에 딸아이와 단둘이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아이는 과거에 태안 백화산은 물론이고 홍성 용봉산을 비롯하여 인근의 여러 산들을 가족과 함께 오른 이력이 많아서 누구보다도 쉽게 용봉산을 오를 수가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 의외로 너무 많은 아이들이 별로 높지도 않은 용봉산 오르는 것도 힘들어하고 몇 번씩 쉬고 하는 것을 보니 측은한 마음이 들더라고 했다.
오로지 명문대 진학만을 목표로 사력을 다하는 3학년 언니들을 보면 겁도 나고 벌써부터 내년 일년이 부담스럽게 느껴진다면서, 수능 시험에 대한 반감을 말하기도 했다. 일률적인 한차례 시험으로 전체 대상 학생들의 대학 진학 자격을 판별하는 수능 제도는 절대로 합리적인 방식이 아니라는 얘기였다.
"수능시험은 철폐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한차례 시험으로 얻은 수능 점수만을 가지고 눈치 싸움을 하며 이 대학 저 대학으로 우왕좌왕하게 하는 것은 옳은 교육 방식이 아니에요. 그것은 처음부터 인격을 포기하게 만드는 짓이에요."
처음부터 자기 적성을 찾아서 대학을 선택하고, 적성에 맞는 대학에 가서 자유롭게 시험을 보게 하는 '적성 위주 대학 입시' 방안을 놓고 좀 더 집중적으로 연구를 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였다.
그러면서 딸아이는 우리 나라의 교육 풍토는 초등학교에서는 많이 듣는 '전인교육'이라는 말이 중학교 고등학교로 오면서 저절로 사라져 버리는 형국이라고 말했다. 학교의 모든 수업이 '학력(學力)'이라는 미명 속에서 시험 점수만을 목표로 하는 실리 위주 교육을 추구하기 때문에 그만큼 인격을 갖추고 철학적인 품성을 갖게 하는 일은 무시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대학 서열화 같은 것은 반드시 철폐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또 대학 서열화를 없앨 수 있는 첫째 조건으로 서울대를 없애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이가 지레 서울대를 포기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없지 않았으나 나는 그쪽으로 좀 더 흥미가 동했다.
"그래도 서울대에서 배출한 인재들이 나라와 사회를 위해서 많은 일을 하지 않니?"
"인재 배출이라는 것을 무시할 수는 없죠. 서울대 출신들이 각계 각층에서 능력을 발휘하는 것도 인정해야 하고요. 하지만 그들만이 인재인 것은 아니에요. 오히려 우리 사회에서 서울대 출신이라는 유형무형의 프리미엄은 유해한 것이 될 수도 있어요."
"그래. 서울대 프리미엄이 유해한 것이 될 수 있다는 말은 중요한 말일 것 같다. 또 과거나 현재나 나라의 옳지 못한 일들에 서울대 출신 두뇌들이 많이 앞장을 선 현상을 놓고 보면, 서울대 등 명문대를 나왔다는 것 자체가 어떤 인격이나 철학적인 품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 같고…."
"언젠가 아빠가 하신 말을 잘 기억하고 있어요. 프랑스에서는 해마다 사법 시험의 첫 문제가 시(詩)에 관한 문제라고 하신 말씀…."
"그 말을 잘 기억하고 있다면, 프랑스 사법시험 첫 문제의 의미를 생각해 봤니?"
"출제 문제 자체보다도, 해마다 사법 시험의 첫 문제가 시에 관한 문제라는 사실이 지니고 있는 어떤 상징성이 더 중요하다고 봐요. 고도의 철학성의 바탕 위에서 그런 발상이 가능했고 또 유지된다고 보거든요. 전 사법 시험의 첫 문제를 시에 관한 문제로 출제하는 것이 전통이 된 프랑스 사회의 그런 정신적 철학적 바탕이 참 부러워요."
그리고 딸아이는 갑자기 지난 4·15 총선에서 당선한 이인제씨에 관한 얘기로 화제를 돌렸다.
"오늘 아침에도 텔레비전 뉴스에서 이인제씨가 검찰 조사를 거부하고 있는 것에 관한 보도를 보았어요. 이인제씨가 서울대 출신이고 과거 법관을 지낸 사람이고 대통령 자리를 넘보기까지 한 사람이라는 사실 때문에 더욱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어요. 또 우리 충청도 땅에서 벌어지는 일이고 해서 더욱…."
"그래, 넌 그 일을 어떻게 생각하니?"
"이해할 수 없어요. 너무 비겁하다고 생각해요. 자신의 말처럼 떳떳하다면 당당하게 검찰에 출두해서 조사를 받는 게 옳지 않겠어요? 조사 결과 정말 아무 잘못이 없고 정당하다면 이인제씨는 그 날로 영웅이 될 수 있지 않겠어요? 검찰에 대해 보복성 표적 수사라고 하는 말 자체가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들어가는 거라고 저는 봐요."
"그럼, 넌 검찰을 믿니?"
"옛날 검찰하고는 많이 다르다고 아빠가 그러셨잖아요? 적어도 없는 사실을 만들거나 턱없이 부풀려서 뒤집어씌우지는 않으리라고 생각해요. 당연히 그럴 수도 없는 시대이고…."
"검찰의 수사 의지가 어떤 정치적 계산에서보다는 사법 정의와 함께 우리 사회의 총체적 발전의 기틀을 위해서 그렇게 작동하는 것으로 본다는 말이겠구나?"
"그렇죠. 그러니까 앞으로 모든 일들이 좋은 방향으로 발전해 나갈 거라고 전 봐요."
"옳은 생각이다. 또 반드시 그래야 하고…. 무릇 역사 발전이란 어떤 계기와 탄력에 의해 더욱 분명해지는 법이고, 우리 시대는 그 계기와 탄력을 잘 만들어 가고 있으니까….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있겠니?"
"조금요."
그리고 딸아이는 웃었다. 아이의 웃음이 싱싱해서 주변의 싱그러운 신록과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에서 친구들과 그런 얘기도 많이 하니?"
"조금은 해요. 박노자를 알거나 홍세화를 읽는 아이들이 적어서 좀 재미없긴 하지만…. 또 요즘엔 시험을 치르느라고 여유가 없었지만…. 하여간 제가 좀 구실을 하는 편이에요."
딸아이는 또 웃었다. 나는 딸아이의 웃음을 보며 문득 딸아이가 연령적으로 어떤 계절에 속할까 생각해 보았다. 신록의 계절인 5월에 해당할지 몰랐다. 신록의 계절 5월은 사람으로 따지면 청소년기에 해당할 터였다.
나는 딸아이에게서 좀 더 신록의 계절을 느끼는 기분이었다. 내 딸아이는 지금 신록의 계절 초입머리에서 한창 신록이 되어 가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 딸아이와 대화를 나누며 함께 살아가는 한 나에게서도 푸른 나뭇잎은 어느 정도 유지될 수 있을 터였다. 그리고 푸른 잎이 충실해야 훗날 가을의 단풍도, 또 낙엽도 충실한 모습일 수 있을 것이었다.
내가 아직은 내 어린 자식들에게서 신록의 향취를 느끼고 바라고 또 키워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과 함께 다시금 어떤 희망을 가슴 깊이 느낀 즐거운 하루였다.
|
|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