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천으로 인권위가 있는 을지로1가 금세기빌딩 1층 로비에서 진행된 이날 기자회견은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아래 한국장총) 주신기 회장을 비롯, 관련 단체 종사자 30여 명이 모인 가운데 진행됐다.
이번 장애계와 시민사회 단체의 기자회견 및 인권위 진정은 2일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이 일산홀트복지타운에서 장애인 목욕 봉사한 것을 보도하면서 일부 언론이 중증장애인의 목욕 장면을 적나라하게 내보내면서 촉발됐다. 이에 대해 장애계는 4, 5일 연속적으로 항의 성명을 발표하고 열린우리당과 해당 언론사에 공개 사과와 사진 삭제를 요구한 바 있다.
열린우리당, 8일 논평 통해 "신중치 못한 점 사과"
정 의장 활동 "순수성 의심의 여지 없다"
이에 대해 열린우리당은 7일 김기만 선임부대변인 명의의 "장애인 인권 보장에 더욱 노력할 것"이라는 제목의 논평을 냈다.
이 논평은 "정 의장 활동의 순수성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본다"며 "그러나 이와 관련한 언론 보도에서 장애인을 목욕시키는 장면이 걸러지지 않은 채 노출됨으로써 결과적으로 장애인과 그 관계자들에게 정신적 불편을 줄 요소가 있었던 점은 유감이다. 좀더 신중하게 보도하지 않은 언론사의 책임도 없지 않지만, 당으로서도 보다 세심하고 철저하게 신경쓰지 못한 점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장애인 단체의 항의 성명에 대해서는 "일부 장애인 단체가 성명을 낸 취지는 십분 이해하지만 이번 일의 진정성이 잘못 전달된 데 따른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언론이 장애인 보도에 대해 신중을 기해줄 것과 이 문제를 "정치권 일부에서 언급하는 것은 적절치 않은 일이다. 정치적 공세일 뿐이다. 즉각 중단하기 바란다"고 밝혔다.
장애계, "변명이지 사과 아니다" 밝혀
이날 기자회견에서 사회를 맞은 장애인이동권연대 박경석 공동대표는 공식적으로 장애계의 입장을 열린우리당에 전달하고 사과를 요구했지만 "답변은 오직 변명뿐이었다"고 지적했다. 그래서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과 해당 언론사를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해 인권 교육을 받도록 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한국장총 주신기 회장은 "지난 2, 3일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이 중증장애인을 목욕시키는 과정이 여과 없이 방송과 언론에 방영되었고 그것을 본 모든 장애인이 놀랐다"고 밝혔다. 그는 "정동영 의장도 예비 장애인으로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너무 답답하다"며 "그럼에도 정 의장은 직접 사과하지 않고 간접적 표현을 하고 있는데, 참을 수 없다"고 말했다. 주 회장은 "정 의장이 진심으로 사과하기 바란다"라며 "만약 직접 사과하지 않으면 계속해서 끝까지 싸울 것"이라는 의지를 밝혔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김정열 소장은 국가인권위원회 진정 요지에서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 대한 차별 등 장애인 인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시점에 이번 사건은 장애인 문제를 더 후퇴시킨 일"이라고 그 의미를 부여했다. 김 소장은 "정치권이 이번 사건을 또 다시 정파적 이익의 대상으로 이용할까봐 문제화하지 않으려고 했다"며 "하지만 그렇게 한다면 또 다른 장애인에 죄를 짓는 것 같아 인권위에 제소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이번 기회에 시설 생활자 "자기 결정권, 선택권 보호받아야"
중증장애인독립생활연대 윤두선 회장은 이번 사건이 "시설기관 장애인의 자기 결정권과 선택권이 존중되고 보호받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윤 회장은 정동영 의장 자신이 옷을 벗고 함께 목욕을 했다면 그렇게 보도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장애인의 수치는 전혀 개의치 않는 인권 의식에 문제를 제기했다.
지지 발언에서 사회당 신석준 대표는 "어떤 경우에도 사람이 다른 사람의 장식물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밝히고 "이번 사건을 계기로 장애인도 같은 사람이라는 인식이 확립되어야 하며 정 의장이 직접 사과해 장애인에 대한 의식을 사회적으로 환기시키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출한 진정 요지에는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과 MBC, 연합뉴스, 일산홀트복지타운이 장애를 가진 사람의 인격권과 자기결정권을 무시한 처사로 당사자에게 심한 수치심과 모욕감을 느끼게 하는 범죄 행위를 저질렀다고 전제하고,
▲국가인권위원회는 정동영 의장이 장애인의 인권 침해를 자행한 것에 책임을 지고 공식적인 방식으로 직접 공개 사과하고 재발 방지와 인권 감수성을 정립하는 인권 교육을 받도록 권고하라
▲MBC, 연합뉴스가 존중받아야 할 개인의 사적인 목욕 장면을 여과 없이 방송함으로써 장애인의 존엄과 가치를 침해한 것에 대해 공개 사과보도하고, 장애인을 포함한 소수자의 인권 침해를 미연에 방지하는 보도규정을 제도화할 것을 권고하라
▲홀트복지타운이 시설에서 생활하고 있는 장애인의 인격권과 자기결정권을 보장하는 적극적인 조치를 취해야 할 책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책임을 방조한 것에 대해 공개사과하고 재발 방지 및 시설에서 생활하고 있는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인권확보를 위한 내부규정을 마련할 것을 권고하라
고 요구했다.
방송위원회 진정에는 2일 MBC 뉴스데스크와 5월 3일 iMBC 뉴스의 노컷뉴스 '정치권도 가정의 달'의 보도 내용에 대해 시설 생활 장애인의 인권을 무시한 방송 내용에 대한 사과 방송 요구를 담고 있다.
방송위원회 진정 내용에는 방송에 공개된 장애인의 프라이버시 침해, 해당 장애인이 30대 성인인데도 반말을 사용하며 어린아이처럼 대하는 장면 방송, 정치인의 선한 이미지를 부각하기 위해 장애인을 정치적으로 이용, 방송사의 장애인에 대한 무지와 왜곡된 방송 태도, 장애인을 불쌍하고 열등한 존재로 그림으로 명백하게 방송심의 규정 제 21조 위반 등 다섯 가지를 지적하고 있다.
해당 언론사들 "묵묵부답"
기자회견을 마친 대표들은 7층 국가인권위원회 민원실을 찾아 진정서를 제출했다. 방송위원회 진정서는 10일 중 우편을 통해 제출할 예정이다. 초기 진정 작업에서는 방송사 중에 YTN이 함께 진정 대상으로 거론되었지만 YTN의 '모자이크 처리와 사후 전개 과정에 대한 보도'라는 해명을 받아들여 최종 진정 대상에서 YTN은 제외됐다.
8일 열린우리당의 논평이 있었지만 10일 현재까지 진정 대상인 연합뉴스, MBC는 이번 사건과 관련한 특별한 입장을 보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