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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태우
제대한 후, 귀를 뚫었다. '더 자유로운 사람'이 되고 싶었다. 어떤 분들은 귀를 뚫었다고 영혼이 자유로운 사람이 되냐고 반문할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럴 수 있다고 믿었다.

제대를 하고 복학을 기다리던 시점이었는데, 마음이 무척 답답했다. 꿈에 대한 도전이 자꾸 군대에서 몸에 밴 '자동적인 자기 통제'에 부딪혔기 때문이었다.

마치 저절로 작동하는 자동 시스템 가전제품처럼 내 마음은 "이제 군대도 다녀왔는데, 너도 정해진 코스를 따라서 살아가야지. 여태까지는 어리다는 이유로 용서가 됐지만, 너도 이제 군대를 다녀온 어엿한 성인 남자가 된 거라구"하며 자꾸 나에게 경고를 했다.

하지만 나는 그러한 자동 시스템을 멈추게 하고 싶었다. 스톱 버튼을 누르고 나의 진로는 100% 내가 정하고 싶었다.

하지만 나의 귀고리는 나를 아주 피곤하게 만들었다. 사람들은 나를 보려고 하지 않고, 귀고리만을 보려고 들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귀고리로 나를 판단하는 사람들에게 적의가 느껴질 정도였다.

'왜 저들은 마치 나를 다 알고 있는 듯이 행동할까'

그들에게 화가 났다. 그들은 마치 귀고리를 통해 나를 다 파악한 사람처럼 행동하려고 들었다. 당시 속해 있던 집단의 교수가 그랬고, 목사가 그랬고, 영어회화 학원의 동료가 그랬다.

그 지루한 신경전이 짜증나기도 했지만 마음 속에서는 오기가 발동해서 그럴수록 더욱 귀고리를 빼지 않았다. 왜 그들은 한 사람을 파악할 때, 선입견을 십분 활용한 확대 해석을 정당한 판단의 기준이라고 믿는 걸까.

어떤 사람들은 내게 말했다. "귀고리를 하고 있으면 솔직히 그런 느낌이 들지 않을 수가 없어. 일단 좀 노는구나. 그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니까."

편견을 편견이라고 인정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싸움은 너무 길고 지루했다. 결국 나는 귀고리를 하지 않게 되었다. 귀는 다시 막혔고, 그 후 8년의 세월이 흘렀다.

ⓒ 김태우
1주일 전에 다시 귀를 뚫었다. 세상을 테스트해 보고 싶어졌다. 과연 이제 조금은 달라진 걸까. 억압적이고 일방적이던 사회 분위기가 개선되면서 다소 유연한 사고 방식들이 존재하는 걸까. 아직 확실한 증거는 찾지 못했다.

이제 이 사회에서 선입견이라는 양념이 쳐진 '익숙한 일반화의 오류'는 사라졌으면 좋겠다. 그래서 록커뿐 아니라 누구나 머리를 기를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게 바로 '상대방의 취향에 대한 존중과 인정의 첫 걸음'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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