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얼라. 잡아도 한 냄비거리 밖에 안 나올 것이 사납긴, 저리 가, 저리 가란 말여.”
매일 보는 옆집 용석이 할머니를 항상 처음 보는 사람인 것처럼 앙칼지게 짖어대 우리 토비가 항상 얻어먹는 욕이다. 토비는, 시골 폐교에 살게 되면서 시작된 우리의 낭만적인(?) 시골살이에 동참하고 있는 잡종개이다. 치와와의 혈통이 섞인 토비는 연탄처럼 짧고 까만 털에 고양이만한 몸집을 가졌다.
“저런 걸 뭐라 키운디야. 이왕에 키우려면 큰 개를 키워야 집을 지켜도 제대로 지키고 나중에 잡더라도 먹을 게 있지. 저 잡것은 잡아야 맛도 없을겨.”
자연사할지라도 절대로 우리가 토비를 잡아먹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것을 아는 용석이 할머니의 토비를 향한 악담은 항상 이렇게 끝을 맺는다. 용석이 할머니와 토비의 악연의 원인은 우리 토비의 새침한 성격에 있다.
낯선 시골살이에 겁 없이 뛰어든 우리를 따뜻하게 품어 주었던 것처럼 용석이 할머니는 토비에게도 우리가 집을 비우면 밥을 챙겨주고 가끔 생선 대가리라도 던져주고 했다. 그랬건만, 토니는 먹을 것만 챙겨 먹고 돌아서면 생전 처음 보는 사람처럼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렁거리며 짖어대니 감정이 좋지 않을 수밖에 없다.
5년 전, 큰 꿈을 품고 시골살이를 시작하면서 순종 진돗개 한 쌍을 키웠지만 얼마 안돼 도둑맞았다. 그렇게 상심해 있을 때 대타로 들여온 개가 토비였다. 순종 진돗개 한 쌍의 빈자리를 대신하기에는 턱없는 잡종인 토비를 우리는 살갑게 대해주지 않았다.
순종 진돗개의 빈자리가 너무 크기도 했지만 짧고 검은 털 때문에 다소 차가워 보이는 이미지를 가진 토비를 우리는 그저 개 이상으로는 대해주지 않았다. 개를 키우는데도 서툰 우리는 그저 밥만 챙겨주었을 뿐 머리를 쓰다듬어준다던가 하는 애정 표현에도 인색한 주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토비는 낯선 사람이 우리 집 주변에 나타나면 퉁방울 같은 눈을 부라리며 위협적으로 짖어대 집안에 있는 우리에게 알리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우리가 대문 밖을 나서면 항상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호위를 해주고 승용차를 타고 나가면 현관문 앞에 버티고 서서 집을 잘 지켜주겠다는 결의에 찬 낯빛으로 안심하고 다녀오라는 눈빛을 보내는, 진돗개 못지 않은 충직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 집에 찾아온 사람들이 우리와 관련이 있는 사람임이 판명되면 더 이상 적대감을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우리 가족 외에는 타인들이 아무리 잘해줘도 잘 따르지 않는, 의리로 똘똘 뭉쳐있는 개이다.
또 얼마나 순정파인지 토비가 암내를 풍기면 온 동네 수컷들이 우리 집으로 모여들어 꼬리를 치지만 거들떠도 안 보고 지금껏 오로지 태봉마을 대일씨네 발바리하고만 새끼를 낳는 요조숙녀 같은 면도 있다.
시골살이 5년을 함께 한 토비는 이제 더 이상 진돗개의 대타가 아닌 어엿한 우리의 동지이며 가족이라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아직도 토비를 향한 애정 표현을 잘 하지 못한다.
토비 역시 우리가 현관문을 열면 얼른 뛰어나와 반기면서도 우리를 향해 뛰어오르거나 손을 핥는 등의 관심을 끌려고 애쓰는 법도 없이 그저 바라보며 꼬리만 흔들 뿐이다. 그러다가 목덜미라도 한 번 만져주면 꼬리를 착 내리고 가만히 우리의 손길을 받아줄 뿐 그 이상을 요구하지 않는다.
며칠 전, 고사리를 꺾으러 집 뒷산에 혼자 올랐을 때도 토비가 슬며시 따라와 길 안내를 하듯 앞서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자지러지게 짖어대기 시작했다. 낯선 사람이라도 있는가 해서 주위를 둘러보는 순간, 몇 발자국 앞에 똬리를 튼 뱀 한 마리가 보였다.
나는 겁에 질려 도망치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 얼어붙어 버렸고 토비가 공격의 틈새를 엿보며 으르렁거리는 사이 뱀은 사라져 버렸다. 간신히 정신을 차려서 토비를 의지해 산에서 내려오는 길엔 공포의 존재가 언제 덮칠지 모르는 곳에 혼자 버려진 느낌이 들었다.
그 날 이후, 토비의 존재가 새삼스럽게 더 든든하게 되었고 더 사랑스러워졌지만 나는 과도하게 내 마음을 표현하지 못했고 항상 해왔던 것처럼 목덜미를 쓰다듬어 주는 것으로 이심전심 내가 고마워하는 것이 통했다고 믿었다. 비록 개이지만 그 동안 함께 살아왔던 연륜이면 토비는 내 성격을 이해하고 그 정도도 다 받아들였다고 믿는 것이다.
하지만 요즘 세상은 이런 식으로 짧은 애정을 표현하거나 감사의 표시가 미진해도 상대방이 이해해 줄 것이라고 넘겨짚고 그냥 넘어가면 큰 일이 벌어지는 구조로 변해가고 있다. 공개적으로 사랑을 고백해야 연인에 대해 안심하고 요란스럽게 감사의 표시를 해야만 인사가 되는 세상으로 변해가고 있다.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않아도 마음과 마음으로 통하는 끈끈한 것이 있다는 것을 믿지 않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는 뜻이다. 언제 만나도 곰살궂고 화통한 사람은 쉽게 대접받지만 속내는 한없이 부드럽지만 무뚝뚝해서 표현을 못하는 성격들은 세상살이에서는 자꾸만 소외되는 것 같다.
나도 한 때는 정열적이고 화끈한 성격들이 좋았다. 그러나 이제는 토비처럼 항상 있는 듯 없는 듯, 가까운 듯 먼 듯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믿음이 느껴지는 사람이 좋아지는 것은 나이 탓일 것이다.
우리 토비와 아들아이가 노는 것을 보며 현관 앞에서 해바라기를 하는 사이 대통령의 권위가 다시 회복 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중국의 태평성대였던 요순 임금 시대에는 백성들이 임금이 어떤 사람인지 굳이 알려고 하지 않았다고 한다. 궁극적으로 백성들을 등 따뜻하고 배부르게 해주는 것이 정치인데 이번 탄핵사태로 인해서 대통령은 너무 튀었고 민심은 요동쳤다.
솔직히 일단의 정치적 이벤트를 본 듯한 느낌이다. 요순의 태평성대는 한갓 전설이라고 해도 이제부터는 노 대통령의 정치도 토비가 우리와 함께 살면서 있는 듯 없는 듯, 튀지 않으면서도 믿음직스럽게 우리의 울타리가 되어주듯 하는 정치로 거듭나야 한다는 생각을 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