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내용도 문제가 있기는 마찬가지이다. 이들 신문은 한결같이 미국의 주한미군 차출 통보가 한미관계의 이상 기류에 따른 '예외적인' 일인 것처럼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은 지금까지 주한미군의 감축을 추진하면서 한번도 사전에 한국 정부와 논의한 적이 없다는 점에서 사실과 거리가 멀다.
'통보는 있고 협의는 없는 주한미군의 감축'이 문제가 된다면, 이들 신문은 오히려 주한미군의 이라크 차출을 일방적으로 결정한 미국 정부를 비판해야 할 일 아닌가?
또한 <조선일보>는 이라크로 차출된 주한미군의 한국 귀환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돌아오지 않는다면 사실상의 주한미군의 감축 또는 철수가 이미 시작됐다고 봐야 한다. 1개 보병여단만 남은 주한미군이 한국 방위에서 역할이 어떻게 변경될지, 또 이에 따른 전력 공백을 한국군이 어떻게 보충할지도 관심사다"고 적고 있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명백히 다르다. 주한미군의 차출 대상은 2사단의 1개 보병여단(4천명)으로, 이는 3만 7천명의 주한미군 가운데 약 9분의 1 정도이다. 이들이 돌아오지 않는다고 주한미군이 "1개 보병여단만 남는"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 왜곡이다.
<중앙일보>는 차출된 주한미군의 전력 공백을 한국이 보강할 수 있을 지에 의문을 표하면서 "2사단이 보유한 장비 확보 비용만도 최소 50억달러 이상이 든다는 추계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차출대상은 2사단 전력의 일부인 1개의 보병여단으로 다른 1개의 보병여단과 포병여단과 항공여단, 그리고 공병여단은 계속 남게 된다.
중앙일보는 마치 한국이 2사단 전력 전체를 대체해야 하고 이에 따라 엄청난 경제적 부담을 져야 할 것처럼 보도하고 있는데, 이 역시 사실 왜곡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미군철수는 국내외 기업의 투자에 부정적 영향을 미쳐 가뜩이나 어려운 우리 경제를 더욱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주식값의 폭락도 무관치 않을 것이다"(중앙일보)든지, "안보불안은 어제 즉각적으로 주식시장에 일부 투영된 것으로 분석된다"(동아일보)며 국민들의 경제 불안감까지 자극하고 있다.
이들 언론의 논조를 보고 있노라면, 주한미군 병력의 일부 차출에 따라 마치 한국이 총체적인 안보와 경제 불안에 빠져들고 있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들게 한다. 과연 이러한 논조가 안보와 경제를 그토록 강조해왔던 책임 있는 언론의 모습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이다.
왜 주한미군의 이라크 차출인가?
불필요한 논란과 이에 따른 불안 심리의 확산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부시 행정부가 주한미군 일부 병력의 차출을 추진하고 있는 정확한 이유를 살펴봐야 한다. 이를 둘러싸고 무성한 논의들이 있지만, 가장 직접적이고도 핵심적인 요인은 이라크 및 미군 순환배치 계획의 변화에 있다.
당초 미국 정부는 5월 말까지 현재 13만5000명의 이라크 주둔 병력 가운데 약 2만명을 순차적으로 철수시켜 11만5000명까지 줄인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이라크 상황이 계속 악화되면서 당초 계획을 바꿔 13만5000에서 13만8000명을 적어도 2005년까지 주둔시키기로 방침을 바꿨다. 이러한 계획은 5월 초에 이미 발표되었다.
이에 따라 미국 국방부는 당초 철수시킬 계획이었던 2만명의 이라크 주둔기간을 3개월 연장시키고, 3개월 후에 이 병력을 교체시키기 위해 새로운 병력이 필요해진 것이다. 주한미군 병력 가운데 약 4천명을 이라크에 보내겠다는 것도 이와 같은 미군 순환배치 계획의 변경에 따라 나온 것이다. 이에 따라 차출된 주한미군의 이라크 배치는 8월 말경에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주한미군이 차출 계획이 한국의 추가파병 지연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의 추가파병은 이라크 주둔 미군을 '대체'하기 위해 가는 것이 아니라, 일부 지역을 전담해 평화재건 임무를 수행한다는 취지이기 때문에, 설사 한국이 당초 계획대로 추가파병을 했더라도 주한미군의 이라크 차출은 불가피했다는 가정이 오히려 설득력이 있다는 것이다.
즉 주한미군의 차출은 한국의 추가파병 지연 때문이 아니라, 이라크의 상황 악화와 이에 따른 미국의 순환배치 계획의 변경에 따른 것이라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추가파병이 늦어져서 주한미군이 빠져나간다"는 식의 주장은 근거 없는 정치공세라고 할 수 있다.
강화되고 있는 주한미군의 군사력
이른바 '조중동'이 주한미군 일부의 이라크 차출을 "미군철수가 시작됐다"거나 미국의 안보공약이 약화된 것처럼 주장하고 있는 것 역시 사실과는 거리가 멀다. 이들 언론은 지난 1년간 주한미군 전력이 크게 강화되어온 사실을 애써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은 약 3년에 걸쳐 약 110억달러를 투자해 주한미군 전력을 대폭 강화시키겠다는 계획을 실행에 옮기고 있다. 여기에는 중단거리 탄도미사일 요격체제인 패트리어트 최신형 PAC-3, 한반도 유사시 신속대응이 가능한 스트라이커 신속기동여단(Stryker Brigade Combat Team : SBCT), 감시·정찰수집능력 강화, 전쟁예비물자(WRSA) 및 위성유도무기인 JDAM을 비롯한 정밀탄약 증대, 최신예 공격헬기 AH-64D 아파치 롱보우, 정찰과 폭격 임무를 동시에 수행할 수 있는 무인비행기 등이 포함되어 있다.
또한 주일미군과 괌 주둔 미군 등 한반도를 작전 범위에 두고 있는 태평양 사령부 역시 '대북억제력 강화'를 내세우면서 대규모의 전력 증강을 실행해왔다. 여기에 더해 9월에는 이지스함의 동해 배치도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주한미군의 전력 증강은 조중동이 '반미 정권'으로 규정하고 있는 노무현 정부 때 추진되어온 일이다. 만약 이들 언론의 주장대로 노무현 정부의 반미노선으로 미국의 안보공약이 약화되고 있다면, 위와 같이 최근 유래가 없는 미군의 전력증강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진정 국익을 생각하는 언론이라면
물론 안보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주한미군이 비록 '일부'지만 갑자기 빠져나간다는 것이 우려되는 대목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진정 국익을 생각하는 언론이라면, 사안을 뒤틀고 부풀리면서 국민들의 안보·경제불안을 조장하고 이를 정치공세의 빌미를 삼는 일은 마땅히 자제해야 옳다.
많은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것처럼, 주한미군 일부 차출과 관련해 우리가 직면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심리적 영향'이다. 이는 주한미군 차출이 안보와 경제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준다기보다는 심리적 동요의 정도에 따라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는 우리가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부정적인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