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그 집에는 우리 집 남매와 동갑내기 친구인 7살, 5살 영희, 영림이 자매가 있고, 동물과 자연에 대해서 해박한 지식을 가진 영림이 아빠도 있고, 거기에 영림이 엄마는 유아 교육을 전공한 재원이니 내가 아이들을 부탁하면서도 마음이 놓이는 이웃이다.
시골에 살게 되면서 이렇게 소중한 이웃이 생기게 될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남들이 가지 않는 험한 길을 선택한 우리의 시골살이는 고목들만 성성한 숲에 갇혀 그 그늘 아래에서 단조롭고 정체된 생활로 시작되었다.
그 당시 한 살, 세 살짜리 남매의 엄마였던 나는 아이들 뒤처리에 땡볕 아래인지 그늘 속인지 못 가릴 정도로 정신이 없었지만 화려한 직업과 마당발 인맥을 자랑했던 남편은 고요한 호수에 떠 있는 조각배 같은 생활에 쉽게 싫증을 느꼈고, 그 때마다 저녁이면 우리가 떠나 온 도시로 원정을 나가 놀다오곤 했다.
그런 다음 날이면 나는 늑대가 물어가도 모르는 산골짜기에 아내와 아이들을 팽개쳐 놓고 밤새 놀다 온 무심한 남편을 향해 아이들과의 전쟁으로 쌓인 스트레스성 바가지를 하루 종일 긁어댔다.
그러다가 아이들을 등에 업고, 손에 끌고 다닐 정도가 되면서부터는 무료한 저녁에는 온 가족이 도시로 나가서 친구들과 놀다가 들어오는 일에 맛을 들이기 시작했다. 단지 비슷한 향기를 가진 사람들이 그리워 우리는 한쪽 발은 시골에 다른 한쪽 발은 도시에 걸치는 어정쩡한 양다리를 걸쳤다. 하지만 놀기 위해서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한 시간도 넘게 걸리는 밤길을 자주 다닐 수 없는 노릇이었다.
동네 사람들과 원만하게 지내기는 했지만 우리가 예우를 갖춰야하는 어른들이 대부분인데다가 아직도 혈연으로 맺어진 관계를 우선으로 하는 관습이 몸에 밴 그들 사이에 우리가 낄 자리는 자주 마련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근처에 어울릴 만한 또래가 있는 것도 아니고 우리와 비슷한 문화적 환경을 공유할 만한 이웃들도 없는 상황에서 우리의 시골 살이는 조금씩 진이 빠져가고 있었다. 그렇게 경쟁 상대도 없고 의지할 상대도 없는 우리의 시골살이는 초반부터 한 김이 빠지고 있었다.
큰 애를 어린이집에 보내게 되면서 우리는 비로소 가까운 곳에서 비슷한 사람들과 교류의 물꼬를 트게 되었다. 알고 보니 바로 우리와 같은 면에 사는 영림이네는 우리와 비슷한 사연을 가지고 서울에서 귀향을 한 가족이었다.
여자들이 보기만 해도 가슴이 떨리는 근육질을 자랑하는 보디빌더 경력에 ‘운동 처방사’ 라는 전문직을 버리고 도시 탈출을 감행한 영림이 아빠는 애견 농장을 경영하고 있다.
알래스카 설원에서 썰매를 끄는 개 말라뮤트와 시베리안 허스키를 주로 키우면서 거위와 칠면조, 염소, 토종닭도 키우는 동물 농장주이기도 하다. 그러니 우리 아이들이 영림이네서 노는 동안은 그림책과 방송에서 보던 동물들을 직접 보고 만지는 체험을 저절로 하게 되는 셈이다.
얼마 전에는 영림이 아빠의 특별 이벤트가 있다는 초청에 놀러 갔더니 킹이라는 이름을 가진 말라뮤트에게 썰매를 끌게 해서 온 동네 아이들을 태워주고 있는 것이었다. 송아지만한 덩치에 사자의 갈기같은 털을 휘날리며 시멘트 바닥에서 썰매를 끄는 말라뮤트 킹의 위용에도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지만 썰매를 타며 까무러치게 좋아하는 아이들의 모습에 내 가슴이 뭉클해지기도 했다.
어릴적 <눈의 여왕>이라는 동화를 읽으며 이글루가 있는 북극의 설원을 개 썰매를 타고 달리는 상상을 했던 한 장면이 어설프게나마 영림이네서 우리 아이들에게 재현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저녁 무렵, 영림이네에 맡겨 놓은 아이들을 데리러 갔더니 농장 뒤쪽 둠벙가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아이들의 엉덩이부터 보였다. 그 옆에는 바가지를 들고 있는 영림이아빠의 모습도 보였다.
“엄마, 이게 앞다리가 쑥, 뒷다리가 쑥 하는 올챙이래. 엄마는 올챙이 알아?”
올챙이라는 동요가 유행하고 있고 한 발자국만 나서면 올챙이가 널린 환경에 살면서도 미처 올챙이를 보여주는 것까지는 생각을 못하는 우리의 부족한 부분을 대신하듯 영림이 아빠는 바가지로 올챙이를 잡아서 동요처럼 개구리가 되는 과정을 아이들에게 설명하고 있는 중이었다.
“정선이한테 거위를 보여줬더니, 황금 알을 낳는 거위냐고 하더라구요. 동화책을 많이 읽어 준 건가요? 만화 비디오를 많이 본 건가요?” 시골에 살면서도 실전보다는 책이나 매스컴을 통해 정보를 얻는 것에 익숙한 우리의 습관이 딸아이의 거위 이야기로 다시 한번 탄로나고 말았는데 이번에는 영림이 엄마가 나한테 큰 바구니를 안기더니 따라 오란다.
우리 아이들까지 줄줄이 영림이 엄마를 따라 간 곳은 토종닭을 키우는 닭장으로 구석에 뒹구는 달걀들을 줍는 것이었다. 내가 닭 배설물 냄새에 주춤거리며 알을 주울 때마다 닭이 부리로 쪼을 것 같아 은근히 겁에 질려 있는 사이 아이들은 달걀들을 잘도 주웠다. 우리 아이들이 영림이네서 이런 식으로 놀고 나면 내가 데리러 가도 좀처럼 집에 갈 생각을 안 한다.
“저기 두릅도 있는데 좀 따다가 된장 끓여먹어요. 얼른 자두가 익어야 따주는데….”
항상 아이들을 맡기는 신세를 지는데도 영림이 엄마는 아까 주운 달걀에, 두릅, 버섯 등을 친정에 온 것처럼 차에 한 가득 실어 주면서도 뭔가를 더 주고 싶어 한다. 나 보다 나이가 어리지만 속이 깊고 인정이 많고 말은 조신한 영림이 엄마다.
우리와 영림이네가 다른 점은 시장을 가지 않고도 농장 구석구석마다 자급이 가능하도록 꾸며놓고 시골살이를 이렇게 백배 즐길 수 있는 자세가 되어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한번 가보겠다는 결연한 의지로 시작했지만 영림이네는 도시나 시골, 이런 이분법을 초월해 그냥 자연스럽게 살고 있다. 이렇게 우리 부부보다 젊은 영림이네가 시골에서 사는 법은 정말 한 편의 그림 같다. 누구나 가슴 속에는 시골살이에 대한 동경을 가지고 있지만 쉽게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일을 영림이네는 그저 자연스럽게 하고 있다.
한동안 사람 냄새가 그리웠던 우리에게 영림이네로 인해 시골살이는 그리 삭막하지 않게 되었다. 서툰 음식이지만 함께 나눠먹고 아쉬운 부탁을 할 수 있는 이웃이 있어서 이제 우리는 도시에 양다리를 걸치지 않고 산다.
이번 주말에는 영림이네를 우리 집으로 초대해서 된장 삽겹살 숯불구이를 함께 먹으며 시골에 사는 사람들의 어깨가 활짝 펴질 날을 이야기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