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신경림 시인과 오현 스님의 열흘간의 만남> 마산문화문고 제공
<신경림 시인과 오현 스님의 열흘간의 만남> 마산문화문고 제공 ⓒ 아름다운 인연
"이 만남을 시작하면서 나는 스님과 두 가지 약속을 했었다. 불교든 문학이든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알아들을 수 있는 얘기를 하자, 이것이 첫 번째 약속이었다… 또 하나는 남의 눈을 의식하는 발언은 피하자는 것이었다… 마음에 없는 소리, 쓸데없는 제 자랑 따위는 하지 말자는 것이 두 번째 약속이었다."('서문에 대신하여' 몇 토막)

한국시단의 거장 신경림(69) 시인과 불교계의 최고 실력자 오현(72) 스님이 강원도 설악산 기슭에 자리잡고 있는 백담사에서 만나 열흘 동안 환경과 욕망, 통일과 전쟁 그리고 문학 이야기 등을 주고 받은 <신경림 시인과 오현 스님의 열흘간의 만남>(아름다운 인연)이 나왔다.

지금 동국대 석좌교수를 맡고 있는 <농무>의 시인 신경림의 이력에 대해서는 더 이상 사족을 붙힐 필요조차 없겠지만, "말을 너무 많이 하여 혀가 빠져버려" 지금은 백담사 무금선원에 기거하고 있다는 오현 스님은 일반인들이 잘 모를 수 있을 것이다.

1932년 경남 밀양에서 태어나 1939년 절간 소머슴으로 입산한 오현 스님은 한국 불교계의 숨은 실력자로 추앙받고 있는 선승이다. 그동안 백여 편 가까운 시와 시조를 쓴 스님은 춘천불교방송 초대 사장을 지냈으며, 지금은 영동 불교를 대표하는 신흥사, 백담사, 낙산사의 회주이다.

시(詩)와 선(禪)을 대표하는 시인과 스님의 만남. 그래. 그동안 이 두 사람의 개인적 인연은 백담사에서 주관하는 제1회 만해문학상을 신경림 시인이 수상한 것 뿐이다. 마치 옷깃을 스치듯이 가벼운 인연을 가진 이 두 사람이 백담사에서 만나 열흘 동안에 걸쳐 대체 무슨 이야기를 나눴을까.

모두 7부, '여행, 길에서 돌아본 인생의 뒷모습', '사랑, 그 행복과 고통의 이중주', '환경, 보존이냐 개발이냐', '욕망, 만질수록 커지는 괴물', '통일, 정말 우리의 소원인가', '전쟁, 어떤 평화도 전쟁보다 낫다', '문학, 목매달아도 좋을 나무'로 나뉘어진 이 책은 현실과 종교의 아름다운 조화이다.

시인 : "스님이 윤회 얘기를 꺼내서 드리는 말씀인데 정말로 윤회는 있는 것인지 없는 것인지 궁금힙니다. 우리는 죽으면 방금 말한 육도의 세계를 돌고 도는 것이 사실일까요. 아니면 그냥 그런 세계가 있을지 모르니 조심하라는 도덕적 경고입니까. 저는 가끔 그것이 궁금합니다."

스님 : "솔직하게 말하면 저도 그것은 잘 모릅니다. 왜냐하면 죽어보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사실은 부처님도 이런 형이상학적인 질문을 받으면 직답을 피했습니다. 아무도 경험하지 않은 세계를 있다, 없다로 단정적으로 말하는 것은 정직한 태도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p39 '여행, 길에서 들어본 인생의 뒷모습' 몇 토막)


시인은 묻는다. 윤회가 실제로 있는 것인지 아닌지에 대해서. 스님은 독화살을 맞은 사람을 비유한 부처님의 말씀을 들려주면서 "화살을 맞은 사람은 화살부터 빼고 치료를 받는 것이 순서"라고 답한다. 그리고 현실적인 고통을 받는 사람은 그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덧붙인다.

그러나 시인은 궁금증이 해소되지 않았다며 고개를 가로젓는다. 그러자 스님은 동쪽으로 기운 나무는 반드시 동쪽으로 쓰러지며, 개처럼 살면 살아서도 개로 불리고, 죽어서도 개가 될 것 아니겠느냐며 그것이 바로 윤회라는 관념을 낳은 것이라고 강조한다.

사랑과 성욕에 관한 대화에서 시인은 "사랑은 본질적으로 성욕과 무관하지 않으며, 어떤 사람은 정신적 사랑을 말하기도" 하지만 "사랑에서 성이 빠진다면 그 사랑은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성에게서 성적 욕구를 느끼지 못하면 사랑이 성립되기 어렵지 않겠느냐면서.

이에 스님은 "성욕은 모든 욕망의 근본"이긴 하지만 사람이 그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그 어떤 행위를 하다 보면 그 행위 자체가 대부분 좋은 결과보다 나쁜 결과를 더 많이 초래한다고 지적한다. 결혼제도가 이러한 성범죄를 예방하기 위한 사회적 합의였지만 "인간의 욕망이 해소되지 않는 한 언제든지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 주장한다.

시인: "북한산 문제와 더불어 천성산 고속철도 터널 문제가 큰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이 문제는 불교계에서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어서 스님들이 더 잘 아실 줄 알았는데… 잘 모르겠습니다만 이 문제는 아직 어떤 결론이 난 것 같지는 않습니다.(그 뒤 정부 방침 쪽으로 결정되었음) 이에 대해 스님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신지요?"

스님 : "불교계가 환경문제에 관심을 갖고 이런 저런 주장을 하는 것은 이제 환경문제는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수준에 왔다는 것을 말합니다. 새만금 문제로 수경 스님과 문규현 신부가 삼보일배(三步一拜)를 한 것이라든가 천성산 관통도로 문제로 지율 스님이 45일 동안 단식을 한 것은 환경파괴에 무감각해지는 우리 사회를 향한 경고라고 보면 됩니다."
(p93~94 '환경, 보존이냐 개발이냐' 몇 토막)


고속철도 건설에 따른 터널 공사와 관련, 시인은 사람이 편하게 살기 위해서 자연을 일부 훼손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자연도 생명"이기 때문에 치유와 복원이 불가능할 정도의 무분별한 개발은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지 않겠느냐며 스님의 얼굴을 쳐다본다.

이에 대해 스님은 "사람이 살다보면 자연을 훼손하는 것이 불가피한 측면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의 욕심이 지나쳐 사람 위주로 대자연을 변형시켜 나가는 것은 상식을 벗어나는 일이며 "도를 넘으면 화를 불러오게" 돼 있다고 경고한다.

시인은 인간의 욕망에 대해서 "사람이 살면서 자기의 생을 아름답게 만들고 싶고 자기가 속한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고 싶은 것도 욕심인데 불교에서는 그런 욕심까지 버리라"고 하는 것은 너무 지나친 얘기가 아니냐며 넌즈시 스님의 속내를 떠본다.

시(詩)는 말씀 언(言)과 절 사(寺)로 이루어져 있다
시(詩)는 말씀 언(言)과 절 사(寺)로 이루어져 있다 ⓒ 아름다운 인연
스님은 "불교는 욕망의 반대 쪽을 살피"는 것이라며 탐욕이나 본능을 자제하는 그 자리에서 새로운 삶의 모습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또한 그렇게 할 때 "정직한 시, 위대한 시"가 탄생하는 것이며, 돈도 정당한 방법으로 벌 수 있고, 정치도 정도를 걸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시인 : "북한이 많이 달라졌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남한을 타도의 대상, 투쟁해서 없애야 할 대상으로 말하지 않고 있습니다. 일단 북한은 주적을 미국으로 상정하고 있지 남쪽을 적으로 말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예전에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이것만도 엄청난 변화입니다."

스님 : 누가 먼저 상대방에게 음식을 먹여주어야 그쪽도 이쪽을 믿고 음식을 집어서 먹여 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공생하는 길입니다. 자기의 이익만 챙기려고 하면 나도 못 먹고 상대방도 못 먹게 됩니다. 북한 돕기를 '퍼주기'라고 비난하는 것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기 때문입니다."
(p174~175 '통일, 정말 우리의 소원인가' 몇 토막)


남북통일과 관련한 대화 도중 북한 핵문제 대해서 시인은 북한 나름대로의 여러 가지 속사정이 있겠지만 "북한이 핵을 개발하거나 보유한 사실이 확인되면 국제사회는 (북한에 대해) 고립화 정책을 강화할 것이 분명하다"며 북한에 대해 핵문제의 심각성을 설득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스님은 "가장 좋은 것은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미국은 (북한의) 체제를 보장해 주는 것인데 미국이 왜 그것을 해 주지 않겠다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며, 남북문제에서 해결해야 할 과제는 "강대국 간의 이해관계를 어떻게 조정해 낼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고 덧붙인다.

요즈음 한창 시끄러운 이라크 파병 문제에 대해서 스님은 "정부나 정치권에서는 파병을 결정한 것 같고, 종교단체나 재야단체에서는 미국이 주도한 전쟁에 용병을 보낼 수는 없다고 반대"하고 있는 줄로 알고 있다며 이에 대해 시인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묻는다.

시인은 양 측의 주장에 대해 찬성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미국과의 관계와 현실적인 이익을 고려하고 있지만 반대하는 사람들의 입장은 이라크 전쟁이 "기본적으로 미국이 국제여론을 무시하고 단독으로 수행한 침략전쟁"이기 때문에 파병의 명분이 없다며 "국익이냐 사람의 목숨이냐, 명분이냐 실리냐"가 더 중요한 것이 아니겠느냐고 답한다.

스님 : 나는 가끔 시인들에게 이런 질문을 해 봅니다. '당신은 왜 시를 씁니까. 도대체 시가 무엇이기에 시를 쓰려고 합니까?' 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이런 질문을 받으면 어떻게 대답하십니까."

시인 : "시란 무엇을 위해서 있는 것도 아닙니다. 나무가 무엇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듯이 그냥 존재하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고 싶어요. 나무처럼 존재해서 나무가 얼마나 멋있고 고마운 것인지 아는 사람한테는 고맙고 좋은 것입니다. 시도 시가 얼마나 재미있고 맛깔스럽고 자기 삶에 도움이 되는가를 아는 사람한테는 좋은 것이지만, 시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아무 것도 아닌 무의미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p266 '문학, 목매달아도 좋을 나무' 몇 토막)


<신경림 시인과 오현 스님의 열흘간의 만남>은 시(詩)와 선(禪)의 아름다운 문답이자 현실과 이상 그리고 문학과 종교의 내면훑기다. 이 책에서 시인과 스님은 여행, 사랑, 환경, 욕망, 통일, 전쟁, 문학에 대해서 서로의 입장을 거침 없이 꾸밈없이 쏟아냄으로써 시와 선은 하나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신경림 시인과 오현 스님의 열흘간의 만남

신경림.조오현 지음, 아름다운인연(2004)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