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호와의 증인신자로 예비군 훈련을 거부하고 불참한 이모씨에 대해 서울지법 형사항소8부가 무죄를 선고해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양심적 병역거부의 대다수는 여호와의 증인이다. 대략 1만명이상이 병역법이 시행된 이후로 처벌받았고 현재는 1600명 정도 징역을 살고있다. 비종교적 거부자는 오태양씨를 비롯해 현재 9명이 있다.
먼저 양심적 병역거부가 특정종교(여호와의 증인)가 국민의 의무인 병역에 있어서 특혜성 조치를 얻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전제하고 논의를 전개한다.
세계적으로는 양심적 병역거부가 인정되고 있고 UN 또한 박해가 부당하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준전쟁의 상황에 놓여있는 이스라엘, 중국에 맞서고 있는 대만도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하고 있다. 물론 다른 나라의 사례가 특수한 지정학적 위치와 그 성격이 다른 우리가 무조건 그런 나라를 따라야 한다는 논리를 전개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휴전이후 50년간 계속해서 양심적 병역거부로 범법자를 양산하고 있는 현실에 비추어 볼때 이런 세계여론과 다른 나라의 사례는 현 병역법이 과연 변화없이 유지될 정당성을 지니고 있는지 반문하게 한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 군대는 필요하다. 전쟁없는 사회는 국제질서 및 국가관계에 비추어 볼때 참으로 요원한 것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리고 그런 국가의 안정이 보장되는 것은 국민주권보장의 초석임을 인정한다.
그러나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계속해서 범법자로 만들어 내는 제도는 수정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특정종교에 대한 논란의 여지 이전에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의 기본권이 계속해서 제약되는 상황을 양산하는 법제도는 분명 질서와 안정을 목적으로 하는 법의 이념과 그리고 기본권을 수호해야 하는 국가의 목적에 반하는 일임이 분명하다.
주권 및 인권을 보장받고 싶다면 국민의 의무를 다해야 하는것 아니냐는 반문이 나올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이 내세우는 것은 아예 국민으로서의 의무를 면제해 달라는 것이 아니다. 집총거부, 전쟁에 관련된 일체의 행위를 개인의 신념차원에서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에 다른 방식으로 그 의무를 대체하겠다는 것이다.
이미 군대를 다녀온 혹은 다녀올 신체 건강한 사람들에게는 권력있는 아들의 병역비리도 아니꼽고 속이 뒤틀리는데 이런 식의 병역특혜가 주어지면 갈 사람이 누가 있고, 양심적 병역거부를 선언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냐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대체복무제도는 현재의 병역과 동질의 것은 아니지만 그에 준하는 형평성을 갖출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하다.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은 기존 공익근무요원이나 방위산업체에서의 대우와 동등한 것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 아님을 인식해야 한다. 양심에 반하는 판단으로 대체복무제를 감히 선택할 수 없을 정도의 엄격한 제도를 마련하면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본다.
또 동시에 군대문화가 바뀌어야 한다. 탈영자가 생기고 구타사고가 빈번한 억압적이고 강압적인 군대 문화를 쇄신하기 위해 군이 요즘 들어 여러모로 개혁을 추진하고 있는 것은 환영할 일이다.
누구나 다 가기 싫어하고 머리가 깡통이 되서 나오는 군대를 변화시킬때 상대적 박탈감 및 허울뿐인 신성한 의무와 허울뿐인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반대 여론이 덜 궁색해질 수 있을 것이다. 누구나 다 가야하는 군대라는 생각도 현실과 다르다는 점도 지적해야 하겠다. 징집대상자가 대략 40만명이고 그 중에 22만명 정도가 현역으로 분류되고 나머지는 병역특례제도나, 공익근무, 면제를 받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형평성의 문제에 있어서 일괄적용의 우를 범한다면 전문적 기술, 영어소통능력, 신체적 제한사항(시력이나, 비만, 기타 사회생활에는 그다지 불편하지 않은 사람들)을 가진 사람도 육체적,정신적으로 고된 현역으로 빠지거나 혹은 그에 준하는 군대생활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왜 국방의 의무에 있어서도 교육의 우열 및 신체등급으로 그와 같은 차등을 주는가.
국가예산에서 책정되는 국방비와 기타 전쟁능력수행에 따른 적정 군병력의 유지에 있어서 현재의 제도가 양심적 병역거부자라란 소수에게 형평성의 문제를 들이미는 것은 이처럼 모순성을 띠고 있다. 양심적 병역거부로 군병력의 감소가 우려된다면 40%이상의 다른 인원은 왜 국군으로 편입할 생각을 하지 않는가.
또 현대전은 군인의 숫자로 전쟁의 승패가 판가름나는 중세나 근대의 백병전이 아니다. 첨단과학기술이 접목되면서 무기의 개량, 전략무기의 등장, 전쟁 이외의 경제적 외교적 전쟁억지력, 전쟁수행에 따른 보급력 등이 국가 안보에 관건이 되고 있는 것이다.
정전이 아니라 북한과의 휴전상태라는 특수상황에 따른 안보위협도 위의 조건을 따로 제쳐두고 볼 만한 성질의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북한이 60년대나 70년대 초반처럼 군비나 국방력 경쟁을 할 수 있을 정도로 경제규모가 되지 못하는게 현실이다.
양심적병역거부자는 소수자다. 소수자의 인권을 더 소중히 생각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본질과 맞아떨어진다면 좀더 관용적인 태도로 사안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병역을 어떻게든 기피하려는 위장된 양심자는 늘 있어왔다. 누구든 한 번쯤은 군대를 면제받기 바랐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범법자가 되면서까지 그리고 사회적으로 따돌림을 당하면서까지 그런 내부의 음모를 행위로서 실행한 자는 극소수였다는 걸 얘기하고 싶다. 사회의 안정과 질서를 볼모로 소수자를 침묵시키는 논리는 얼마나 당연해 보이는가. 그러나 정체되고 고정된 법적 적용이 과연 궁극적으로 무엇을 목적으로 해야하는지를 염두해 두어야 한다.
그들이 원하는 것이 정녕 특혜인지를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왜 군대의 의무가 신성성의 신화를 간직해야 하는지 군부독재를 30년 이상 경험한 우리 스스로 인식의 경직성은 없는지도 점검해보자. 군대의무의 형평성을 가지고 그들의 주장을 반박하는 것이 실제와 맞지 않다는 걸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
|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