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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 앞 클럽 14곳은 2002년 5월 이후 주한미군의 출입을 금지하고 있다. 사진은 클럽 입구에서 일일이 신분증을 확인하는 모습.
홍대 앞 클럽 14곳은 2002년 5월 이후 주한미군의 출입을 금지하고 있다. 사진은 클럽 입구에서 일일이 신분증을 확인하는 모습. ⓒ 오마이뉴스 남소연
"미군은 홍대클럽을 출입할 수 없습니다."

'클럽문화협회(이사장 최정한)'에 가입한 14개 홍대클럽 출입구에는 미군 출입금지를 알리는 가로 50cm 길이의 노란색 아크릴 안내판이 부착돼 있다. 이들은 영문으로 '지금까지 발생한 불미스러운 사건들 때문에 미군의 홍대 앞 클럽 출입을 정중히 거절한다'고 미군 출입금지 사유를 함께 새겨 놓았다.

이 일대는 미술, 연극, 영화, 음악 등 다양한 문화예술활동과 디자인, 출판, 인터넷컨텐츠 등 멀티미디어 관련 문화전문업종이 밀집된 서울의 대표적 '문화복합지역'이다.

이곳 홍대 일대에 미군들이 무리지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2002년부터. 이태원에서 자정까지 놀던 이들은 미 헌병들의 단속을 피해 홍대클럽으로 넘어왔고 그 숫자는 클럽의 절반 이상을 차지할 정도였다. 게다가 동두천과 평택, 대구 등지의 미군병사들까지 몰려들면서 이태원을 빗대어 이곳을 '홍태원'이라고 불렀다.

미군 병사들이 쫓겨난 이유는? "군사적 오만함은 상대하지 않는다"

초기에 홍대클럽에 나타난 미군들은 클럽의 음료수 박스를 운반해 주기도 하고 청소를 자원하는 등 인간적 관계를 유지했다. 그러나 미군들이 집단화되면서 군사문화의 속성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일부 미군병사들은 평소 기지촌에서 하던 행동대로 홍대클럽을 찾은 한국인 젊은여성들에게 극심한 성희롱을 일삼았고, 또 흑인 병사와 백인 병사간의 몸싸움은 물론 이곳을 즐겨 찾는 외국인들과도 시비가 벌어지는 등 각종 범죄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이같은 일이 빈번해짐에 따라 결국 '문화적 다양성'을 지키려는 홍대클럽을 비롯한 문화주체들과 이곳에서 질서를 휘어잡으려는 미군병사들의 '군사적 폭력성' 사이에 불가피한 충돌이 빚어졌다.

홍대클럽 주변에는 음악과 춤을 즐기려는 젊은이들과 외국인들이 모여든다.
홍대클럽 주변에는 음악과 춤을 즐기려는 젊은이들과 외국인들이 모여든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운동권출신 시민운동가로 홍대클럽에 참여한 최정한 클럽문화협회 이사장은 2002년 5월 '왜 미군은 홍대앞 클럽에 와서 안되는가'라는 주장을 통해 다음과 같이 미군 출입금지의 논리를 전개했다.

"(미군이라는) 특수한 존재여건이 이 땅에 이태원, 동두천, 송탄과 같은 특수한 장소를 만들어냈다. 그곳은 미군을 위한 땅이며 기지촌이다. 도시의 발전을 크게 억제하고 기형화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주민들의 주거환경권, 생활권보다는 미군의 권리와 자유가 우선시 되어 온 것이다. 미군에게는 그것만으로도 넘치고 넘친다.

그들이 우리와 같이 같은 권리를 이 땅 어느 곳에서나 누리려고 한다면 먼저 미군이 누리는 각종 특권부터 포기해야 한다. 각종 범죄를 저질러도 불평등한 소파협정에 의한 보호장치부터 제거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들이 소수일 때는 문제가 표출되지 않지만 다수로 두드러지기 시작한 순간, 마약과 각종 범죄, 한국인들과의 충돌, 한국여성들과의 관계 등에서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최 이사장은 미군과 홍대클럽이 공존할 수 없는 이유로 ▲ 지역사회 및 상가에서는 미군들이 활보하는 이태원 같은 곳이 되길 원치 않으며 ▲ 미군의 클럽이용이 늘어남에 따라 반미감정이 표출될 수 있고 ▲ 미군범죄, 마약문제 등에 대해 무방비로 노출될 경우 그 후유증은 쉽게 극복될 수 없으며 ▲ 미군이 클럽 합법화운동에 결정적인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미군들의 진출로 인해 홍대클럽 문화가 손상되고 다른 외국인의 발길이 끊어지는 등 초청하지 않은 손님들로 인해 '문화해방구'가 훼손되기 시작했다. 게다가 지난 2002년 의정부 여중생사건 때 미군법정이 사고를 낸 미군 병사들에게 무죄평결이 내려지면서 반미 분위기가 크게 작용했고 결국 미군 출입금지는 어렵지 않게 결정됐다.

세계경찰국가의 병사들이 무력이 아닌 문화에 의해 쫓겨난 것이다. 홍대클럽 주체들은 미군들에게도 음악과 춤을 즐기고 자유로운 만남을 가질 수 있는 평등한 권리를 존중해주었다. 하지만 점령군 같은 오만함으로 홍대클럽을 침범하려는 일부 병사들에 의해 그들은 출입금지된 게 아니라 사실상 축출당했다. 그리고 2년이 지난 현재, 미군의 출입금지는 여전히 유효하며 오히려 강화되고 있다.

폭력과 권위는 일체 거부하는 홍대클럽, 스스로 생산하는 문화적 질서

주한미군을 포함한 외국인들이 자주 찾는 홍대 앞 한 Bar 입구.
주한미군을 포함한 외국인들이 자주 찾는 홍대 앞 한 Bar 입구. ⓒ 오마이뉴스 남소연
홍대클럽이 반미 지역은 아니다. 개성이 다양한 젊은이들과 아웃사이더 예술인들의 '문화 해방구'인 홍대클럽은 인디밴드와 DJ, 테크노 뮤지션을 비롯해 대학생, 문화사업 종사자, 외국인 등이 모여든다. 이들은 어떤 형태의 폭력이든 권위이든 일체 거부하며 자기들만의 문화와 질서를 생산하고 있을 뿐이다.

이들은 미군을 반대하는 게 아니라 미군의 폭력적·군사적 요소를 반대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문화를 획일화시키려는 관료집단의 억압도 거부하고 유흥업소의 암적 존재인 조직폭력배의 기생도 용납하지 않는다. 홍대클럽은 표면적인 무질서 속에도 자유분방한 질서를 유지하는 시스템과 합의를 지니고 있다.

클럽문화협회 소속 14개 회원 업소는 경호업체와의 계약을 통해 각 클럽 당 1∼3명의 경호원을 배치하고 3개 권역으로 나뉘어 3∼5명의 경호원을 배치하고 있다. 경호원은 폭력사태를 예방하고 만취해 풍기 문란케 하는 사람들을 퇴장시키는 역할을 한다. 당연히 폭력사태가 발생하고 술값을 떼어먹는 얌체족도 나타난다. 이들은 경호원에 의해 제지되었다가 경찰에 인계된다.

지난 21일 홍대클럽에서 만난 홍희선(여·28·댄스뮤직 음악평론가)씨는 "홍대클럽의 구성원은 음악과 춤을 통해 외국인들과 소통을 하지만 여성을 희롱하거나 난동을 부리는 미군들은 상대하지 않는다"며 "점령군 같은 우월감으로 접근해 오는 한 미군들의 출입금지는 해제되지 않을 것"이라고 분명한 어조로 말한 뒤 테크노 음악에 맞춰 춤을 추었다.

강호정(41·서울예술대) 교수는 "강남 압구정동의 클럽문화와 홍대클럽 문화의 차이는 격식과 자유로움이다"며 "독일 유학시절에는 남을 의식하지 않고 춤을 추었는데 한국에 돌아와 체면에 의해 억눌림 받았다. 그래서 홍대클럽을 찾아와 자유로움을 느낀다. 드물지만 춤추는 할아버지도 눈에 띈다"며 홍대클럽은 의식의 억압을 해체하는 공간이라고 강조했다.

김경진(38·클럽 '코스모' 주인)씨는 "8년 동안 방송국 PD생활을 하다 클럽을 운영하게 되었다. 아티스트, 방송작가, 전문직 출신의 클럽 주인들의 목적은 돈만이 아니다"며 "미군들이 끼어들면서 홍대클럽 문화의 질이 저하되는 등의 문제가 발생해 홍대문화를 지키기 위한 일환으로 출입을 금지하게 된 것"이라며 클럽문화 활성화에 미군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신촌 미군난동 사건의 불똥이 홍대클럽에?

21일 밤 홍대 앞 클럽을 찾은 이들이 강한 비트의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있다.
21일 밤 홍대 앞 클럽을 찾은 이들이 강한 비트의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홍대클럽은 지배적인 사회체제와 규범을 부정, 비판하고, 아래로부터의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문화를 창출해내려는 언더·인디적 욕망, 자신이 하고픈 일과 꿈을 마음껏 펼쳐 보이겠다는 자유·펑크적 욕망, 지역문화와 공간환경을 스스로 만들어가겠다는 마을만들기·공동체적 욕망이 곳곳에 스며 있다.('아침형 인간, 강요하지 마라-2004·청림' 가운데 '홍대지역 클럽에서 꿈꾸는 나의 욕망' 중 일부)

기존질서에 대한 부정과 비판을 통해 새로운 문화적 질서를 형성하려는 홍대클럽을 바라보는 기성세대의 시각은 뒤틀려 있다. 특히 문화를 통제하고 싶은 관료집단은 각종 규제를 통해 제재를 가했다. 지난 97년 라이브 공연이 행정당국과 경찰에 의해 불법화 됐고 2년간에 걸친 합법화 투쟁 끝에 겨우 라이브 공연이 가능해졌다.

속성 상 간섭하려는 관료집단과 간섭받지 않으려는 문화주체간의 갈등과 충돌이 또 다시 시작되고 있다. 지난 15일 '신촌 미군난동' 사건의 불똥이 홍대클럽에 튀고 있다. 홍대클럽의 출입금지로 신촌으로 밀려난 미군병사가 사건을 저질렀고, 경찰과 행정당국의 화살이 홍대클럽에 맞춰지면서 곤욕을 치르고 있다는 것이다.

'클럽문화협회' '공간문화센터' '홍익상인회' 등의 3개 단체는 지난 25일 발표한 성명서에서 경찰과 행정당국의 홍대클럽 단속의 저의는 신촌에서의 미군난동사건에 대한 희생양을 삼으려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크게 반발하고 있다.

이들은 성명서에서 "클럽데이 소속의 14개 클럽들은 주한미군의 출입을 철저하게 금지한 것은 홍대지역이 주한미군으로 인해 우범화되고 문화환경이 훼손되는 것을 방지하려는 충정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그 성과로 현재 홍대지역에서는 일부 몰지각한 바와 같은 술집 이외에는 주한미군이 거의 눈에 띄지 않게 되었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이와 함께 당국의 클럽 단속에 대해 강력하게 항의하며 변호인단을 구성하여 행정소송을 제기할 방침이다. 또 일제히 단속에 항의하는 플래카드를 걸고 클러버(클럽 매니아들), 지역상가, 사회인사 및 문화예술인이 참여하는 서명운동 돌입과 공개토론회 개최 및 클럽 제도화를 위한 제도개선 운동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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