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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나 영국, 프랑스, 독일 등 구미 국가들의 신문은 발행부수를 내세워 언론의 영향력을 행사하려 하지 않는다. 발행부수는 50만 내지 100만부 안팎에 불과하지만 객관적 보도와 공정한 논평으로 인정을 받아 세계적 권위지가 된 것이다. 200만부가 넘는 신문들은 대개 재미로 읽는 대중지들로서 언론의 영향력(특히 정치적 영향력) 행사 따위와는 거리가 멀다.
우리는 어떤가? 발행부수가 많은 신문일수록 언론의 정도에서는 이탈해 있으면서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욕구는 크다. 역으로 그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 무리해서라도 발행부수가 떨어지지 않도록 몸부림친다. 그런 신문들은 면수도 압도적으로 많다. 그래서 정보도 많고, 그런 신문이 품질도 나을 것이라는 착각을 하게 만든다. 오죽하면 노회찬 민노당 사무총장도 그리 말했을까. 발행부수에 집착하는 것은 구미 국가들의 선정적 대중지를 꼭 빼닮았다.
<조선일보>가 수년간 써먹어 재미를 본 광고 홍보 카피가 '1등 신문'이었다. 발행부수에 연동한 영향력 1위에 착안한 것이었다. 그러나 권불십년(權不十年). <조선>이 언론권력의 권좌에서 한국사회를 호령하던 1990년대를 지나 2001년 이후 그 세가 급격히 쇠락하기 시작했다. 발행부수는 아직까지 필사적으로 고수하고 있지만 그 영향력은 이미 옛날의 <조선>이 아니다.
권혁남 교수(전북대·언론학)가 지난 21일 언론정보학회에서 발표한 논문 '유권자의 미디어 이용 및 평가'에 따르면 이번 17대 총선과 관련한 신문의 열독율 조사에서 <조선>은 <중앙(23.1%)> <동아(21%)>에 이어 17%로 3위를 차지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신뢰도에서는 더 처져 <중앙(20.2%)> <동아(17.4%)> <한겨레(16.6%)>에 이어 16.2%로 4위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독자가 신뢰하는 신문으로는 4등인 셈이다.
그 4등 신문 <조선일보>가 뒤바뀐 영향력 1위 매체 KBS의 '흠집내기'에 목숨을 건 듯하다. 보복심리일까 열등감일까? 아니면 권좌회복의 야망? KBS가 잘못한 일이 있을 때 지적하고 비판하는 것은 백번 지당하다.
그러나 <조선>의 KBS 비판은 그런 건강한 것이 아니라 비방·날조·왜곡·음해의 성격이 강하다. 감사원은 KBS에 대한 감사보고서를 21일 국회에 제출했다. 이 보고서를 토대로 <조선>은 바로 다음 날부터 대공세에 나섰다.
"KBS 방만경영... 방송법 고쳐라" 감사원 권고(22일자 1면 사이드 톱)
이런 KBS가 언론개혁 떠드나(22일자 사설)
KBS부터 개혁하라(24일자 김우룡 한국외대 교수 시론)
'미디어 포커스'의 이상한 침묵(진성호 기자의 조선데스크)
KBS 노조의 守舊的 기득권 지키기(26일자 사설)
“KBS, 정부영향력서 자유롭지 못해” 강동순 감사 비판(28일자 1면 사이드 톱)
KBS, 수신료引上 추진 논란(28일자 1면 사이드 톱)
국민 돈 나눠먹고 이제 수신료 올리는가(29일자 사설)
이 정도면 거의 병적인 수준이다. 객관적 탐사보도도 아니고, KBS 공격의 목적에 맞는 자료나 특정인의 발언을 취사선택하며 실체를 왜곡하여 독자를 속이고 있는 것이다.
KBS가 감사원으로부터 지적받은 방만한 경영 등에 대해서는 시정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KBS 노조를 졸지에 수구세력으로 매도하는 용맹함에 대해서는 기가 질릴 지경이다. 그러면 <조선> 노조는 무언가? 진성호 기자는 아마 강동순 감사의 선임 배경에 대해 잘 알 것이다. 그 사실은 왜 침묵하는가?
무엇보다도 수신료 인상 문제를 이런 식으로 왜곡하는 것은 한심하기 짝이 없는 짓이다. 감사원보고서에도 수신료 인상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다. 이 사실은 왜 빼먹고 마치 수신료 인상이 부도덕인 행위인 것처럼 날조하는가? 29일자에는 "왜 KBS를 보든 안 보든 시청료를 내야만 하나"라고 하는 물정 모르는 독자의견까지 곁들여 놓았다.
KBS는 불필요한 고급인력의 정리, 난립돼 있는 지역국의 통폐합, 지역총국의 자체편성비율 제고 등 개혁과제들을 차질 없이 추진하면서 수신료 인상의 정당성을 확보해야 한다. 구독료로 농간 부리는 <조선>은 KBS를 비판할 자격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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