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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 선녀의 말에 바리는 숨오름꽃밭 사알짝 발을 들여놓았습니다.

말라버린 나뭇잎을 밟은 것처럼 바스락 소리가 났습니다. 바리 발 주변에 있던 꽃들은 놀란 것처럼 고개를 바짝 쳐들었습니다. 그리고는 눈이 달려있는 듯 바리 쪽으로 고개를 돌렸습니다.

그 꽃밭 여기 저기 피어있는 꽃들은 고개를 숙이고 새근새근 잠을 자는 듯 숨소리가 들리기도 했고, 마치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다른 꽃들과 꽃잎을 맞대고 있기도 했습니다.

그냥 화분에서만 자라는, 집에서 보던 꽃들과는 아주 달랐습니다. 바리는 꽃들을 건드리지 않으려고 발을 조심조심 움직였지만, 밭이랑이 없이 꽃들이 그냥 여기저기 피어있어 꽃을 밟지 않으려다 보니 중심잡기가 어려웠습니다.

자기도 모르게 꽃잎 하나를 밟고 말았습니다.

꽃은 화가 난듯 고개를 바짝 쳐들었습니다.

“아이, 미안해, 일부러 그런 것 아니야. 여기 걷기가 너무 힘들구나.”

꽃은 다시 고개를 아래로 내렸습니다.

그 색동옷을 입은 아주머니는 바리로부터 등을 돌린채, 열심히 꽃을 따고 있었습니다.

맑은 칼을 꽃줄기 아래 땅에 살짝 꽂으니 꽃 한송이가 뿌리채 뽑혀나왔습니다. 꽃이 놀란 듯 부르르 떨자, 그 아주머니가 말했습니다.

“염려 말아라, 곧 훌륭한 아이로 다시 태어나게 될 거다.”

그리고는 반짝이는 뿔을 가진 도깨비에게 그 꽃을 건네주었습니다.

그 목소리는 어디서 듣던 목소리 같았습니다. 많이 듣던 목소리, 그러나 오래동안 듣지 못한 소리.

바리가 그렇게 고민하고 있을 때 그 아주머니가 먼저 일어나 고개를 돌려 바리를 불렀습니다.

“바리야.”

할머니였습니다. 바리가 어렸을 적 돌아가신 외할머니였습니다.

"할머니!”

바리는 할머니를 부르며 품에 안겼습니다. 돌아가신 할머니를 여기서 보게 되다니. 할머니께서 서천꽃밭에서 꽃들을 가꾸고 계실 줄이야.....

할머니는 유달리 꽃을 좋아하시던 분이었습니다. 살아계실 적 난초며, 팬지며, 무궁화며 아름다운 꽃을 즐겨가꾸시던 할머니는 여기서도 꽃들을 가꾸고 계셨습니다.

“할머니….”

난데없이 할머니를 보게 되자, 바리는 버럭 울음이 터져나왔습니다.

“아이그, 우리 강아지 왜 우노. 왜 울어. 여기까지 오느라 많이 힘들었지? 그래, 이야기는 많이 들었다. 삼신할머니께서 칭찬을 많이 하시더라, 그래.”

할머니는 바리의 등을 계속 토닥거려 주셨습니다. 할머니는 옆에 수레를 잡고 어기적 서있는 도깨비에게 손짓을 하셔서 다른 곳으로 돌려보내시고는 진달래 언니가 기다리고 있는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래, 우리 귀한 손님이 왔으니 이 꽃밭을 더 구경시켜줘야지.”

할머니는 바리를 데리고 이것저것 보여주시면서 꽃밭 너머에 있는 숲으로 데리고 가셨습니다.

그 숲에는 새 한마리 없고 벌레 한마리 없었습니다. 숲에서 자라고 있는 어마어마하게 커다란 나무들은 끊임없이 좋은 공기를 내뿜어 꽃들에게 공급해 주고 있는 모양이었습니다.

숲을 따라서는 맑은 시냇물이 졸졸 흐르고 있었고, 나무들 위로는 비도 내리지 않고 햇빛과 구름이 번갈아가면서 숲을 지켜주고 있었습니다. 바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지금 한창 추워지는 겨울이라는 사실을 빤히 잊게 했습니다.

숲 안쪽으로 더 들어가자 으리으리한 기와집 한채가 나왔습니다.

벽은 아름다운 향기가 나는 나무로 되어있었지만, 지붕은 반짝이는 유리로 되어있어서 온 집채가 번쩍번쩍 빛나는 것 같았습니다.

그 기와집 주변으로는 숨살이꽃이 담겨있는 수레를 끄는 도깨비들이 줄을 지어다니고 있었고, 색동옷을 입은 사람들이 수레를 하나하나 들추어보며, 꽃들이 제대로 숨을 쉬고 있는지 검사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할머니, 여기 할머니가 사는 집이에요?”

바리의 질문에 할머니가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후후, 여기 사는 사람들은 집이 없어요, 하지만, 여기 사람들은 잠을 안 자도 피곤하지가 않고, 밥을 안 먹어도 배가 고프지가 않으니까 특별히 집이 필요하지가 않단다. 할머니는 하루 종일 숨살이꽃을 만지고 사니까, 몸도 안 아프고 힘도 안 들고, 그냥 하루 하루가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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