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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남대 박태일 교수는 이원수의 부왜작품을 찾아낸 뒤 '생계형'이라 볼 수 없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사진 오른쪽은 그가 이번에 펴낸 저서 <경남.부산 지역문학 연구1>.
ⓒ 오마이뉴스 윤성효
동요 '고향의 봄'과 '오빠생각' 작사자로 널리 알려진 아동문학가 이원수(1911~1981)가 남긴 부왜(附倭) 작품의 실체가 드러났다.

그가 남긴 작품에 담긴 부왜의 뜻과 열정이 사뭇 진지하기에 '생계형'이라 볼 수 없다는 주장도 제기돼 관심을 끈다.

아동문학가 이원수는 누구인가?

▲ 이원수
ⓒ경남도민일보
이원수는 경남 양산 출신으로, 청소년기에 마산으로 옮겨 살았다. 1925년 <어린이> 4월호에 '고향의 봄'이 실렸으며, 1935년 '독서회'사건으로 1년간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그는 1971년 한국아동문학가협회 창립회장을 거쳐 1980년 대한민국문학상 아동문학부문 본상을 받았고, 그가 죽은 지 3년 뒤인 1984년 <이원수문학전집>(전 30권, 웅진)이 나왔다.

경남 일대에는 그를 기리는 각종 기념물들이 산재해 있는데, 마산 산호공원(1968년)과 양산 춘추공원(1986년)에는 '고향의 봄' 노래비가 세워져 있고, 창원에는 그의 이름을 딴 도서관도 있다.
경남대 박태일 교수(인문학부)는 최근 나온 <경남.부산 지역문학연구1>(청동거울)에 실린 '이원수의 부왜문학 연구'라는 글에서 이원수의 부왜작품을 분석했다.

이원수도 부왜작품을 썼다는 주장은 이미 2002년 3월부터 나오기 시작했다. 이원수의 부왜작품으로는 동시 '지원병을 보내며'와 '낙하산(落下傘)', 자유시 '보리밧헤서-젊은 농부의 노래', 수필 '고도감회(古都感懷)'와 '전시하 농촌아동과 아동문화' 등이 있다.

박태일 교수는 그동안 부분적으로 언급되었던 이원수의 부왜작품을 종합적으로 분석하고, 이번 저서를 통해 그 전모를 밝혀냈다. 또 수필 '고도감회'의 원문을 처음으로 공개했다.

함안금융조합에서 일한 이원수는 조선금융조합연합회 기관지인 <반도의 빛>에 1942년과 1943년 사이 집중적으로 이들 작품을 발표했다.

일제시대 금융조합은 농민들에 대한 고리대 대부기관이었으며, 일제 제국주의 수탈의 실천기관이었다. 전형적인 부왜 종합지인 <반도의 빛>에 글을 쓴 인사는 이원수 외에도 많다.

이원수 부왜 위해 동시 2편, 자유시 1편, 수필 2편 남겨

이원수는 죽기 전까지도 부왜 동시를 쓴 사실을 숨겼다. 1993년에 쓴 '군가를 부르는 아이들에게'(이원수아동문학전집)라는 글에서 그는 "우리말을 쓰지 말고 일본말을 쓰게 했고, 창씨개제도를 만들어 한민족의 성까지 일본사람 성처럼 고치게 한 압정 아래서의 나는, 동시인이란 이름도 모르고 사무원으로만 엎드려 있었다"고 술회했다.

그가 부왜동시를 썼다는 사실은 작품발표 50년, 작고 20년만에야 밝혀졌다. <반도의 빛>에 그는 친일작품 5편을 발표했다. 이미 공개된 '지원병을 보내며' 이외에 이번에 '낙하산'이 새로운 친일작품으로 밝혀진 것이다.

▲ 경남 곳곳에는 이원수를 기리는 기념물이 세워져 있다. 위 사진은 이원수의 이름을 딴 창원의 '도서관' 개관식 모습이며, 아래는 마산에 있는 '고향의 봄' 노래비.
ⓒ 경남도민일보
▲동시 '낙하산' '방공비행대회(防空飛行大會)에서'라는 부제가 붙은 이 동시는 <반도의 빛> 1942년 8월호에 실렸다. 박태일 교수는 "이 동시는 '병역봉공'의 뜻을 잘 살려냈다"면서 "'지원병을 보내며'와 견주어 더 뛰어난 형상력을 보여주고, 그 부왜 빛깔과 강도가 너무 완연하다"고 분석했다.

새들아 보아라 / 해도 보아라 / 우리나라 용감한 낙하산 병정 / 푸른 하눌 날러서 살풋 내리는 / 낙하산 병정은 용감도 하다 / 낙하산 병정은 참말로 조쿠나...(동시 '낙하산' 일부).

▲시 '보리밧헤서' <반도의 빛> 1943년 5월호에 발표한 작품으로, 모두 여섯 토막 스물여덟 줄로 된 자유시다. 이 시에 대해 박 교수는 "그 무렵 우리 농민이 지녀야 할 '총후봉공', 그 가운데서 '농업보국'의 자세와 내용을 일깨우고자 한 뜻을 잘 담은 부왜시"라 말했다.

또 박 교수는 이 작품에 대해 "왜로의 강제 수탈을 두고 온 정성을 다해 '내선일체'를 실천하고, 성전에 병역봉공을 다하는 일이라고 목소리를 드높여 부왜 빛깔을 감추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바람이 분다 / 옷 속에 들어도 보드럽기만한, 이른 봄 3월에 남풍이 불어온다 // … // 아아 원통해 가슴치든 흉작의 지난해에 / 나라에 바칠 그나마의 정성도 / 가무름 속에 헛되이 말나지고 / 주림의 괴롬만 맛보게 된 원수의 해 … // 모다 나와 밭골을 매고 또 매자 / 올해야 말로 결전의 해! / 승리를 위해 피흘리는 일선의 장병을 생각하며 / 산업의 전사들, 우리나 익여내자 / 올해야말로 풍작과 승리의 즐거운 해 되리라...(시 '보리밧헤서' 일부).

▲부왜수필 지금까지 밝혀진 이원수의 부왜수필은 2편이다. '고도감회'는 박태일 교수가 2002년에 찾아내 공개했는데, 이른바 '근로봉사'를 위해 1941년 4월 2박3일 일정으로 부여에서 겪었던 경험을 쓴 수필이다.

박태일 교수는 이번에 '고도감회' 원문을 공개했으며, 이 작품에 대해 "진정한 내선일체를 이루고 '황민'이 되기 위해 '적성'을 다하고자 한 글"이라 평가했다.

또 박태일 교수는 '전시하 농촌아동과 아동문화'라는 글을 새로 찾아냈다. 이 수필은 <반도의 빛> 1943년 1월호에 실린 편지글로, 제목이 없었는데 박 교수가 내용에 따라 임의로 붙였다.

이 수필은 '아동문화에 관한 형의 탁월하신 의견'에 대한 답신으로 집필됐다. 이원수는 이 글에서 "오늘의 반도의 아동이 지난날의 아동과 동일시할 수 없는 크나큰 임무를 가진 존재"라며 "훌륭한 황국신민이 되어가는 존재"라 설명해 놓았다.

박태일 교수는 "'반도의 아동문화'를 위해 힘껏 노력하여, '조선의 아동'들이 하루바삐 온전한 '황민'이 되는 데 힘을 쏟자는 권고의 뜻을 오롯이 담았다"면서 "'황국신민화'를 위하여 정성을 다해야 함을 힘껏 일깨우고 있어 부왜의 강도가 극진하다"고 분석했다.

박태일 교수 "이원수 부왜작품 더 나올 가능성 커"

▲ 이원수의 부왜작품이 실린 <반도의 빛> 표지.
ⓒ 경남도민일보
이원수가 부왜작품을 내놓았던 시기는 그가 함안금융조합에 일하고 있을 때인 30대 초반 시절이었다. 박태일 교수는 일부에서 그의 부왜작품을 '생계형'으로 보고 있다며, 이를 경계했다.

이원수의 부왜작품이 '생계형'이라는 주장에 대해 박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이른바 '생계형' 부왜의 전형으로 몰아가, 쉽게 감싸버리는 쪽으로 나아가는 길도 한 방편일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넘겨버리기에는 그의 작품이 지니고 있는 부왜의 뜻과 열정이 사뭇 진지하고 곡진하여, 수사적 차원을 뛰어넘고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

박태일 교수는 "<반도의 빛>은 물론, 다른 매체에서도 이원수의 부왜작품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면서 "우리 근대 아동문학사에 뚜렷한 발자취를 남긴 문인 가운데 한 사람인 이원수에 대한 조사와 연구가 더욱 깊어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박태일 교수 "이원수 부왜작품의 성격은 워낙 뚜렷하다"

2002년부터 이원수의 부왜작품 연구를 시작한 박태일 경남대 교수는 "이원수 부왜작품의 성격은 워낙 뚜렷하고 강하다"고 말했다. 그는 "지역에서 부왜문학을 연구할 경우 의외의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다음은 그와 나눈 대화 내용이다.

- 이원수의 부왜작품에 대해서는 언제부터 관심을 가졌나.
"2002년 경상대에서 경남의 부왜문학을 훑어보자는 제안이 있었고, 그 때부터 지역의 중요한 문인들에 대해서는 개별적인 논문을 쓰겠다고 했다. 지역 부왜문학 연구 활동의 과정이다."

- 이원수를 우리가 흔히 말하는 친일문인이라 할 수 있는지?
"고민스럽다. 작품의 성격이 워낙 뚜렷하고 강하다. 이야기하기가 어려운 부분은 있는데, 연구자로 사실을 밝히고, 의미 부여를 하는 입장에 있다고 보면 된다. 아동문학의 부왜는 원론적인 차원에서 더 연구해 봐야 한다. 그렇게 하면 실체가 드러날 수도 있다. 다른 작품에서 그런 징조가 보인다."

- 2002년 이원수도 부왜작품을 썼다는 사실이 처음 알려졌을 때 주변에서 어떤 반응이 있었나.
"공식적으로 논의를 해온 데는 한군데도 없었다. 양산시에서 이원수 현창사업을 할 계획인데, 글을 보고 싶다는 의견이 있어 개인 자격으로 보내주었다. 공식적으로 대응을 받은 적은 없다. 연구자 입장에서 관심있는 분들이 물어봐 주면 좋은데 말이다. 아동문학계에서는 논란이 많았을 것이다."

- 경남 일대에 보면 이원수를 기리는 사업들이 많은데, 어떻게 해야 한다고 보는지?
"양산시에서 하는 대대적인 현장사업은 그만두어야 한다. 창원의 도서관은 이원수의 연보에 부왜작품 활동 부분을 언급해야 할 것이다. 새롭게 하는 선양사업은 세비를 들여서 하는 것인 만큼 그만 두어야 할 것이다."

- 지역 문인들의 부왜작품 연구가 왜 중요한가?
"부왜문학 문제를 중앙적이거나 거시적 차원으로 접근하면 놓치는 부분이 많다. 지역에서 자행된 더 섬세하고 더 집중적이고 더 강도 높은 부왜도 잊혀질 수 있다. 지역 차원에서 접근할 때 의외의 놀랄만한 성과가 나올 수 있다. 문학, 예술과 마찬가지로 정치도 중앙 차원의 부왜도 중요하지만 지역에서 자행되었던 부왜도 찾아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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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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