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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18일 노무현 대통령이 직무복귀 후 첫 외부행사로 광주민주화항쟁 24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차분한 표정으로 앉아 있다.
지난 5월 18일 노무현 대통령이 직무복귀 후 첫 외부행사로 광주민주화항쟁 24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차분한 표정으로 앉아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는 개혁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시장을 인정한다면 원가 공개는 인정할 수 없다."

"이것은 경제계나 건설업계의 압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대통령의 소신"이라고 강조하면서 "포괄적으로 주택공사 사업은 결과를 공개하고 철저히 감사받고 기획예산처의 평가도 받는다. 특별하게 부정이 있는 경우가 아니면 가격을 갖고 주택사업에서 돈을 남겼다고 부당하게 쓰지는 않는다. 사업에서 남는 부분을 모두 공개하는 것도 좋지만 적어도 주택공사가 사업자 원리에 따라 움직이는 한 원가공개는 장사의 원리에 맞지 않는다."

"장사하는 것인데 10배 남는 장사도 있고 10배 밑지는 장사도 있고, 결국 벌고 못 벌고 하는 것이 균형을 맞추는 것이지 시장을 인정한다면 원가 공개는 인정할 수 없는 것."

"지금 하고 있는 임대주택사업은 무조건 밑지는 것이다."

"우리당이 내 생각을 모르고 또 내가 정책에 참여하지 않으니까 선거에서 공개를 약속했다. 대통령의 소신을 우리당에서 미처 확인하지 않고 공약했다가 차질이 생겼다."


지난 9일 저녁 청와대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민주노동당 김혜경 대표와 의원들을 초청해 만찬을 함께 한 자리에서 한 발언이다.

머리가 멍해지고 가슴이 답답해 진다. 기회 있을 때마다 외치던 대통령의 개혁구호가 고작 이렇게 빈곤한 것이었나? 넉넉하고 잘사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거창한 선언이 정녕 건설업체와 대토지소유자 및 다주택소유자들에게만 유효한 것이었나?

아파트 투기가 진행된 지난 2~3년동안 1천억짜리 아파트 공사를 맡으면 300억~500억원은 가볍게 번다는 얘기가 공공연한 사실로 확인되고 있고, 아파트 분양가 자율화가 실시된 지 불과 5년여 만에 서울지역 아파트 분양가가 2배 이상 심지어 3배 가까이 오르고 있으며, 서울지역 아파트 분양가는 노 대통령이 대통령에 취임한 작년에 무려 30%가 넘는 사상최대의 상승률을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다.

오죽하면 일부 지역 시민들이 주공을 상대로 '부당이득금 반환청구소송'을 제기할 준비를 하고 있겠는가!

평범한 도시근로자가 내집 마련하는 길은 로또 복권 당첨 뿐

그 뿐인가. 얼마 전 지난 98년만 해도 서울에서 도시근로자가 25평대 자그마한 아파트를 내집으로 마련하는 데 11년 3개월이면 됐으나, 지금은 무려 18년이 걸리고 32평 아파트는 23년 3개월이 소요된다는 발표가 있었다. 참고로 말하면 위에서 말하는 아파트는 강북소재 아파트 기준이다. 이제 평범한 도시근로자가 강남 소재 아파트를 구입하는 방법은 로또 복권에 당첨되는 길 뿐이다.

그렇다면 마치 날개가 달린 것처럼 폭등하고 있는 아파트 가격과 부동산 가격으로 인해 형성된 막대한 부는 누구에게 흘러가는 것일까? 말할 것도 없이 건설업체와 대토지소유자 및 다주택소유자들이다. 서울시만 하더라도 주택보급율은 이미 100%가 넘지만 자가소유자의 비율은 아직 절반에도 이르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아파트 가격을 비롯한 부동산 가격의 앙등으로 생긴 불로소득의 규모는 상상을 불허한다. 한국은행 김태동 금융통화위원은 최근 3년 간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면서 최소 500조원의 불로소득이 생겼고 그러한 불로소득의 대부분이 50만명 정도에 불과한 주택·땅 소유자에게 집중됐다고 말했다.

머리 속에 그림을 그려보자. 주공과 토공은 택지를 개발하면서 엄청난 이익을 얻는다. 택지를 불하받은 민간업체는 거기에 엄청난 차익을 얹어서 매도하거나 직접 아파트를 분양하여 막대한 이익을 얻는다.

분양가는 원가를 기준으로 책정하지 않고 주변 시세에 따라 책정하며 높은 분양가는 주변 시세도 끌어 올리는 효과를 발휘한다. 물론 몇 단계에 걸쳐서 형성된 거품을 보전해 주는 것은 전적으로 아파트 구입자들의 몫이다.

이런 와중에 넘쳐나는 자금을 주체 못하는 투기세력들은 미리 아파트를 여러 채 구입하고 가격이 오를 만큼 오른 후 이를 매도하여 손쉽게 불로소득을 거둬 들인다. 투기세력이라고 해서 뿔 달린 괴물이 아니다. 그들은 고위관료, 전문직 종사자, 사업가 등등의 얼굴을 하고 있다.

부동산 투기와 아파트 가격 폭등은 심하게 표현해서 합법의 탈을 쓴 절도다. 대다수 서민들이 피땀 흘려 축적한 부가 끊임없이 일부 건설업체와 대토지 소유자 및 다주택소유자들에게 이전된다는 점에서 절도이고, 이러한 폭리 및 투기행위가 법률적으로 보호받고 있다는 점에서 합법이다. 세상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파렴치하며 극악한 절도행위인데도 그 수혜자들은 만고에 떳떳하다.

실상이 이러한데도 이 문제를 대하는 노 대통령의 진단과 처방은 너무나 실망스럽다. 아마도 노 대통령은 재경부와 건교부 등에 포진한 보수관료들의 논리를 여과없이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생긴다.

보수관료들은 여전히 부동산가격은 시장에 맡겨야 하고 집값이 오르는 것은 집이 부족해서 그러하며, 아파트 분양원가를 공개하면 아파트 가격이 급락하고 이는 경제위기를 초래할 것이라는 허황된 논리를 줄기차게 유포하고 있다.

공공재 성격이 강한 아파트와 장사는 달라

그러나 보수관료들이 말하는 시장은 경제학 교과서에나 등장하는 개념이며 집값이 오르는 것은 집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소수 사람들이 너무 많은 집을 투기 목적으로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록 아파트 분양원가를 공개하고 종합부동산세제 등을 내실있게 추진하면 아파트 가격이 떨어지고 버블 붕괴에 따른 부작용이 발생하겠지만 이는 피할 수 없는 일이다.

노 대통령은 분양원가 공개를 반대하면서 이를 장사에 비견하였다. 그런데 과문한 탓인지 10배 남는 장사가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별로 없고 설령 그런 경우가 있다 하더라도 공공재의 성격이 매우 강한 아파트에 이를 적용하는 것은 부당하다.

프라다나 구찌, 아르마니 같은 명품들은 원가의 10배 이상 심지어 100배 가까운 가격에 팔리기도 하고 이를 소비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명품이 우리 생활에 꼭 필요한 것이 아니기에 사지 않으면 그 뿐인 것이다.

그렇지만 집없이 살 수 있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기에 토지와 주택 등을 다른 상품과 대등하게 취급하는 것은 대통령의 식견이 얕음을 보여주는 증거일 따름이다.

노 대통령의 발언 직후 청와대 게시판은 분노한 시민들의 절규로 가득하다. 무릇 개혁이란 한국사회 구성원 중 대다수를 이루고 있는 서민들의 살림살이를 살피고 이를 개선하는 것이 요체이다. 서민들의 살림살이를 주름지게 하고 있는 가장 큰 원인이 주택과 사교육비 부담임은 삼척동자도 아는 일이건만 정작 노 대통령은 그 절박함을 느끼지 못하는 듯해 매우 안타깝다.

덜 배우고 가진 것 없는 서민들이 비주류 정치인이었던 노무현을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 선택하고, 의석 수가 불과 40여 석에 불과하던 소수 정당을 원내 과반수 정당으로 만든 것은 바로 위에서 말한 서민들의 주름을 피게 할 수 있는 희망을 노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에 걸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도 못하겠다는 말인가. 부동산종합세제와 재개발아파트개발이익환수제마저 대폭 후퇴조짐을 보이는 지금 노 대통령이 말하는 개혁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진정한 개혁의 방향과 내용은 무엇인가?

식민지시대와 분단, 한국전쟁, 군부독재시대를 거쳐 참여정부에 이르기까지 한국사회 구성원들은 더 많은 정치 자유와 경제 번영을 위해 부단히 노력해왔다. 그 결과 주변부 국가 중에서 괄목할만한 절차 민주주의를 구현하였고 세계 12위에 해당하는 경제대국의 자리에까지 올라서게 되었다.

그러나 한국 사회 구성원 대부분 삶이 만족할 만한 수준으로 향상되었는지 질문해보면 그 대답은 매우 회의적이라 할 것이다. 정당구조와 운영이 민주적이고 자발적으로 바뀐다고 해서, 권력기관들이 헌법과 법률에 명시된 역할을 정확히 수행한다고 해서, 제대로 지방분권을 이룬다 해서, 지역대결구도가 완화된다고 해서 한국사회 구성원들의 삶의 질이 근본적으로 개선될 수는 없는 것이다.

몇 년만 열심히 일해 저축하면 누구나 좋은 집을 장만할 수 있고, 저렴한 재화와 용역을 이용할 수 있고, 충분한 소득으로 만족할만한 소비를 하며, 양질의 공공서비스(교육·의료·노후)를 받으며 실업 공포가 없는 사회, 바로 그런 사회를 만들기 위한 개혁이라야 진정한 개혁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노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은 지금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노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이 지금이라도 개혁의 방향과 내용에 대한 근본적 검토와 반성을 하지 않는다면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참혹한 정치적 실패일 것이고, 구체적으로는 2006년 지방선거의 패배로 나타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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