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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분양원가 공개여부를 놓고 세상이 시끄럽다. 여당이 공개에서 불가, 불가에서 공개로 갈지자 행보를 거듭하던 차에 대통령의 공개불가 소신에 부딪쳐 주춤거리다 지지율이 급락하자 당과 청와대 모두 당황해 수습책을 마련한 끝에 25.7평 이하 아파트에 원가연동제를 실시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는 보도가 있다.

'조중동'은 대통령이 이번에는 옳았다고 역성을 들고 나서고 한나라당은 호재를 만난 듯이 원가공개를 외친다. 평소와 달리 개혁과 보수의 편 가르기가 힘들어져 어리둥절해 하는 사람도 많다.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일까? 그 이유는 합리적 토론보다는 감성에 휘둘리는 우리 사회 특성이 이번 논쟁에도 반영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가 과연 필요한 정책인지 따져보자.

찬성하는 사람들의 논리는 '분양원가 공개→분양가 하락→아파트 가격하락'이고 반대하는 사람들의 논리는 '분양원가 공개→분양가 하락→아파트 공급 축소'다.

우선 '분양원가 공개→분양가 하락'의 논리가 타당한지 살펴보자. 원론적으로는 원가 공개가 분양가 하락으로 연결된다는 근거가 없다. 지금처럼 분양가 책정이 자율화되어 있는 상태에서 건설회사는 원가야 어떻든 가능한 한 높은 분양가를 책정하고 싶을 것이다. 건설회사는 평당 분양가가 10억원이 된다고 하더라도 마다할 리 없지만 너무 높게 분양가를 책정하면 미분양사태가 나타나고 이로 인해 금융비용이 올라갈 것이므로 그렇게 할 수 없다.

주변 아파트 시세는 분양가를 책정하는 길잡이 역할을 한다. 새 아파트는 상대적으로 품질이 뛰어나고 내구 연한이 길기 때문에 주변 아파트보다 분양가가 비싼 게 정상이다. 일부 오래된 아파트가 높은 가격을 보이는 경우가 있지만 이는 저밀도에서 고밀도로 재개발이 가능해서 기대 수익이 크기 때문이지 헌 집이 더 좋아서가 아니다.

아파트 분양가가 비싸서 주변 아파트 시세를 끌어올린다는 말도 사실이 아니다. 부동산 경기가 좋으면 분양가도 오르고 기존 아파트 값도 동반 상승한다. 사실 신규 분양아파트보다 기존 아파트 물량이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에 기존 아파트 가격 상승이 분양가 상승을 가져온다고 보는 것이 옳다. 건설회사가 비싸게 팔 자신이 있기 때문에 분양가를 올리는 것이다.

살려는 사람이 줄을 서 있고 분양가 책정이 자유롭다면 분양원가 공개가 분양가 하락으로 연결될 아무런 경제 이유가 없는데 왜 찬반 논란이 심한가? 그 이유는 원가공개가 건설회사의 높은 이윤을 노출시키고 이로 인해 분양가를 낮추라는 사회 압력이 발생할 것이고 분양가 규제 정책 도입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시장경제에서 원가가 싸다고 싸게 팔라고 강요하는 것은 이치에 닿지 않는 주장이다. 할리우드 스타와 무명 배우의 원가가 같다고 출연료도 같은가? 삼성전자 램이 하이닉스 램보다 원가가 싸니까 더 싸게 팔아야 하는가?

경제 논리상 근거는 약하지만 분양원가 공개가 분양가 하락을 가져온다고 가정하자.

그럼 분양가 하락이 아파트 값 하락으로 연결되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 아파트 시장이 다른 시장과 다른 점이 있다면 집짓는 데 시간이 걸리므로 공급이 수요에 다소 늦게 반응한다는 점과 우리나라에 두드러진 현상이긴 하지만 수요에 가수요 내지는 투기수요가 많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그러나 아파트 값 역시 다른 상품과 마찬가지로 기본적으로 수요와 공급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고 그래야 한다.

수요와 공급에 따른 가격보다 싸게 분양가가 책정되면 어떤 현상이 벌어질까? 우선 아파트 공급이 준다. 물론 공급 축소는 2년 이상 시차를 두고 일어날 것이다. 공급 축소는 아파트 가격 상승 요인이다. 분양가 하락이 공급 축소와 무관하다고 통계를 들어 주장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는 근거 없는 주장일 뿐이다. 다른 모든 요인이 같다면 분양가 하락이 공급 축소를 가져올 이유는 있어도 공급 확대를 발생시킬 아무런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분양가 하락에도 공급이 늘어날 수도 있지만 분양가 하락이 없었다면 더 늘어났을 것이다. 비유를 들어보자. 다른 모든 요인이 같다면 수학점수가 줄면 전 과목 평균점수도 준다. 하지만 실제로 다른 과목 점수도 변하므로 수학점수가 줄어도 평균점수가 늘 수 있다. 이 때 수학점수와 평균점수는 무관하다고 주장할 수 있는가?

공급 축소로 인한 가격의 변화는 시차가 있으므로 우선 당장 일어날 변화를 생각해보자. 답은 간단하다. 시장 가격보다 분양가가 싸면 분양신청자가 늘어나고 프리미엄은 당첨자에게 돌아간다. 싼 가격에 당첨 받은 당첨자가 '나는 싼 분양가에 잡았으니, 즉 원가가 싸니 싸게 팔겠다'고 할 것인가? 사회가 그들에게 팔 의사가 있다면 싸게 팔아야 한다고 강요할 것인가?

경제 필연성은 없지만 심한 사회 압력과 분양가 규제 정책의 부활을 전제로 분양가 공개가 분양가 하락을 가져온다고 하자. 이 경우 결국 논쟁의 핵심은 프리미엄을 누가 차지하느냐에 관한 것일 뿐 아파트 값 하락 또는 안정과는 무관하고 시장 왜곡의 우려만 존재한다.

현재 정부에서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소형 아파트 원가연동제 역시 이 같은 문제점에서 벗어날 수 없다. 집 없는 서민들에게 싸게 내 집을 마련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어차피 당첨이라는 관문을 통과해야 하므로 서민이든 아니든 운 좋은 사람에게 프리미엄을 주는 것이며 아파트 분양을 재테크 수단으로 보는 사람도 늘어날 것이다.

건설회사가 이익을 가져가는 것보다 구매자들이 프리미엄을 갖는 것이 낫다고 볼 수도 없다. 전자는 시장원리에 따른 것이지만 후자는 과소공급과 투기과열 등의 부작용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요약하면 분양원가 공개가 말 그대로 공개에만 그친다면 굳이 찬성하거나 반대할 이유도 없다. 그러나 분양원가 공개가 분양가 규제를 의도하는 것이라면 프리미엄을 건설회사 대신 운 좋은 소수 사람에게 주자는 것일 뿐 단기적인 아파트 값 하락과는 관계가 없고 중장기적으로는 가격 상승요인이 될 것이다.

우리나라 아파트 값에는 거품이 많고 그 거품이 자원배분 왜곡, 빈부격차 확대 등 수많은 부작용을 낳고 있다. 정부는 아파트 가격의 급격한 하락으로 인한 경기침체를 두려워하는 듯하지만 아파트 값 거품에 따른 현재의 부작용보다 심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분양원가 공개처럼 감성적 호소력은 있지만 효과가 없는 정책이 아니다. 원가연동제 역시 대안이 아니다. 원가연동제는 소형아파트의 공급을 줄이고 그나마 짓는 것도 품질이 낮아지게 된다. 어차피 가격이 정해져 있는데 누가 신경 써서 좋게 지으려고 하겠는가.

대안은 우선 거래세 비중은 줄이고 보유세를 현실화하여 실제 집을 소비할 의사가 없으면서도 집값 상승을 노리고 집을 보유하려는 가수요를 줄이는 것이다. 그리고 적정한 개발이익 환수도 필요하다.

사유재산권을 침해한다 하여 개발이익환수와 관련하여 위헌 논쟁이 있지만 개발로 인해 주거 밀도가 높아지면 정부의 기반시설 공급비용도 커지고 교통혼잡과 공해 등의 사회 비용도 증가하므로 이에 상응하는 개발이익을 환수하는 것은 사유재산을 침해하는 것도 아니며 과밀 현상을 막는 길이기도 하다. 정작 개혁 정책은 등한시되고 비본질적인 정책이 개혁정책으로 둔갑하여 쟁점을 흐리고 있는 모습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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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전반에 경제학을 전공하고 잠시 직장생활을 하다 미국에 가서 도시경제학을 공부하고 귀국해서 인천시 출연연구기관인 인천발전연구원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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