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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들이 문화의 생산자로 발벗고 나섰다. 창살 없는 사회 감옥에서 인간의 기본권인 문화권리를 박탈당한 채 살아가던 장애인들이 문화의 소비자가 아닌 문화 생산의 주체로 당당하게 세상에 얼굴을 드러낸 것이다.

"자본이 만들어 놓은 일상문화와 힘차게 싸워나갈 것"

지난 6월 12일 토요일 오후 4시, 안암동 고려대학교 학생식당에서는 1년여의 준비 끝에 '장애인문화공간' 창립총회가 열렸다. 60여명의 참가자들이 모인 가운데 치러진 창립총회는 1년여간 준비위원회의 형태로 진행되었던 다양한 사업과 진행과정은 물론이고 새로운 집행부를 선임하는 등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 창립총회의 모습들(참가자들, 최재호 대표, 박영희 대표, 에바다학교 관계자들 - 시계방향)
ⓒ 이철용
윤기현씨의 사회로 진행된 창립총회는 운영위원인 민중그룹 '젠' 신윤철 대표의 창립선언문 낭독으로 시작되었다. 장애인문화공간은 창립선언문을 통해 “장애인들이 당연한 사회적 주체로서 그 문화를 향유하고자 하는 욕구가 강함에도 불구하고 장애인들의 대다수가 문화공간으로부터 소외되어 자신의 문화 활동으로 TV나 독서 등을 꼽을 정도로 집안에서 즐기는 것이 고작이다”라며 장애인 문화의 현실을 지적했다.

장애인문화공간은 이러한 현실에 저항하며 “문화사업과 실천적인 활동을 통해 장애인이 더 이상 문화적 착취와 소외의 대상이 아니라, 적극적인 문화생산자이자 진보적 문화운동의 주체임을 분명하게 확인시켜 나갈 것”을 밝혔다.

뿐만 아니라 “장애인의 일상적인 삶 자체를 오직 시혜와 동정의 시선으로만 바라보려 하는 이 사회의 잘못된 시각을 송두리째 뿌리 뽑고 자본이 만들어 놓은 일상문화와 힘차게 싸워나갈 것이다”라는 비장한 각오도 밝혔다.

“장애인의 내재적 문화욕구 개발 위해 지속적인 교육 펼칠 것”

창립선언문 낭독에 이어 지난 1년간 준비위원회의 사업보고, 운영위원과 실무진 소개가 이어졌다. 이어 치러진 총회에서 최재호(40)씨를 만장일치로 대표로 선출했다.

최 대표는 “문화에서 소외된 장애인들에게 문화적 접근의 기회를 많이 제공해서 내재된 문화적 소양들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도록 지속적이고 다양한 교육들을 펼칠 예정”이라고 밝혔다. 최 대표는 이러한 가능성은 지난해 개최했던 ‘영상을 사랑하는 장애인 미디어 교실’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창립총회에 이어 축하 순서도 이어졌다. 첫 번째 순서는 영상을 통한 축하 메시지로 장애인문화공간의 출범을 축하하는 많은 사람들의 축하인사와 바람들이 전해졌다. 장애인은 물론이고 비장애인들도 장애인문화공간의 출범에 큰 기대와 축하를 전했다. 특별히 노래공장, 류금신, 박준 등 그동안 장애인권운동에 동참했던 민중가수들은 장애인 당사자들의 본격적인 문화참여에 환영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 창립총회의 모습들(전시물, 젠의 공연, 참가자들, 방명록 - 시계방향)
ⓒ 이철용
영상메시지에 이어 민중그룹 ‘젠’의 축하공연도 이어졌다. 젠은 지난 1년간 장애인문화공간의 노래패인 ‘시선’을 직접 지도해 왔기 때문에 더욱 뜻깊은 감회를 밝혔다. 노래에 앞서 앞으로도 계속적으로 함께 하겠다는 의지를 밝혔고 열정적인 공연은 모든 이들의 어깨를 들썩이게 했다.

“닥쳐 닥쳐, 우린 병신이 아니다. 사람답게 살고 싶다. 장애해방, 장애인 이동권 쟁취…”를 노래할 땐 모두가 이미 불끈 쥔 주먹을 들어올리고 있었다. 젠의 공연에 이어 율동패 ‘들꽃’과 노들야학의 수화공연도 이어졌다.

“처절한 자신과의 투쟁에서 열매를 맺을 수 있어”

축하공연에 이어 장애여성공감 박영희 대표는 축사를 통해 “장애인의 문화가 척박하고 장애인 문화를 내놓으라면 말할 것이 없었는데 이번 장애인문화공간의 출범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했다.

박 대표는 그러나 “오늘 출발이 씨앗을 뿌리는 것으로 꽃과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기다림과 고민을 통해 장애인 문화가 만들어진다. 오늘의 출발이 고생의 출발이라는 생각으로 고민과 싸움, 처절한 자신과의 투쟁에서 승리해야 열매를 맺을 수 있다”며 앞으로의 길이 험난함을 말하기도 했다.

총회에 참가한 에바다학교 권오일 교감은 “장애인 운동이 지금까지는 이동권과 시설비리 등 투쟁을 통한 사회변혁을 모색했는데 이제는 문화에서도 주체적으로 활동할 수 있다는 것에 큰 의미가 있다”며 앞으로 “장애인의 특수성을 잘 살리는 다양한 활동을 기대한다”고 했다.

사회당 신석준 대표는 “이번 장애인들의 시도는 공연자와 관객이라는 일방적 틀 속의 한국사회의 왜곡된 문화 자체를 바꾸는 큰 의미를 갖고 있다”고 밝히고 “이러한 시도가 확산돼서 비장애인의 문화형태도 변화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문화의 영역에서 영원히 주변인으로 살아갈 것만 같았던 장애인들이 문화의 주체적 존재로 당당히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지금까지 비장애인, 특권층 중심의 우리 사회 문화는 철저하게 소수자를 배제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틀을 깨겠다고 장애인들이 일어섰다.

이들의 외침이 단순한 당위의 논리가 아닌 내용에 있어서도 차별화된,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당당한 모습이 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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