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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곰>의 표지
책 <곰>의 표지 ⓒ 비룡소
"잘 자라, 틸리야. 곰돌이는 여기 있다. 네가 자는 동안 곰돌이가 지켜 줄 거야. 곰돌이는 영리하니까. 그렇지?"

"응, 엄마. 곰돌이는 뭐든지 다 알아요." - 책 <곰> 중에서

잠잘 때 인형을 끌어안고 자는 아이들. 아이들이 가진 그들의 잠자리 친구에 대한 애정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각별하다. 심지어는 여름 휴가에 자기의 곰돌이를 데리고 가야한다고 울먹거릴 정도이니 말이다.

그런 아이들이 꾸는 꿈에는 무생물인 동물 인형이 생물이 되어 등장하기도 하고 온갖 사물들이 날아다니기도 한다. 그들만의 기발한 상상력은 비단 꿈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아이들이 꾸는 꿈이 현실 속에 그냥 반영되기도 하여 가끔은 주변 사람을 당황하게 하기도 한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꾸며내는 허망한 거짓말에 화를 내기도 하고 황당해 하기도 한다. 사실 아이들이 꾸며낸 거짓말들은 자신들이 꿈꾸는 상상력의 일부에 불과할 때가 많다. 이러한 사실을 알고 나면 조금은 그들의 거짓말과 엉뚱한 사고 체계를 이해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동명의 애니메이션으로도 유명한 레이먼드 브릭스의 그림책 <곰>은 이처럼 꿈을 꾸는 아이를 아름답게 그려내었다. 이 그림책 작가는 현재 애니메이션과 일러스트레이션의 공동 작업을 통해 아이들과 어른들 모두에게 꿈과 환상의 세계를 보여 주는 활발한 작업을 하고 있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눈사람 이야기를 담은 책 <눈사람>이 있는데, 영국에서 제작된 애니메이션 <스노우 맨>이라는 이름으로 많은 어린이와 어른 팬 층을 골고루 확보하고 있다. 귀여운 눈사람이 목도리를 메고 눈 속을 돌아다니며 아이에게 꿈과 아름다움을 전달하는 이 애니메이션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이 우리나라에도 꽤 있을 것이다.

책 <곰> 또한 풍부한 상상력과 아이들의 엉뚱하고 순진한 사고 체계를 바탕으로 한다. 곰 인형을 안고 자는 아이에게 어느 날 찾아온 곰. 북실북실한 털에 커다란 곰을 자기 침대로 안내하는 틸리는 곰이랑 함께 누워 참 따뜻하다고 생각한다.

"엄마, 엄마! 아빠! 곰이 날 깨웠어요!"
"뭐라고? 정말 놀랄 일이구나. 무서운 곰은 아니니?"
"곰이 혓바닥으로 내 얼굴을 핥아서 깼다니까요."
"곰이 정말 그랬니?"
"아휴, 정말 꺼끌꺼끌했어요. 게다가 시커멓고 축축한 콧구멍에서 뜨거운 콧김을 내 얼굴에 대고 확 내뿜는 거 있죠."
"틸리야! 그건 별로 좋지 않구나."
"정말이에요! 곰은 나랑 친해지고 싶어해요."
"글세, 네가 더 친해지고 싶은 것 같구나."


곰에게 빵과 버터를 가져다 주겠다고 나가는 틸리에게 엄마, 아빠는 그러라고 하면서 아이들의 상상 세계는 정말 대단하다고 감탄한다. 밤에 곰이 깔고 누르면 어떡하냐고 묻는 아빠에게 순진한 태도로 세상에 곰처럼 포근하게 나를 껴안아 주는 건 없을 것이라고 대답하는 틸리.

곰에게 우유를 먹이고 목욕을 시키고 곰이 싼 똥을 치우는 틸리의 모습은 그녀 자신의 상상 세계 속에 존재한다. "넌 바보 곰이야. 너 때문에 또 젖었잖아." 하고 투덜대면서도 곰의 품에 안겨서 "너랑 언제까지나 영원토록 같이 있었으면 좋겠어." 라고 중얼거리는 틸리.

곰 인형을 안고 노는 아이의 마음 속에는 그 인형이 마치 살아있는 존재처럼 움직이고 말을 하며 돌아다닌다. 그래서 인형 곰이 실제 곰처럼 말썽도 피우고 꿀도 먹고 목욕도 할 수 있다고 여겨지는 것이다.

자기가 소중하게 여기는 인형을 안고 그 인형이 살아 있는 존재였으면 하는 바람을 투영하는 아이들. 그들의 꿈을 보면서 어른들은 순수함을 배우고 기발한 상상력을 느낀다. 어른들이 어린 시절 느꼈었던 그 감정을 자신의 아이들을 통해 다시 경험하는 것이다.

"곰아, 난 네가 좋아. 진심이야..."

곰과 함께 잠든 아이는 어느 날 곰이 떠난 것을 알고 눈물을 흘린다. 그런 아이에게 아빠는 너무 실망하지 말라고 하면서 곰은 사람이 사는 집에서 함께 살 수 없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그리고는 곰돌이는 모든 곰에 대해서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아이를 달랜다.

현실과 꿈의 경계를 넘나드는 아이들의 상상력. 그것을 굳이 나쁘다고 다그치지 말고 함께 이해하고 나누어 보는 것은 어떨까? 아이들의 마음 속에 존재하는 환상적인 공간에 어른도 함께 머물러 보는 것이다. 이 과정을 통해 우리는 꿈을 배우고 사랑을 나눌 수 있지 않을까?

레이먼드 브릭스 글.그림, 박상희 옮김, 비룡소(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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