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합천에 있는 대안학교인 원경고등학교에서 6월 8일부터 11일까지 3박 4일간 극기 체험 학습을 하고 왔습니다. 극기 체험이란 다름이 아니라, 학교에서 합천 해인사까지 70km에 달하는 거리를 도보로 순례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름을 붙여 '향토 순례'라고 하였습니다.
대체로 대안학교는 매년 극기 체험 학습으로 지리산 종주등반을 시행해 왔습니다. 영산성지고등학교가 지리산 종주등반을 중요한 극기 체험학습으로 정착시킨 후, 다른 대안학교들도 의심의 여지없이 모두 5월 중순에서 6월 초순까지 지리산을 종주하기에 바빴습니다.
그런데 이번 원경고등학교의 향토 순례는 매년 시행하던 지리산 종주등반을 다변화한 첫 번째 행사입니다. 말하자면 지리산 종주를 대체하여 올해는 향토 순례를, 내년에는 해양훈련을, 내후년에 지리산 종주를 시행함으로써 매년 새로운 극기 체험을 학생들에게 제공하고자 한 것입니다.
그래서 한 달도 더 전부터 코스를 정하여 여러 번 답사하였고, 야영할 자리를 섭외하고, 교사와 학생들이 조를 편성하여 텐트와 코펠, 버너 그리고 침낭 등의 준비물과 부식을 챙기도록 하였으며, 순례를 떠나기 전 실제 도보 행진 대형으로 걷기 연습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극기, 협동, 은혜"를 주제로 하여 6월 8일, 고맙게도 아침부터 가는 비가 내렸다 그쳤다 하는 흐린 날씨 속에 향토 순례의 첫 발을 디뎠습니다.
아이들은 아스팔트길을 처음으로 많이 걸어본 터라 불평과 괴로움의 신음이 곳곳에서 들렸고, 간혹 구름이 지나가며 소나기를 뿌려 다리 밑에서 대피를 하기도 하였지만 첫날엔 따가운 햇살을 가려준 날씨 덕을 톡톡히 보았습니다.
첫날 야영은 합천군에서 운영하는 장전수련원에서 하였습니다. 저녁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갔지만 아이들이 워낙 피곤해 하는 통에 아무 것도 하지 못했고, 평소에 그 올빼미 같은 아이들이 저녁 9시가 되자 모두 잠들어 버렸습니다.
이튿날은 해가 나와서 이내 지열이 올라왔고, 아이들은 얼굴이 벌겋게 익어갔습니다. 2학년 여학생 둘이 발에 물집이 잡히고 발목이 아파서 걷는데 힘들어 하였습니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딛기가 힘들어 항상 대열의 맨 끝에서 겨우 겨우 따라올 수밖에 없어 선생님들이 같이 가며 부축해주어야 하였습니다.
이 두 여학생은 돌아오는 날까지 무척 힘들어 했지만 따라오는 학교 차에 타기를 한사코 거부하며 끝까지 종주하여 주변을 놀라게 하였습니다. 또한 남학생 건각(健脚)들은 여학생들과 몸 약한 아이들의 배낭을 앞뒤로 져주고 부축하며 협동심을 발휘하기도 하였습니다.
낑낑대며 걷고 또 걸어 2박을 송씨 고가(宋氏古家) 근처 공터에서 하고, 사흘째 되는 날도 걷고 또 걸어 해인사 아래 봉산 중학교 옆 공원 잔디밭에서 3박을 하면서 아이들은 학교 울타리 안에서는 결코 체험할 수 없는 괴로움과 아픔, 기다림과 희망, 아쉬움과 소중함을 느낄 수 있는 경험들을 함께 해 나갔습니다.
3박을 하는 동안 거의 1인용 텐트에서 3명이 꼭 끼어 잔 일, 야영지에서 폭죽을 터트리며 논 일, 더운 몸을 식히려고 차가운 물에 머리 감으며 감사하던 일, 너무 힘들어 점심으로 나눠준 김밥에 목이 메던 일, 삼층밥을 지어서 먹던 일, 텐트에서 자는 데 하도 추워서 덜덜 떨고 자다가 옆 친구도 같이 떨기에 침낭을 덮어주었더니 생명의 은인이라고 좋아해서 뿌듯해 한 일, 몸무게가 3kg이나 빠져서 기뻤던 일, 그리고 사흘째 되는 날 밤 기타를 치며 아이들이 둘러앉아 함께 노래를 부르던 일 등,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추억들을 간직하고 향토 순례는 끝이 났습니다.
향토 순례가 끝나고 아이들에게 '은혜 찾기'를 시켰더니 선생님들이 생각하지도 못한 많은 은혜들을 찾아내었습니다. 힘든 일을 겪게 함으로써 자신의 의지를 시험하고, 성취감을 맛보게 하며, 살아있음에 대한 감사함을 느끼게 하는 극기 체험 학습인 향토 순례를 통해, 원경고등학교 선생님들과 학생들은 전 가족들이 더욱 깊이 만나고 더욱 깊이 성숙하는 아름다운 계기가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이번 향토 도보 순례는 책상 앞에서 무기력하기 일쑤인 아이들에게 또 하나, 자아 실현의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 | "힘겨움을 이겨낼 수 있게 해준 내 의지에 감사" | | | 2학년 박아람 학생의 '은혜 찾기' | | | | 이 악물고 죽어라 걸었던 3박 4일. 진짜 주저앉고 싶고, 눈물도 나올 것 같았는데 자존심 때문에, 꼭 해내고 말 거라는 다짐에 절대 뒤쳐지지 않고, 끙끙대며 성공함.
우리 고생시키는 선생님들을 미워했는데, 선생님들도 우리와 함께 동고동락하면서 힘겨움을 같이 나누고, 웃고 함께 즐기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잘 못 생각했다는 걸 알았다.
힘겨움 속에서 서로 돕고 힘이 되어주며, 위로와 격려 해주면서, 친구들과 더욱 가까워 질 수 있었던 것 같다. 피나고, 물집 잡히고, 땀에 절고, 손발 퉁퉁 부어도, 그래도 향토 순례는 잊지 못할 좋은 추억으로 내 마음 속에 자리 잡았다.
<은혜 찾기>
1. 걸을 기회를 준 원경고가 있어서 감사
2. 원경고를 다니게 해주신 부모님께 감사
3. 걸을 수 있는 내 다리에게 감사
4. 땀을 닦을 수 있는 내 손에 감사
5. 가방을 멜 수 있는 내 어깨에 감사
6. 짐을 간편하게 넣어주는 가방에게 감사
7. 발을 안 아프게 보호하는 신발에게 감사
8. 피부를 보호해 주는 내 옷에 감사
9. 시원한 바람에게 감사
10. 목을 적셔주는 물에 감사
11. 길을 비춰주는 따사로운 햇빛에 감사
12. 그늘을 만들어 주는 나무에게 감사
13. 살아 있다는 걸 새삼 느끼게 해주는 내 걸음에 감사
14. 햇빛에 타는 걸 막아주는 모자에게 감사
15. 배고픔을 없애주는 밥에 감사
16. 밥을 해 먹을 수 있는 코펠에 감사
17. 잠을 편히 잘 수 있게 해준 텐트에 감사
18. 따뜻한 잠을 잘 수 있게 해주는 침낭에 감사
19. 힘겨움을 이겨낼 수 있게 해준 내 의지에 감사
20. 내게 가장 소중한 친구들이 있어 감사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