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나라 원풍 말년에 황주땅 도화동 사는 심핵규라는 양반이 있으되, 이십 전에 안맹하야 일가친척 바이없고, 사십이 장근토록 실하의 일점혈육이 없어 가긍히 지내는디, 그 아내 곽씨부인이 현철하야 봉제사 접빈객과 인의예지 화목허고, 가장 공경 치산범절 백집사가감이었다. 가련한 곽씨부인이 몸을 버려 품을 팔어, 그 가장을 공경을 허는디,”
이 대목은 심청전의 처음 ‘삯바느질’ 대목이다. 음반이 돌아가자 근세5명창의 하나인 정정렬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이 음반은 신나라뮤직(대표 정문교)에서 발매한 SP시대 불후의 판소리 명작인 <폴리돌 심청전>이다. 그동안 신나라뮤직은 일제 강점기 시대의 SP음반을 복각하여 발매하는 데 많은 공을 들여 왔다.
그 중 이 폴리돌판 심청전은 1935년에 SP로 녹음된 것을 신나라레코드가 80년대 말 LP판으로 복각했다가 이번에 CD로 새롭게 제작한 것이다. 이 음반은 판소리 전문가인 최동현 군산대 교수가 사설과 주석을 새롭게 하고, SP 원판의 잡음을 크게 줄여 LP 복각판에 비해 음질도 더욱 깨끗하게 들린다. <폴리돌 심청전>은 학자들 사이에 1935년에 나온 <폴리돌판 적벽가>, 1936년 <빅터판 춘향가>와 더불어 3대 판소리 완창 명반으로 꼽힌다.
우리는 1900년대 초 근세5명창으로 송만갑(1865~1939), 김창환(1854~1927), 이동백(1866~1947), 정정렬(1875~1938), 김창룡(1872~1935)을 꼽는다. 이 근세5명창의 소리는 구전으로만 내려오던 1900년대 초 판소리의 전승 형태를 그대로 담고 있는데 이 음반은 5명창 중 3명이나 참여하고, 같이 참여한 다른 소리꾼들도 5명창 못지않은 명창이라는 평가를 받기에 단순한 음반이라기보다는 귀중한 연구자료로 인정되고 있다.
다른 유파에 물들지 않은 순수하고 전통적인 중고제 소리의 명인 김창룡, 고종과 순종의 각별한 사랑으로 통정대부(정삼품에 해당하는 벼슬)라는 관직까지 얻었으며, 흠 하나 없이 맑게 뽑아 올리는 특유의 소리를 내는 이동백, 장단 변화에 무궁한 재미를 넣어 독창적인 소리를 했던 춘향가의 원류인 정정렬은 이미 근세 5명창으로 추앙을 받는 사람이다.
뿐만 아니라 박동진 명창의 스승 조학진, 북한에서 공훈배우로 대접받던 여류명창 임소향, 배일 속에 가려져 있던 문연향 명창과 함께 일제강점기 시대 최고의 고수로 평가받던 한성준 고수가 참여한 기념비적인 음반이라고 신나라뮤직 정문교 대표는 강조했다.
이 음반은 요즘처럼 한 사람이 완창하는 형식이 아닌 심청가 한바탕을 분창(分唱) 형식으로 6명이 나누어 부르며, 당대 최고 소리꾼다운 기량을 유감없이 발휘내고 있다. 이렇게 분창형식으로 녹음한 까닭은 당시에 창극 형식의 판소리가 인기를 끌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여러 명의 소리꾼이 한 음반에서 각자의 개성을 뚜렷하게 드러내고 있어 한층 묘미있는 음반이 되었다.
신나라뮤직 정문교 대표는 기념비적인 명반임을 몇 번이고 강조하면서 이 음반을 강하게 추천했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였다.
“구전으로만 내려오던 1900년대 초 판소리의 전승 형태를 그대로 담고 있는 5명창 중 3명이나 참여했다는 점이 중요한다. 우리 소리를 아끼는 이들에게 이 음반을 꼭 권하고 싶다. 요즘 자신을 명창이라 불러 달라는 이들은 많아도 자신의 소리와의 싸움에 인생을 거는 명창은 많지 않다. 몇 군데 경연대회에서 장원을 하면 벌써부터 명창의 탄생된 듯 야단들이다.
그래서 요즘 소리는 치열함과 살아있는 야성이 보이지 않는다. 기교와 번지르르한 차림새만 있을 뿐 심청이의 절박한 울부짖음은 없다. 비록 잡음이 있지만 한을 품은 소리가 그립고, 우리 소리의 정수가 무엇인지 알고자 하는 사람에게 감히 이 음반을 권해 본다.”
우리의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는 지난해 11월 유네스코가 선정하는 '인류 구전 및 무형 유산 걸작'에 선정되었다. 하지만 한국인들은 진정 판소리가 무엇인지 잘 모른다. 그것은 들어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더구나 전승 형태를 고스란히 담았다는 근세5명창의 소리를 들어 본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다. 외국인이 판소리에 대해 물었을 때 우리는 무엇이라 할 것인가? 이제라도 세기의 명반 <폴리돌 심청전>을 장만하고, 마음속에 깊이 담아 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