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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쥐일 거라고 짐작을 하고 주방 창가로 가서 하수구쪽을 들여다 본 순간, 나는 경악을 하고 말았다. 거기에는 기가 막힌 광경이 벌어져 있었다. 뱀 한 마리가 끈끈이에 달라붙어서 온 몸을 비비꼬고 있었다. 머리부분이 꽃처럼 화사해서 유난스러워 보이는 뱀의 10cm 정도의 몸통이 끈끈이 종이에 쩍 달라붙어 애처롭게 몸부림치고 있었다.
언젠가는 그 하수도 구멍으로 뱀도 들어올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항상 있었으면서도 ‘설마’하는 안전불감증에 더 익숙했던 결과가 그렇게 벌어져 있었다. 그 상황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두려움만 앞설 뿐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 끈끈이 종이는 지난 겨울에 놓아 둔 것이기 때문에 접착력을 마냥 신뢰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 뱀이 그렇게 마냥 몸부림을 친다면, 그 끈끈이에서 벗어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가 없었다.
아무도 없는 집에 오로지 나와 뱀이 팽팽한 긴장 상태로 대적하고 있는 셈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그 뱀의 꼬리에 꼬리를 물고 온갖 뱀들이 다 우리 집으로 들어와 우글대는 것 같기도 하고 뱀이 피부에 스치는 오싹한 느낌과 당장이라도 뱀의 이빨이 내 발등에 꽂힐 것 같은 불안감 때문에 온 몸이 스멀스멀했다.
한편으로는 더 나쁜 상황에 놓이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고 진정을 하면서 남편이 영림이 아빠와 함께 읍내로 예초기 고치러 간다고 나간 것이 얼마 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미치자 나는 숨 넘어 가는 소리로 전화를 걸었다.
“영림이 아빠 같이 있어? 빨리 데리고 집으로 와. 우리 집에 뱀이 들어 왔어. 얼른, 영림이 아빠랑 같이 와, 빨리. 나 무서워 죽겠어.”
남편은 나만큼이나 뱀을 무서워해서 작년에도 우리 집 복도에서 어슬렁거리던 뱀을 보고 기겁을 해서 도망쳤던 전력이 있어서 믿음이 가지 않았다. 영림이 아빠가 함께 있지 않았다면 119 구조대를 불렀을 남편이었다.
반면에 군대 시절 뱀을 잘 잡기로 소문이 났던 화려한 이력과 요즘도 신작로에 사고로 죽어 있는 뱀들의 시체를 주워다가 닭의 먹이로 줄 정도로 뱀을 두려워하지 않는 영림이 아빠였다.
“우리 영림이 엄마는 뱀을 보면 때려잡는다니까요. 시골에 살면 그 정도는 해줘야죠. 그 까짓 거 짱돌 하나 가져다가 대가리를 팍 눌러버리시지. 히히….”
“놀리지 말고 얼른 들어가서 치워달라니까요. 얼른.”
이렇게 여유를 부리는 영림이 아빠와 달리 남편의 얼굴은 긴장된 표정이 역력했는데 그 와중에도 카메라는 챙겨 들고 있었다. 남자들이 뱀을 꺼내 사진을 찍고 뱀이 들어 온 구멍을 살펴보는 동안 나는 바깥에 있었지만 묘한 호기심이 동하는 것도 사실이었다.
우리가 처음 이사를 왔던 5년 전에는 산마다 뱀그물이 쳐져 있었고 온 동네 사람들은 뱀을 잡으러 다녔다. 나는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남편은 우연히 뱀이 가득 든 자루를 차에 싣고 다니는 동네 사람의 차를 탔던 기분 나쁜 기억을 가끔 이야기하곤 한다.
지금은 뱀 그물 설치를 막고 뱀을 잡는 사람들을 단속하기 때문에 뱀의 개체수가 다시 증가하고 있는 모양이다. 작년에 비해 도로에 치어 죽는 뱀도 올해는 유난히 많이 눈에 띄고 올해 벌써 나는 뱀으로 인해 기함을 한 것이 몇 번째인데 오늘 결정적으로 내 전용 공간인 주방에서 뱀과 마주치게 된 것이다.
이러다가 나도 영림이 엄마처럼 뱀을 맨손으로 때려잡는 여전사(?)처럼 변신을 준비해야 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