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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가 통화만 되면 되는 거지….

대학 캠퍼스. 대학생으로 보이는 남녀커플이 재미있다는 듯 휴대폰으로 영화를 보고 있고, 옆에서 또 다른 대학생은 MP3 폰으로 신나게 음악을 듣고 있다. 이때, 끼리끼리 노는 학생들과 동떨어져 하릴없이 벤치에서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하던 복학생이 참다못해 한 마디 던진다.

“너희 꼭 그걸로 영화를 봐야 되겠니?”

그러자 영화를 보던 이 커플, 얼굴 한 번 쳐다보지 않고 당연하다는 듯 "네" 하고 대답한다. 이 대답에 열 받은 복학생, 괜히 그 옆에서 휴대폰으로 음악을 듣고 있던 후배에게 시비를 건다.

“야, 너 집에서 음악 들어!”

그러자 음악을 듣던 이 학생, 도무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왜 그래. 형!”하며 신경질을 낸다. 결국 다시 외톨이가 된 복학생, 이쯤 해서 슬슬 중요한 대사 한 마디를 하고 쓸쓸히 벤치 위에 기댄다.

“전화가 통화만 되면 되는 거지. … 다 폼 잡는 거야.”

최근 TV를 보다가 우연히 이 광고를 보게 되었다. '과연, 요즘 가장 잘 나가는 광고가 이동통신사 광고라더니 얄미울 정도로 잘 만들었구나'하고 감탄했다.

그러나 광고 속 세련되고 자연스러운 이미지 속에 영악하게 숨어있는 상업성에 자꾸만 딴지를 걸고 싶어진다. 아마 내가 광고에 나오는 복학생보다 더 심했을지 모르는 아날로그형 세대라서 그럴까?

이미지 과잉의 시대

문득 지난번 이곳에 썼던 나의 휴대폰 관련 기사가 동시에 제공되었던 모 포털 뉴스사이트에서 기사에 달린 인상적인 댓글이 생각난다.

그 댓글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한 마디로 나의 시각이 요즘 신세대와 한참 동떨어졌다는 것이다.

휴대폰을 새 것으로 사달라고 하기 위해 멀쩡한 휴대폰을 수도 없이 방안에 내동댕이 친 아이의 가슴 속에는 이미 휴대폰 기능의 편리성 유무보다는 '명품'이라는 브랜드 이미지가 자리 잡고 있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이미지라…. 하긴 이미 빛을 잃어가고 있는 문자시대를 지나 탈 문자시대로 접어드는 지금, 넘쳐나는 이미지 과잉 시대 속에서 구태의연하게 상품의 기능성과 실용성을 따진다는 건 시대착오적인 생각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앞에서 말한 광고에 내포한 상징이 과연 '이미지가 멋있다'는 것으로 집약될 만큼 단순하게 생각할 수 있을까? 내가 너무 과민한 것인지도 모르지만 광고의 세련된 영상 속에는 요즘의 트랜드에 뒤처진 복학생과 디지털 세상에 빠져 사람들과의 대화가 단절된 신세대의 모습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여기서 문제는 휴대폰에서 영화를 보느라 인간관계의 소통이 단절된 신세대 연인의 이미지는 멋있게 설정해 놓은데 반해, "전화가 통화만 되면 되는 거지. … 다 폼 잡는 거야"하며 힘없이 벤치에 얼굴을 기대는 복학생의 모습은 매우 불쌍하게 그려졌다는 것이다.

불쌍하다 뿐인가? 말은 안 했지만 금세 복학생 마음 속에 숨어있는 악마가 튀어나와, 자연스럽게 이런 말을 건넬 것 같은 분위기이다.

'거 봐 부럽고 샘나지? 그러니 왜 말 안 듣고 부가서비스도 안 되는 고물 휴대폰을 가지고 다니면서, 시대에 뒤처지고 왕따 당하니!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어서 새 휴대폰을 사고 부가서비스도 가입해, 어서!'

디지털 세상은 넓고 할 일도 많다

벤치에서 휴대폰으로 최신 영화를 못 본다고 해서, MP3폰으로 그 시간, 음악을 듣지 않는다고 해서 이 복학생이 시대에 뒤처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

물론 아닐 것이다. 휴대폰이 아니라도 영화관이나 CD나 인터넷상에서 제공되는 영화 서비스를 통해 그 영화를 얼마든지 볼 수 있고, MP3폰이 아니더라도 다른 기기로 그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방법이 얼마든지 있으니 말이다.

오히려 친구들이 서로 모여서 정겹게 대화를 나눠야 할 장소에서 대화는 안 하고 굳이 작은 휴대폰 액정 화면으로 영화를 보며 자기만의 세상에 빠져 있는 그 친구들을 보며 “오죽 할 얘기가 없고, 즐길 대상이 없으면 그 시간에, 이 날씨 좋은 벤치 위에서 좁은 화면으로 영화를 보려 애쓸까” 하며 웃어넘길 수도 있는 문제일텐데 말이다.

그런데 왜 광고는 오해의 소지가 많은 부정적인 이미지를 끊임없이 확대하여 의미를 부여하고 있을까? 단순히 매출을 위한 상업성 때문에?

각종 디지털 기기에 잘 적응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휴대폰으로 전화만 받는 게 아니고 급하면 메일도 보낼 수 있고 사진도 찍을 수 있고 문자메시지도 보낼 수 있는 유연함을 실생활에 적용하면 참 바람직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넘쳐나는 과잉이미지에 휘둘려 주객이 전도되는 현상은 의도적으로라도 막아야 하지 않을까? 어느덧 광고는 힘없이 축 처진 복학생의 모습을 클로즈업시키며 나직히, 할 말은 하고 넘어간다.

“그래도 당신의 마음 속엔 ○○텔레콤”

나는 정말, 그 복학생에게 정말 되묻고 싶다. "정말 당신의 마음 속에 새로운 이동통신의 화려함만이 자리잡고 있는가요?”라고…. 신형 휴대폰과 부가서비스가 아니어도 디지털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은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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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업을 그만두고 10년간 운영하던 어린이집을 그만두고 파주에서 어르신을 위한 요양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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