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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선일씨의 시신이 조국의 품으로 돌아왔다. 비록 그를 버렸지만 그래도 조국은 조국이기에 그의 시신이 이억만리 타향에서 후송되었다. 참수당한 그의 시신 앞에서 유가족이 오열하는 광경을 보면서 측은지심(惻隱之心)을 느꼈다. “살고 싶다”던 한 청년의 절규가 귓가에 맴돌았고, 오열하는 가족을 보면서 가슴이 미어졌다.
광화문에서 만났던 시민들의 눈가도 젖어 있었다. 어린 아이를 데리고 나온 젊은 부부에서부터 머리 위에 하얗게 눈이 내린 어르신들까지 모두 희생당한 젊은 영혼을 측은하게 여기고 있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머나먼 남의 나라, 이라크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쟁이라고, 쉽게 생각했던 나 자신에 대해 반성을 했다. 전쟁이란 필연적으로 무고한 생명의 희생이 뒤따를 수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전쟁이 종결된 이후에 주어질 경제적 이익을 국익이라는 미명으로 포장했다. 이라크에서 죽어가는 수많은 민간인의 죽음을 우리는 측은하게 여기지 않았다. 전쟁이 일상이 되어버린 그들의 아픔에 무관심했다.
나의 마음은 이내 수오지심(羞惡之心)이 되었다. 왜 조국은 그를 지켜주지 못했나. 왜 우리는 파병을 막지 못했나. 미국은 추악한 전쟁을 언제까지 지속하려고 하는가. 테러로 피범벅이 된 악순환의 고리를 어떻게 끊으려고 이렇게 무서운 일을 저지르는가. 조국의 잘못에 부끄러웠고, 미국의 오만한 전쟁에 증오심이 끓어올랐다. 측은지심을 갖는다면 당연히 수오지심을 가져야 한다.
김선일씨를 피살한 테러조직 역시 응징의 대상이 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모든 이라크인이 테러리스트라고 착각을 해서는 안 된다. 이라크 현지의 기자들이 전해온 바에 따르면 많은 이라크인이 김선일의 죽음을 안타까워 했다고 한다. 추가 파병은 선량한 이라크인마저 모두 적으로 만들어 버릴 것이다.
절대로 베트남 전쟁의 교훈을 잊어서는 안 된다. 아직도 고엽제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고통 받는 베트전 참전용사들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베트남전과 마찬가지로 이라크전 추가 파병은 역사의 오점으로 남게 될 것이다.
이제 시비지심(是非之心)을 가지고 냉정하게 판단하고 행동해야 한다. 언론은 이번 사태에 대해 집요하게 정부와 외교통상부를 추궁해야 한다. 끝까지 진실을 고집해야 하며 다른 어떤 논리도 진실을 덮을 수 없다는 걸 가슴에 새겨야 한다. 은폐와 거짓 조작은 절대로 끼어들 틈을 주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김선일씨를 두 번 죽이는 일일뿐 아니라 슬픔과 분노로 들끓는 시민을 더욱 자극하는 행동이 될 것이다.
옳고 그름을 따질 때, 상식이라는 기준보다 더 정확한 것은 없다. 왜 AP통신은 특종이 분명한 기사를 그토록 쉽게 포기했는지, 왜 외교통상부는 "피랍된 한국인이 있냐"는 질문에 그토록 무성의하게 대처했는지, 왜 가나무역의 사장은 외교통상부를 드나들면서도 피랍사실에 대해 알리지 않았는지… 이러한 사건의 정황들이 추가파병 결정 시기와 기가 막히게 맞아떨어지고 있다는 의혹에 대해 반드시 명명백백하게 밝혀야 한다.
여중생 장갑차 사건이 일어났을 때, 시민은 분노했다. 하지만 미국은 그들에게 무죄를 선고했고, 재판권을 이양하지도 않았다. 불공정한 소파협정으로 인해 일어난 일들이었다. 미국은 그 때나 지금이나 한국인의 정서와 아픔에 대해서 조금도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있다. 오직 세계 최강대국이라는 힘의 논리로 한국정부와 사회를 위협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번만은 미국이 한국의 추가파병 철회에 대해 받아들이는 사양지심(辭讓之心)을 가져야 한다. 이미 미국 내에서도 이라크에서 미군이 철수해야 한다는 여론이 조성되고 있는 이 시점에서, 다른 동맹국들도 철수를 하는 이 상황에서, 전쟁의 양상이 점점 극을 치닫고 있는 이라크로 한국군의 추가파병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가 이번에 추가로 파병을 하면 우리는 미군과 영국군에 이어 이라크에 최대 규모의 군대를 보내는 나라가 된다. 더구나 파병지역으로 결정된 아르빌은 지금 폭탄테러가 일어나는 위험천만한 지역이다.
한 사람이 화살에 맞았다. 무엇보다 그를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까. 화살이 어느 방향에서 날아왔는지, 누가 화살을 쏘았는지… 그 어떤 질문도 다 필요가 없는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가 맞은 화살을 빼내어, 상처를 치료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게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라크인과 김선일씨에게 그렇게 해주지 못했다.
맹자의 가르침대로 우리는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네 가지 마음으로 거듭나야 한다. 또한 광화문에서 들었던 한 시민의 발언처럼 절대로 잊지 말고, 이 6월의 비극이 우리에게 던지는 역사적 질문에 당당하게 맞서면서 파병철회를 주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