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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으로부터 택배가 왔다. 그것은 친정 아버지가 직접 농사를 지은 감자 한 상자였다. 지난 봄 아버지가 올해는 감자를 많이 심었다고 하실 때부터 이렇게 감자를 받게 될 날을 기다리며 장에서 햇감자를 볼 때마다 사고 싶은 유혹을 견뎌 왔었다.
하지만 막상 아버지가 보낸 햇감자를 받아 놓고는 맛을 보기도 전에 비감해지고 말았다. 감자를 통해 농사짓기의 고단함이나 아버지의 따뜻한 정이 느껴진다거나 하는 일반적인 감정에 앞서 늘그막에 우리 아버지가 감자 농사를 지을 수밖에 없었던 내막에 가슴이 저렸기 때문이었다.
우리 아버지는 사범학교를 졸업한 이후, 오직 외길로 평생 교직만을 걸으셨던 분이었다. 당연히 교직의 마지막 종착지인 교장이 되는 것이 삶의 희망이었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하신 분이었다.
나는 어린 시절 방통대를 통해 학사 학위를 따기 위해 새벽마다 카세트 라디오를 틀어 놓고 공부를 하는 아버지를 보며 자랐고 방학이면 승진 점수를 따기 위해 논문을 쓰느라 책상 앞에서 사색에 잠겨 있거나 열심히 글을 쓰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더 익숙하게 보며 성장했다. 아버지의 그런 모습은 지금도 내 뇌리에 깊이 각인되어 있고 어쩌면 내 글쓰기의 원류는 그런 아버지로부터 비롯되었는지 모른다.
요즘 세상은 외길 인생을 걷기가 힘들어 졌다고는 하지만 우리 아버지는 그 외길을 지키기 위해 강직하고 검소하게 사셨던 분이다. 우리 아버지가 근검절약하며 살았던 모습은 ‘대발이 아버지’ 못지않았고 요즘 신세대 짠돌이들도 배워야 할 정도이다. 그런 아버지를 둔 나는 386 세대임에도 불구하고 학교 시절에 운동화 한 켤레 이상을 신어 본 적이 없고 그나마 밑창이 떨어져서 비가 새기 전에는 새 것을 기대할 수 없는 시절을 보냈다. 내가 이런 지난 이야기를 강조하는 이유는 우리 아버지는 승진을 하기 위해서 남의 도움을 받거나 쉬운 길을 택하지 않고 오로지 대쪽같은 교직 생활을 하셨다는 것을 말하고 싶어서이다.
방학 내내 고심하며 쓴 논문이 통과되어 승진 점수가 쌓여갈 때마다 아버지의 꿈도 함께 부풀어 갔고 아버지는 순조롭게 교감을 거쳐 교장 승진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그 사이 아버지의 교직 인생은 40여년이 흘렀고 우리 4남매는 모두 대학을 마쳤고 막내만 빼고 다 출가를 시킨 상태였다.
이해찬 씨가 교육부 장관을 하던 시절, 아버지는 ‘교원 정년 단축’이라는 정책의 첫 수혜자로 40여년 교직 생활의 총정리이며 꿈이었던 교장 의자에 꼭 1년을 앉으셨다가 퇴임을 하고 말았다. 교원 정년 단축이라는 정책만 없었더라면 교장이 아니더라도 5년 정도 더 교직에 남아 있을 수 있었겠지만 아버지는 맛있는 음식을 한 숟가락 떠먹고 입맛만 버린 것 같은 교장 1년 임기를 끝으로 교직을 떠나시고 말았다.
평생 교직이나 공무원 생활을 하며 출퇴근을 하는 사람들은 퇴직을 하고 나면 생체리듬의 변화에 적응을 하지 못해 쓰러지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한다. 우리 가족들은 아버지도 그 과정을 밟을까 봐 노심초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교장 임기에 있던 1년간 아버지는 퇴임 후의 노후 대책을 ‘농사’로 세워 놓으셨다. 아니 아버지는 그 훨씬 전에 교직을 떠나면 농사를 지으시겠다고 입버릇처럼 말씀을 하시더니 주말을 이용해 할아버지께서 물려주신 고향집 마당에 텃밭 농사를 짓고 있었다. 퇴임을 한 후에는 그 규모를 좀 키워서 삼백여 평의 밭을 마련하셔서 매일 그 곳으로 출근을 하신 결과가 오늘 내가 받은 감자이며 가끔 친정에 들를 때면 싸주는 들기름 한 병, 고추 가루 한 봉지 등이다.
그래도 아버지는 퇴임 후의 진로를 빨리 선택하신 탓에 아직까지는 건강하게 지내시지만 정년 단축으로 꿈을 너무 일찍 포기하게 된 아버지 친구분들 중에는 화병으로 와병 중에 있는 분도 있고 대부분 다른 일거리를 찾지 못해 방황하다가 시름시름 앓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김선일씨의 안타까운 희생으로 온 나라 안이 벌집 쑤신 것 같았던 지난주에 이해찬씨의 총리 인준 청문회가 열렸지만 여론의 주목을 받지 못하고 말았다. 무슨 일을 하기 위해서는 희생양이 필요한다. 하지만 그 희생양을 최소로 줄이는 방법을 찾아내는 노력을 하는 사람들이 정치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이해찬씨가 총리가 되든 되지 않든 이제부터는 아무도 희생되지 않는 정책을 펼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