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릉은 세조 이전의 능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화려함이나 웅장함은 찾아볼 수 없다. 이는 조선시대 왕릉이 검소하게 조성되도록 세조 스스로가 "원과 능의 석실은 유해무익하니 석실과 사대석을 쓰지 말라"고 말한 데 따른 것으로 개혁된 왕릉 제도는 이후의 왕릉 조성에 모범이 되었다.
광릉을 지나 광릉내 방향으로 약 2Km 정도 가면 오른쪽으로 봉선사가 위치하고 있다. 봉선사로 가는 2차로에는 아름드리 가로수를 피해 포장된 도로가 있다. 도로보다는 나무의 중요성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옆에 설치된 입간판에서도 '천천히 노거수가 다칩니다'라는 글귀를 만날 수 있다.
봉선사는 조계종 교종본찰로 이곳을 처음 찾는 이들의 시전을 빼앗는 것은 보물 397호로 지정된 '봉선사대종'이 아니라 바로 한글로 쓰여진 '대법당'이라는 현판이다. 또 봉선사 큰법당 뒤쪽 계단에는 신도들이 모셔 놓은 갖가지 동자승과 부처상이 놓여져 있는데 이 또한 좋은 볼거리를 제공한다.
광릉은 서울에서 자동차로 1시간 거리에 위치해 있어 가족과 함께 주말을 이용해 도시락 싸들고 소풍가는 기분으로 가볍게 다녀 올 수 있는 곳이다. 또 수목원 근처에는 고모리 카페마을이 있어 돌아오는 길에 분위기 있는 차 한 잔의 여유를 가질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