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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읍장께서는 어쨌든 모든 일은 유비무환이라고 하시더군요. 또 장군께서 정말로 지원군을 요청해올 수도 있으니 절더러 곧 귀국해서 기마병을 이끌고 오라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저는 본국으로 가서 기마병 3백을 이끌고 대월씨국으로 되돌아간 것입니다. 한데 가서 보니 천둥이가 와 있는 것입니다."
"천둥이가 혼자서 말입니까?"
"별읍장님의 말씀이 한밤중에 말이 울기에 나가보니 천둥이가 대문 앞에 있더라구요."
"오, 천둥이는 그럼…."
에인이 목이 메어 중얼거렸다.
"예, 천둥이는 바로 그곳으로 온 것입니다. 그래서 별읍장께서는 대뜸 장군에게 무슨 일이 있다는 것을 직감하시고 우선 천둥이를 마구간으로 들였답니다. 한데 녀석이 날마다 울면서 보채더랍니다. 어서 자기와 함께 장군님에게로 가자는 것이지요. 별읍장은 또 '곧 강 장수가 온다, 그때까지만 기다려라'고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녀석을 달래느라 애가 다 마르셨답니다."
"그간 별읍장님의 심려가 크셨겠습니다."
에인이 자책하듯 말했다.
"그때까진 그래도 크게 우려하시지는 않으셨답니다. 그런데 그 며칠 후에 또 제후가 와서 장군께서 행방불명이 되셨다고 보고를 했으니…."
그때 은 장수가 불쑥 나섰다.
"흠, 혼자 장군을 찾으러가겠다고 자취를 감추더니 곧장 별읍장께 간 거로군. 하다면 그냥 행방불명만 알렸답디까?"
"인근 어느 나라에서 잡아간 것 같다, 빨리 군사들을 이끌고 찾으러 가자고 채근을 했다오."
"이거야 어디 참아줄 수 있겠습니까? 당장 그자를 잡아들여 문초부터 해봅시다. 무슨 마음으로 일을 이 지경으로 꼬아댔는지…."
"그럼 제후도 천둥이가 거기 돌아가 있는 걸 보았겠군요?"
에인이 은 장수를 저지시키고 강 장수에게 물었다.
"아닙니다. 제후가 방문한 뒤로는 어쩐 일인지 녀석은 아주 쥐죽은 듯 가만히 있더랍니다."
"그래요?"
"예, 녀석이 하도 영물이다 보니 별읍장께서는 필시 무슨 곡절이 있다고 알아차리신 거지요. 그래서 천둥이에 대한 이야기를 일절 하지 않고 제후를 즉시 되돌려 보내면서 엄포를 놓으셨답니다.'소호국에서 곧 기마병이 온다. 만일 그전에 장군을 찾아놓지 않으면 참수를 면치 못할 것'이라구요."
참수란 말에 군사들은 모두 그래야 마땅하다는 듯 눈을 빛냈다. 그러나 에인은 그들의 눈빛을 무시하고 다시 천둥이에 대해서만 물었다.
"그럼 장수께서 별읍장 집에 도착했을 때 천둥이는 어떻게 했소?"
"저희들이 도착했을 때는 어떻게나 크게 울어댔던지 저는 대문에 들어서자마자 금방 알아차렸습니다."
"그랬군요. 그래서요?"
"마구간으로 갔지요. 했더니 녀석이 날 보고는 어서 자기를 풀어달라고 고개를 휘저어대는 것입니다. 그래, 풀어주었더니 마당으로 달려 나와서는 또 어서 떠나자고 보채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녀석은 장수께서 출영한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이로군요. 그래서 앞장을 섰을 것이고…."
"예, 바로 그러했습니다."
에인은 사막까지 따라오며 잠들지 말라고, 천둥처럼 울어대던 녀석을 떠올렸다. 그때 자신이 돌아보지 않자 녀석은 절망적인 상황임을 알아차렸고 그래서 에인을 구할 수 있는 사람은 별읍장 뿐이라고 판단한 후 곧장 그곳으로 달려간 것이 분명했다.
정말 대단한 녀석이었다. 말도 할줄 모르는 것이 어쩜 그 정도로까지 자기 의사를 전달할 수 있는지…. 에인이 넘칠 것 같은 감격을 스스로 꾹 접으면서 강 장수에게 말했다.
"자, 이제 소호국 이야기를 해보시오. 장수께서 기병들을 이끌고 올 때 태왕마마께서도 흔쾌히 허락하셨는지요?"
"예, 그러하셨습니다."
"기병들이 딜문까지 오게 되리라는 것고 알고 계신지요."
"대월씨국에 당분간 주둔했다가 결국은 이리로 출정할 것으로 알고 계십니다."
"그래요? 그럼 저에게 따로 당부하신 말씀이라도 있으셨습니까?"
"예, 태왕마마께서는 장군님에게 마마가 내리신 그 지침을 잘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지침…. 그러자 에인의 머릿속으로 불로 쓰여진 용서가 휙 지나갔다. 그것은 '하늘에는 장소가 없다, 소호 국만이 환족의 나라가 아니다'라는 것이었다. 아아, 내 어찌하여 이제야 참뜻을 깨달았단 말인가. 신족에게는 자기를 자기 마음대로 쓸 수 없는 어떤 지시의 힘이 따로 있다고 말하셨거늘 내 어찌하여 귀국만을 갈망했더란 말인가. 강 장수가 계속했다.
"그리고 재상어른께서는 때가 되면 당신께서 오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아버지 역시 귀국해서 보자는 것이 아니라 이리로 오시겠다고 했다면 애초부터 두 분의 뜻은 같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에인이 다시 물어보았다.
"그럼 별읍장 어른께서는?"
"먼저 그 어른은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딜문이 망한 뒤부터는 대상들이 직접 에리두까지 왕래하면서 물건을 실어 날랐는데 요즘 들어 많은 대상들이 사막의 야만인들에게 피해를 당하고 있다, 그래서 그 손실이 이만저만 아니라구요."
"그래서요?"
"그런데다 북방의 많은 민족들이 이리저리 이동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도 대이동이 시작된 것 같습니다."
"대이동이라니요? 어떤 식으로 말입니까?"
"위에서 치고 내려오면 거기서 또 아래로 치고 내려가면서 서로 장소를 바꾸거나 어떤 민족은 아예 멀리로 무리지어 떠나기도 한답니다."
"우리 형제국들은 어떻습니까?"
"비난국은 이미 이동을 시작했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파내류 1국도 멸망 직전입니다. 잣은 침략에 군사들은 거의 다 죽고 농사 또한 흉년이라 백성들은 가축을 잡아먹으며 근근히 연명하는데, 그럼에도 벌써 굶은 죽은 사람이 속출하고 있다는 소문입니다."
"그래요…. 그럼 별읍장께서는 그에 대한 어떤 대책이라도 가지고 계시던가요?
"예, 환족이 이곳에 큰 도시 하나를 차지해야 한다는 것에는 제후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면 교역에도 안전이 보장되고…."
"그리고 그렇게 되면 이동기에 처한 환족에게도 살 자리가 마련된다고 생각하셨겠군요."
에인은 자기가 대월씨국을 떠나올 때 별읍장이 하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그때도 별읍장은 이동족에 대한 이야기를 강조했다.
"그렇습니다. 어차피 이곳 부족들 중에도 북방으로 치고 올라와서 영토를 장악한 경우도 더러 있고…."
에인은 이제야 정확히 사태가 파악되었다. 강 장수의 이번 행차도 자신을 구출에만 그 목적이 있다기보다 어떤 침략을 전제로 하고 출발한 것이다. 별읍장이 본국에 가서 기마병을 이끌고 오라고 지시한 것도 그에 대한 대비책이었다. 에인이 다시 물었다.
"하다면 강 장수께서도 이번 행차에 모든 준비를 하고 오셨겠군요?"
강 장수 역시 머뭇거리지도 않고 대답했다.
"예, 형제국 군사 3천을 준비시켰습니다. 기마병도 2백이 더 증원될 것입니다.여기서 저나 혹은 전령이 가면 별읍장 어른께서 군장비 일체를 갖추어 당장 출영시켜줄 것입니다."
"......"
"아 물론 모든 결정권은 장군님에게만 있습니다."
강 장수가 에인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으려고 서둘러 변명을 했다. 에인이 주저없이 대답했다.
"좋소이다. 이미 차려진 밥상이라면 더 미룰 것이 없소. 지금 당장 작전 상의로
들어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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