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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귀를 따라서 꽃님들과 나무님들이 만들어준 길을 따라 백호와 바리는 조심조심 앞으로 걸어나갔습니다.
나무님들과 바리와 백호가 자기 앞을 지나가면 곧바로 고개를 쳐들고 하늘을 바라보았고, 꽃님들은 다시 고개를 숙였습니다.
처음에는 땅에 있는 꽃님들이 밟힐까 무서워 까치발로 살금살금 걷는 것이 아주 힘들었지만, 시간이 지나자 불편한 것은 많이 사라졌습니다.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걸어서 발이 익숙해진 탓이 아니었습니다.
나무님과 꽃님들이 조금씩 앙상해 지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시작이었습니다. 줄기만 말라가는 것이 아니라 잎도 바싹 마르고 있었습니다.
햇볕조차 들지 않을 만큼 울창했던 숲은 금방 사라지고 태양이 아래로 곧장 내리쬐는 사막 같은 숲으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주변에는 말라버린 나무들만 가득 했습니다.
그렇게 괴괴하게 말라버린 고목들만 시야에 들어왔습니다.
"아…"
그렇게 말라버린 나무들 앞에서 바리와 백호는 할 말을 잃고 가만히 서있었습니다.
그들을 인도해주던 까마귀는 그 황량한 사막 같은 숲 위를 맴돌다가 방향을 돌려 돌아가려고 했습니다.
바리가 손을 흔들며 말했습니다.
"까마귀야, 잘 가!"
땅바닥에는 말라버린 꽃들이 흉물스럽게 누워있었고, 나무들은 모두 이파리를 벗어버리고 창백하게 시들어 있었습니다.
이곳에서도 성주신을 만나는 것이 쉽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보이는 것은 온통 갈색이 되어버린 나무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바리는 두리번거리면서 성주신님을 찾아 한 발짝 발을 떼었습니다. 그때 어딘가에서 바리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안된다, 그 자리에 서있거라, 움직이면 안된다.”
깜짝 놀란 바리는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주변을 둘러보았습니다.
저 멀리 줄기가 굵은 나무 뒤에서 쑥색 도포를 입은 선비 한 분이 나오시고 있었습니다.
백호는 그 선비를 보자마자 고개를 숙여 인사를 드렸습니다.
그렇게 도포를 입은 선비님은 금방 바리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도포는 온통 풀물이 든 듯 푸른색으로 물들어있었고, 햇빛에 많이 그을린 듯 선비님의 얼굴은 많이 가무잡잡했습니다.
그리고 그분 머리 위로는 검은 제비 한 마리가 날고 있었습니다. 바리가 말했습니다.
“안녕하세요. 바리라고 해요. 성주신님을 만나러 왔습니다.”
성주신님은 다가와 바리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습니다. 성주님이 입고 있는 도포에서 맑은 풀향기가 났습니다.
성주님은 발아래 고개를 숙이고 있는 꽃송이를 어루만지며 말씀하셨습니다.
“이 꽃과 나무들이 다 죽은 것 같아도, 이곳에서는 꽃 한 송이도 죽지 않는다. 단지 이렇게 변해서 신음하고 있을 뿐이지. 언제라도 다시 태어날 준비를 하고 있기 때문에 소중한 생명들이다. 그러니 함부로 밟으면 안된다.”
“예.”
그러면서 바리는 발을 조심조심 다른 곳으로 옮겨놓았습니다..
백호가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호랑이들이 동성군의 구름차를 훔쳤습니다. 일월궁전에 들어갈 때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저희에게 기를 불어넣어 주세요.”
“그 사실은 나도 익히 들어서 잘 알고 있다. 이제 곧 섣달 그믐이 되겠군. 그때가 되면 조왕신과 함께 하늘나라에 올라가야 되겠지.”
“예, 제가 얼른 일을 마쳐야 부모님을 만날 수 있어요. 지금 부모님도 어딘가에서 호랑이로 변해서 살고 계실 거예요. 너무 가엾어요…… 그러니 얼른 저희에게 기를 불어넣어 주세요.”
호랑이로 번해있는 부모님이 바로 눈 앞에 보이는 것처럼 바리의 얼굴은 아주 슬퍼 보였습니다.
성주신님은 바리의 얼굴을 어루만져 주시며 말했습니다.
“서둘지 말아라, 우리가 가야할 곳은 그 길이 아무리 멀어도 언젠가 그 길에 도달하고 마니까.”
그 푸른 도포자락에서 역시 진한 풀향기가 퍼져나왔습니다.
백호가 물었습니다.
“여기 이렇게 시들어있는 나무들은 다 뭡니까?”
“인간계 사람들이 헤쳐놓은 숲에 살던 나무들이다. 길을 만들거나 자기들이 살 집을 짓거나 놀 자리를 만들기 위해 베어진 나무와 꽃들의 영혼이란다. 자기 집을 가진 사람들도 집을 또 짓고 더 크게 늘리고, 자기 놀 곳이 있는 사람들도 숲을 함부로 허물고 산을 깎아서 나무님들을 못살게 굴고 있는 거다. 이 세상은 인간들만 점지되어 태어나는 것이 아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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