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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대로 중앙에 위치한 승강장이 버스를 타려는 시민들로 인해 혼잡하다
강남대로 중앙에 위치한 승강장이 버스를 타려는 시민들로 인해 혼잡하다 ⓒ 김태우
아직 혼란은 끝나지 않고 있었다. 지난 7일 저녁 7시 무렵, 비가 내리는 강남대로의 버스 정류장은 러시아워가 다가오면서 시민들이 붐비기 시작했다. 마치 강 한가운데에 있는 하중도(河中島)처럼 도로 한가운데에 자리 잡은 승강장은 너무 좁아보였다. 우산까지 든 시민들은 좁은 승강장에서 서로 부대끼며 불편함을 느꼈다.

버스를 기다리는 시민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지난 1일 처음 버스체계가 바뀌었을 때와 비교해보면 그래도 많이 개선되었다는 의견을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도 개선되어야 할 사항이 많다며 시민들은 주저 없이 입을 열었다.

우선 시민들은 버스 노선의 홍보 부족을 지적했다. 버스 번호가 한꺼번에 바뀌어서 혼돈을 겪는 거야 어쩔 수 없다고 해도 버스가 서지 않고 그냥 지나쳐버린다는 것이다.

당연히 설 거라고 생각했던 버스가 그냥 지나쳐가면 황당하기 그지없다. 몇 대의 버스를 그냥 지나쳐버린 후에야 정류장을 잘못 알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고, 길 건너편으로 걸음을 옮기면서 짜증이 나는 거야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버스체계 개편을 처음 시행한 지난 1일보다는 덜하지만 아직도 버스 정체 현상과 여러 문제점이 시민의 짜증을 부채질하고 있다
버스체계 개편을 처음 시행한 지난 1일보다는 덜하지만 아직도 버스 정체 현상과 여러 문제점이 시민의 짜증을 부채질하고 있다 ⓒ 김태우
중앙 승강장에 모든 버스가 정차한 지난 1, 2일에는 역삼역에서 강남대로까지 버스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대혼잡이 발생했다. 이에 대한 해결방안으로 중앙 승강장에 정차할 버스와 원래대로 길가에 정차할 버스를 나누어 분산을 유도했다. 하지만 이러한 버스 정류장의 변화에 대한 홍보가 부족했던 것이다.

게다가 검은 글씨로 버스 측면에 찍혀있는 번호는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었고, 노선을 나타내는 동그라미 속의 행선지 역시 마찬가지 불만의 대상이 되었다.

지난번 자동차 번호판을 교체했을 때에도 디자인이 문제가 되었던 적이 있었는데 결국 같은 실수를 반복한 셈이다.

디자인이란 미적인 요소와 기능적인 요소가 결합하여야 하는데, 이런 요소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디자인이 나와서 시민에게 불편을 가중시키고 있는 것이다. 또한 연세가 지긋한 어른들은 4자리 숫자로 되어있는 버스 번호를 인식하는데 고충이 따른다고 털어놓았다.

버스 기사는 이번에 바뀐 버스체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강남대로에서 성남 방면으로 운행하는 버스 기사에게 물어보았다. 기사는 이번 버스체계 개편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홍보 부족을 꼽았다.

기사는 "내리면서 운행카드를 찍지 않아 돈을 더 내야 하는 시민들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며 "버스에 타는 손님들에게 홍보를 하려고 노력하지만 실질적으로 손님 모두에게 같은 말을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고 털어놓았다.

버스 기사는 이러한 불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버스 속도는 버스체계 개편이전의 그것보다 훨씬 빨라졌다"며 "지하철보다 버스가 더 좋다는 이야기도 승객들로부터 나올 정도"라고 말한다.

서울시청 대중교통과에서 나온 직원들이 원활한 버스소통을 유도하고 있다. 하지만 좀 더 근본적인 대책과 버스 체계 개선이 요구된다.
서울시청 대중교통과에서 나온 직원들이 원활한 버스소통을 유도하고 있다. 하지만 좀 더 근본적인 대책과 버스 체계 개선이 요구된다. ⓒ 김태우
강남대로에서 우산도 쓰지 않고 버스의 원활한 흐름을 위해 수고하는 2명의 서울시청 대중교통관리과 직원을 만날 수 있었다.

노선관리과 신대현 팀장은 "시민들의 불편에 대해서는 뭐라고 드릴 말씀이 없지만 조금만 더 참으면 개선되어질 여지가 충분히 있다"며 "서울시의 교통체계가 포화상태에 이른 만큼 새로운 교통 체계의 변화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개선 시점에 대해 묻자 "시민들이 체감할 수 있을 때까지는 2, 3개월 정도 걸릴 거다"라는 말했다. 1, 2주일도 아니고 2, 3개월이라니. 너무 무책임하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려운 대답이었다.

이명박 서울 시장이 인터넷에서 네티즌들의 집중포화를 맞고 시민들에게 오히려 비난성 발언을 했다. 이 시장은 아직도 반성이 부족해 보인다. 시민들의 대중교통인 버스를 새롭게 개편해보려는 의욕은 좋았으나 그 방법이 옳지 않았다.

왜! 한꺼번에 여러 곳에서 시범 운행을 감행한 것일까. 버스 디자인에 관한 시민의 의견을 물어보지 않은 것일까. 권역별 번호제와 달라진 교통카드 사용법에 관해 왜 충분히 홍보하지 않은 것일까.

충분히 홍보했는데, 시민이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말은 어불성설이다. 시민들이 인지하지 못했다면 충분히 홍보하지 않았다고 인식해야 하는 것이다.

'밀어붙이기' 불도저식 행정은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 새로운 버스 체계의 정착을 위해 새롭게 힘을 모으는 지혜가 필요하다. 이제부터라도 늦지 않았다. 감정을 내세운 대응은 사태를 악화시킬 뿐이다. 하나씩, 하나씩 서둘러 시민의 의견을 반영하고 새로운 버스체계를 보완하는 일이 시급하다.

시민이 원하는 것은 그저 기다려달라는 공염불이 아니다. 작은 것 하나라도 개선하려는 의지 자체가 중요하다. 그것만이 시민의 버스를 '불도저식 행정'으로부터 구할 수 있는 방법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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