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이 끝나고 조명이 어두워지면 저택의 벽을 표현한 창살 모양의 막들이 무대 위로 올라간다. 배우들의 무대인사가 끝나갈 때 양파껍질마냥 무대를 채웠던 막들이 차례로 내려오면서 <바냐 아저씨>에서 연출이 무엇을 강조했는지를 확인시켜준다.
감옥의 창살을 연상시키는 저택의 벽은 막이 진행될 때마다 차례로 늘어간다. 관객을 감옥으로 인도하는 것이다. 극이 진행되면서 아름다운 전원생활은 수형생활과 같고 장원을 지키며 세레브라코프 교수를 뒷바라지 했던 바냐와 소냐는 미래가 없는 무기의 형을 살고 있는 수형자의 신세와 같아진다. 국립극단이 공연하고 있는 <바냐 아저씨>는 화려하고 아름다운 무대를 단순한 눈요기가 아니라 극을 해석하는 중요한 열쇠로 이용하고 있다.
체홉의 <바냐 아저씨>는 ‘4막의 전원 생활극’이란 부제를 가지고 있다. 누이의 장원을 관리하는 바냐(이문수)의 매부 세레브라코프 교수(최상설)가 후처인 옐레나(남기애)를 데리고 장원으로 온다. 바냐와 시골의사 바스트로프(오영수)는 젊은 미모의 옐레나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세레브라코프 교수는 장원을 팔 생각을 한다. 조용한 장원에 갈등이 싹튼다. 한바탕 소동 끝에 세레브라코프 교수가 장원을 떠나고 시골의 모두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며 극은 마무리 된다.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지난 7월 5일부터 공연되고 있는 <바냐 아저씨>는 체홉 서거 100주년을 맞아 국립극단에서 준비한 특별공연이다. 신극 도입 시부터 현재까지 체홉의 작품은 우리 연극무대에서 자주 공연되고 있다. 특히 올해는 체홉 서거 100주년이라는 상징성 때문에 이미 몇몇 작품이 무대에 올려졌다. 지난 4월 러시아 연출가 지차트콥스키의 <갈매기>가 예술의전당에서 공연되어 큰 호응을 얻었고 체홉의 <갈매기>를 재해석한 <박제 갈매기>가 서울연극제에 출품되어 공연됐다.
국립극단의 <바냐 아저씨>는 국립극단의 중견 연기자들과 체홉의 고향, 러시아에서 공부한 젊은 연출가의 조화가 잘 이루어졌다. 바이니츠카야 부인을 연기한 백성희를 비롯, 이문수, 최상설, 오영수, 이승옥 등 국립극단의 원로 중견배우들과 옐레나 역의 극단 목화 출신의 남기애는 장광설 같은 대사를 편안하게 처리했고, 자연스러운 앙상블로 보여주었다.
작품을 연출한 전훈은 적절한 소리, 빛, 무대를 이용하여 극을 알차게 만들었다. 막이 시작되기 전부터 들리던 매미소리, 빗소리, 귀뚜라미 소리는 극의 분위기를 충실하게 했다. 특히 이국적 느낌의 기타 음악은 러시아라는 공간적 배경뿐만 아니라 결말의 우울한 분위기와도 잘 어울렸다.
| | | 3만2천원짜리 공연 5천원에 보기 | | | 국립극단 전 공연, 쟁이석 판매 | | | | 막상 공연을 보고 싶어도 비싼 관람료 때문에 머뭇거릴때가 많다. 하지만 국립극단의 수준 높은 공연을 가장 좋은 좌석에서 싸게 볼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국립극단에 판매하는 쟁이석을 사면 된다.
국립극단은 극단의 전 공연을 싸게 볼 수 있는 쟁이석을 판매하는데 <바냐 아저씨>의 경우 3만원의 으뜸석 좌석과 2천원의 프로그램을 포함한 3만2천원의 공연 티켓을 5천원에 판매하고 있다.
쟁이석을 사기 위해서는 공연당일 국립극장 예매처로 가면 오후 2시부터 선착순 20명(1인2매)에게 쟁이석을 판매한다. / 한상언 | | | | |
조명 또한 시간과 공간에 따라 적절히 디자인 되었다. 섬광처럼 번쩍이는 번개, 촛불과 램프에 따라 색과 밝기가 적절히 조절된 조명은 잘 만들어진 무대를 더욱 아름답게 했다.
올해 국립극단은 <뇌우>, <인생차압>, <셰익스피어페스티벌>, <바냐 아저씨>까지 국내외의 고전을 무대화 하는 작업을 계속했다. 연극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고전을 제대로 무대에 올리는 작업이야 말로 국립극단이 꼭 해야 할 일이다. 그것이 우리 연극을 풍성하게 하는 것일 뿐 아니라 연극을 배우는 사람들에게 모델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국립극단이 만든 <바냐 아저씨>는 연극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물론이고 연극을 하는 사람이라면 꼭 볼 만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