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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읍시가 추진하고 있는 농업사 박물관 건립부지로 신태인에 위치한 도정공장이 거론되고 있는 가운데, 고부 지역 고영섭 의원이 고부 관청리의 눌제유지를 농업사 박물관 건립 부지로 재검토해 줄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에 정읍시가 두 지역을 검토 중이며 어느 지역에 농업사 박물관이 설립될 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 과거 눌제유지를 연상케하는 현재의 고부천 수문
ⓒ 이용찬
신태인에 있는 도정공장은 국내 최초의 정부양곡 가공공장으로, 일제시대 농경산업에 일대 혁신을 가져 왔던 정미소이다. 도정 과정을 거쳐 쌀을 얻던 근대사회의 농업과 현대사회로 이어지는 농업의 발전과정을 보여줄 수 있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비교적 온전한 모습으로 남아 있어 정읍시가 소 도읍 가꾸기 사업에 있어 도정공장을 이용해 농업사 박물관을 만들려고 하는 것으로 보인다.

반면 백제시대에 축조된 저수시설 눌제(訥堤)가 있었던 고부면 관청리 일대는 도정공장에 비해 주목할 만한 상징물이 없어 농업사 박물관의 건립부지로는 미약해 보인다. 그러나 이 지역 역시 농경문화 발전의 숨은 문화들이 곳곳에 산재해 있어 농업사 박물관을 건립할 수 있는 요소들이 많아 소개하고자 한다.

▲ 청정천이던 눌제의 모습을 연상케 하는 현재의 고부천 모습이다.
ⓒ 이용찬
고부문화권 보존사업회 은희태 회장이 농업사 박물관 건립후보지로 눌제 유지를 주장하는 근거를 들어보면 쉽게 간과할 수 없는, 이유 있는 지적들이 많다.

대표적으로 눌제 유지는 과거 흥덕, 고창군 부안면을 비롯한 부안의 백산 지역과 함께 동학의 발생과 그 맥을 함께 했던 곳으로 역사적, 학술적인 측면에서 정부차원의 재조명이 시작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 광활한 평야로 변한 눌제의 현모습
ⓒ 이용찬
눌제는 농지가 하천보다 낮은 청정천(天井川)지역으로 고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자연과 싸우며 척박한 환경을 슬기롭게 일구어 왔다.

또 동학혁명이 발생하자 일제는 우리 문화 죽이기의 일환으로 수탈의 역사를 만들어 냈던 동양척식주식회사(東洋拓殖株式會社) 정읍 분소를 눌제유지 앞에 세우기 위해 곡창지대인 이곳 농민들의 땅을 헐값으로 사들여 빼앗았다.

또한 일제는 고부관아가 있던 자리를 허물어 지금의 고부초등학교를 지었는가 하면 당시 고부군에 속한 흥덕과 백산을 고창군과 부안군으로 각각 분리해 고부군을 작은 면 단위로 전락, 고립시켰다. 그 때부터 고부는 인근지역으로부터 고립돼 채 현재까지도 면소재지로 남아 있다. 이처럼 소외되었던 오랜 역사만큼이나 표현하지 못한 고부의 자랑도 많다.

▲ 눌제유지비
ⓒ 이용찬
정확한 축조 시대는 알 수 없으나 문헌에 따르면 눌제는 삼한시대, 마한(馬韓)에 축조되어 김제의 벽골제, 익산의 황등제와 함께 이 나라에서 가장 큰 제방을 막는 삼호(三湖)로 불렀으며 호남지방이란 지명을 만들어 낸 곳이기도 하다.

눌제(訥堤)가 있던 곳에는 현재까지도 과거의 그 흔적을 짐작케 하는 고부천(古阜川)이 흐르고 있으며 이 물은 인근의 영원면과 부안의 백산면을 지나 동진강으로 흐른다.

이곳에 호남의 지명을 낳은 눌제유지비가 세워져 있는데 이 비에는 "고부에서 서쪽으로 10리쯤 되는 이곳 눌제의 규모는 제장(堤長)이 일천이백보(1보는 약 1.5m)이고 주위는 40리나 되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눌제가 1420년 세종 원년에 홍수로 유실되어 농지 600결(현재의 30만평)이 침수하는 등 농경지 침수 문제가 거듭되자 이듬해 당시 감찰사가 근본적인 제방 폐제를 주장하고 나섰다. 그러나 당시 세종은 "8500명만 인원을 투입하면 될텐데 폐제는 당치않다"고 주장, 전 현감인 곽휴를 시켜 다시 눌제 제방을 축조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이후에도 빈번한 침수피해가 발생해 이곳 주민들의 원성이 잦아 중종 초기에 폐제, 논으로 변했다. 현재 이곳은 광활한 평야지로 변해 정읍의 특산품인 단풍미인 쌀을 생산하고 있다.

▲ 보천교의 건축물로 지어진 한옥
ⓒ 이용찬
고부문화권 보존사업회 은희태 회장은 "과거의 고부 면민들은 일제수탈의 현장인 구 동양척식주식회사 창고로 쓰이던 곳에 고부중학교를 세워 학생들을 배출하였으며, 고부 관아 터가 있던 고부초등학교는 그대로 남아 눌제와 함께 살아있는 역사를 전하며 역사적인 재조명이 다시금 이루어지는 날을 기다려 왔다"고 말했다.

은 회장은 "농업사 박물관이 건립되면 전시할 수 있도록 농업발달과정을 볼 수 있는 민속자료들 확보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민속자료들은 은 회장이 고부중학교에서 근무했던 1970년대 말부터 1980년 초반의 것으로 학교 학생들로부터 받아 모아둔 것들과 자신의 집에서 사용했던 것. 분류하면 주생활용품 19종 103점, 식생활 81종 385점, 의생활 44종 256점, 일반생활용품 61종 144점 고 서류 23종 23점, 생업자료 14종 25점, 사진자료 2종 78점, 총 244종 1014점이다.

▲ 동양척식 창고가 있던 자리에 지은 고부 중학교
ⓒ 이용찬
이렇게 모아진 중요 민속자료들은 2002년 당시 고부중학교의 교장으로 있던 이병태 교장의 노력으로 전시관이 만들어져 현재는 동학교 사회 선생인 김현숙 선생이 관리하고 있다. 최근 은 회장은 이러한 중요 민속자료를 활용해 고부 문화보존회를 사단법인으로 만들어 활성화하려는 노력과 함께 고부지역의 홍보에도 적극 나섰다.

▲ 고부 중학교에 보관된 민속자료(과거의 생화용품들)
ⓒ 이용찬
은 회장은 "중국의 문헌 삼국지(三國志)에는 옛날 마한의 기름진 농경지에 관한 기록이 있다. 내용인즉슨 '조선 중엽 실학자 유형원의 반계수록(磻溪隧錄)에서 삼제(三堤)에 저수를 해 놓으면 흉년이 없으며 국세(國稅)의 과반이 호남에서 나온다'고 기록하고 있다"며 "농경문화를 배경으로 한 눌제를 포함, 고부의 가치를 알리기 위해서라도 이곳이 고부 문화의 뿌리를 후대에 전하는 산 교육장이 되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정읍시가 추진하는 농업사 박물관에 우리 농경문화의 발전 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이러한 민속자료들이 활용되기를 바라는 은 회장은 기원전 2~3세기경의 것으로 추정되는 볍씨 자국 토기편이 이곳과 가까운 부안군 주산면 소산 리에서 출토되었던 점 등을 설명하며 "지역의 균형 발전을 위해 농업사 박물관은 고부 눌제 유지에 세워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농업사 박물관이 고부와 줄포를 잇는 고부면 관청리에 위치한 눌제 유지 앞에 지어진다면 고부중학교를 비롯한 고부여중, 관청초등학교, 고부초등학교를 잇는 지역 문화의 균형발전에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주목받지 못한 고부의 현실을 말해주기라도 하는 듯 눌제 앞에 자리한 고부중학교는 전교생이 총 20명으로, 전교생이 18명인 인근 고부여중과 함께 2006년 통폐합을 앞두고 있다.

▲ 이곳의 생활용품들은 종류별로 분류되어 있다.
ⓒ 이용찬
관청초등학교는 지난 2003년 전교생 16명으로 폐교 위기의 학교를 특기, 적성 교육으로 활성화해 올해 전교생 수를 46명으로까지 늘렸다. 그러나 이한규 교장의 노력과 특성화된 교육만으로 이 지역 전체의 발전을 기대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1976년∼1978년까지만 하더라도 고부중학교는 전교생이 2000명이 넘는 24학급의 큰 학교였다. 그러나 1979년 3월 1일, 사립으로 전환한 고부여중에 여학생들로 이루어진 4학급을 보내면서 20학급으로 줄었고, 현재는 전학년 학생이 20명인 작은 학교로 변했다.

동양척식주식회사 창고를 교실로 개축하여 처음 만들어진 고부중학교는 1951년 고부중학교 창립기성회의 결성 이후, 1954년 학교설립 인가와 동시에 수업에 들어가 현재까지 50회 졸업, 총 7700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 농업용 농기구들
ⓒ 이용찬
한때 고부 관청리는 지리적으로 부안군 줄포면과 고부를 잇는 중간 지역에 위치해 교통의 사각지로 불렸다. 그러다가 최근 가까운 줄포에 서해안 고속도로 나들목이 생기면서 호남고속도로와 서해안을 잇는 도로를 지나는 차량의 빈도가 많아져 교통의 요충지가 됐다.

수많은 역사와 민속자료들을 간직한 채 잊혀질 뻔한 고부면 관청리의 가치가 부각되고 있다. 농업사 박물관은 건립되는 해당 지역의 농경문화와 함께 발전한 역사적 애환과 정신이 담겨 있어야 한다.

눌제의 제방 길 위에는 수없이 많은 소금과 쌀을 수탈하는 등 동양척식회사가 저지른 만행의 잔재가 고스란히 남아있다. 일제의 잔재인 일본식 건축물 뿐만 아니라, 구 고부군 농협 자리에는 일제가 쓰던 대형 금고도 아직 남아있다. 또한 보천교 건물을 뜯어다 지었다는 일본식 한옥도 볼 수 있다.

정읍시의 소도시 가꾸기 사업을 통해 이러한 애환의 역사가 있는 고부 지역이 하루 속히 문화적 재조명을 받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과거에 타올랐던 동학의 횃불처럼 살아있는 역사의 산 교육장으로, 그것이 비록 농업사 박물관이 아니라 하더라도, 다시금 피어나는 꽃들처럼 이제는 고립된 지역이 아닌 살아있는 교육장으로 새롭게 주목할 수 있는 지역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 이곳은 작은 박물관을 연상케 하는 500여 종 이상의 민속자료들이 산재해 있다.
ⓒ 이용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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