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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7시쯤 거실 텔레비전 수상기 위에 있는 전화기의 신호음이 울렸다. 가까운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내가 전화를 받아야 하는 것은 당연지사.
"여보세요."
송수화기를 집어든 나는 이 말 한마디만 했다. 이 말 한마디 밖에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말없이 송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전화를 받구 왜 아무 말두 안 헌디야?"
주방에서 아내를 도와 아침 밥상을 놓으시던 어머니가 물었다.
"저쪽에서 아무 말두 안 허니께유."
"저쪽에서 아무 말두 안 허다니…? 그럼, 잘못 걸려온 전화란 말여?"
팔순을 넘기시고도 눈치 빠르신 것은 조금도 변함이 없는 어머니를 보며 나는 속으로 탄성을 삼켰다.
"그런개비유."
"저쪽에서는 아예 츰부터 아무 말두 안 허담?"
"왜요, 한마디는 허더라구요."
"뭐라구?"
"어, 전화가 잘못 걸렸네! 허구요. 누군지는 물르지먼 사나이 대장부가."
"그러구선 이내 전화를 딱 끊었구먼."
"그런 거지유."
그때 아내가 한마디 거들었다.
"그러니께 말 뭇허는 사람이 전화를 건 건 아니구먼요."
"말 뭇허는 사람이라면 듣지두 뭇허는 사람일 텐디, 그런 사람이 워떻게 전화를 건디야?"
"그러니께 허는 말이지요."
그러며 아내는 웃었다. 어머니가 또 말을 이었다.
"하여간 그런 사람들 많어. '미안헙니다'라는 말 한마디가 그렇게두 어려운가. 그 말 한마디를 허면 혀가 닳기라두 허나….
"그러기나 말예요."
어머니나 아내의 그런 말을 귀 너머로 들으며 나는 다시 컴퓨터에 열중했다. 잠시 후 또 전화기의 신호음이 울렸다. 주방 쪽 골방의 방문 앞에도 전화기가 있지만 이번에도 내가 받았다.
"여보세요."
그리고 나는 곧 반색을 하며 "예, 고맙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라고 말하며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무슨 전화길래 그렇게 기분 좋은 얼굴루 고맙다구 헌디야?
어머니가 또 관심을 표했다.
"아주 고마운 전화예요."
"그런 전화를 그렇게 금방 끊어? 무슨 전환디 그려?"
"실은 또 잘못 걸려온 전화였어요. 오늘 아침은 참 이상허네요."
"그런디 그 사람헌티 고맙다는 말을 허여?"
"그럼요. 당연히 고맙다구 헤야죠."
"왜?"
"저쪽이서 뭐라구 혔는지 아세요? 젊은 여자였는디요. 상냥헌 목소리루 '전화가 잘못 걸렸네요. 죄송합니다' 허더라니께요."
"그래갖구 외려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는 말이구먼?"
"그럼요. 얼마나 고마운 일이래유. 거기다가 나헌티 이런 좋은 마음을 갖게 헤주었으니, 그것두 얼마나 고마운 일이래유. 그래갖구 고맙다는 말에다가 좋은 하루 되시라는 인사까지 덤으루 헤준 거지요."
그러자 아내가 또 거들었다.
"그럼, 저쪽에서는 되루 주구 말루 받은 셈이네요?"
"그렇게 되나?"
"호호, 아침에 남의 집에 전화 한번 잘못 걸어갖구, 고맙다는 말에다가 축복까지 받었으니, 누군가 횡재했네."
"횡재?"
"그럼요, 횡재지요. 꼭 물질적인 것만 횡잰가요?"
"그럼 나는 아침에 잘못 걸려온 전화 한 통 때문에 어느 모르는 사람에게 횡재까지 안겨 주었으니, 나도 꽤 괜찮은 사람이구먼 그려. 안 그런감?"
"그럼요.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요."
"그게 결코 어려운 일은 아닐 텐디…. 아무튼 오늘 아침은 기분 좋게 시작헌 아주 좋은 아침이구먼 그려."
그리고 우리 가족은 모두 웃었다. 막 늦잠에서 깨어난 아들녀석이 영문을 몰라 아침의 즐거운 웃음에 합류하지 못한 것이 좀 아쉽긴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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