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도착한 곳은 표선 제주민속촌박물관이었다. 제주의 남쪽 끄트머리에 있는 표선은 해수욕장이 있어서 그런지 바다냄새가 났다. 특히 제주민속촌박물관은 4만7000여 평의 넓은 대지에 100여 채의 전통가옥과 1000여 점의 민속자료가 있는 박물관이다. 따라서 과거와 현재 미래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민속'은 민족의 얼로써, 시대와 환경에 적응하여 변화하면서 대대로 전승되는 생활문화이다. 그런 의미에서 민속박물관은 과거를 살아왔던 사람들의 얼과 사상을 담은 생활양식과 문화를 느껴볼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특히 제주민속촌박물관은 조선말 1890년대를 기준 연대로 제주도민이 생활하던 집을 돌 하나 기둥 하나에 이르기까지 그대로 옮겨와 복원해 놓은 곳이다. 제주 목사가 송사를 보면서 행정을 하였던 '제주 영문'에 들어서자 시원스레 품어대는 인공폭포와 빨간 연꽃이 오는 이의 발목을 붙잡았다. 특히 '제주영문' 앞에 비치해 놓은 드라마 '대장금'의 사진은 호기심을 자아내게 만들었다.
제일 먼저 방문한 마을은 산촌마을이었다. 산촌마을에 들어서자, 옹기종기 모여있는 초가가 19세기의 '민속'을 말해 준다. 초가는 서로가 얼굴을 맞대고 있었다. 마당 한 켠에는 절구와 연자방아 등이 적적함을 달래 주는 듯했다. 산촌마을은 해발 300미터 이상의 준평원 지대에 형성되어 있으며 반농 반목의 생활 형태를 보인다.
주인이 없는 산촌마을은 안방문과 부엌 외양간의 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네 집과 내 집의 구분도 없었으며, 네 것과 내 것의 구분도 없어 보였다. 다만 연결된 것은 초가와 초가의 지붕뿐이었다. 그리고 뫼비우스의 '띠'처럼 엮어진 지붕의 고리가 서로서로 띠를 형성하고 있었다. 경계선으로 담을 쌓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모습과 비교가 되었다.
특히 막살이 집과 목축업의 집. 사냥꾼의 집, 외 기둥 집들을 방문하면서 참으로 고요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텃밭에서 여무는 옥수수처럼, 빈 공간에는 누군가가 가꾸어 놓은 채소들이 장마 끝에 여물어 가고 있었다.
"고요하고 적적한 것은 자연의 본래 모습이다"고 말한 법정스님의 '홀로 사는 즐거움'이 생각났다. 가지런히 놓여진 장독대 뒤로 다정다감하게 쌓여진 돌담이 제주민속촌 박물관에서 가장 여유롭게 보이는 풍경이다. 그리고 그 돌담 밑에 피어 있는 맨드라미 해바라기 봉숭아꽃이 여름의 절정을 이루고 있었다.
부엌입구에 있는 물 허벅이 당시의 생활상을 말해 준다. 물 허벅은 과거 제주에는 수도가 설치되기 이전에 멀리서 때로는 이웃마을에서 물을 운반하기 위해 마련된 중요한 생활 용기의 하나이다. 물 허벅은 운반할 때 물이 넘치지 않도록 부리는 좁게 만들고 허리는 불룩한 형태로 조상의 지혜가 담겨 있었다.
잘 익은 옥수수가 초가의 운치를 더해 주고 있었다. 알이 통통하게 여문 옥수수의 농부의 마음인양 빈틈이 없다. 아마 다음해에 종자로 쓰게 위해 남겨 놓은 것일 게다.
해발 100미터에서 300미터 사이에 분포되어 있는 중산간 촌을 방문할 차례이다. 중산간 촌은 구릉 평야지역으로 농업 위주의 생활을 했다. 옛날 모슬포와 성읍리의 현청이 세워졌던 곳도 이런 마을이었다 한다. 중산간 촌에는 비교적 많은 초가가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돌담너머로 보이는 이웃집의 풍경이 너무나 아름답다. 빨갛게 피어있는 봉숭아꽃은 시집간 누나를 기다리듯 그리움으로 가득하다.
그리고 초가에 피어 오른 하얀 박꽃이 촘촘히 엮어진 초가의 띠를 붙잡고 덩굴을 키워 간다. 아마 하얀 박꽃은 보름달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 하늘 천 따지 검을 현….
산간마을에 글 읽는 소리가 메아리 쳐 온다. 어디서 나는 소린가 귀를 기울여 본다. 열린 문 사이로 보이는 곳이 사당이다.
종가집과 토호가 유배소, 서당, 한약방, 대장간, 남부농가 등을 차례로 방문했다.
종가집 앞에는 청사초롱이 바람에 흔들린다. 청사초롱 앞에 수호신처럼 버티고 서 있는 돌하르방은 언제 보아도 우직하다. 4대 조상을 모시는 사당이 있는 종가집은 전통 혼례를 체험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었다.
해발 100미터 이하의 마을에는 어촌이 형성되어 있다. 어촌 마을에 들어서자, 짭쪼름한 바다 냄새가 코끝을 스미는 듯하다. 금방 해녀가 잡아 올린 소라와 해삼이 망사리에 담겨 있다.
숯과 고추. 미역을 문간에 매달아 놓은 대문 앞에서 발걸음을 멈춘다. 이 집에는 분명 탄생의 기쁨을 맛보았으리라. 나보다 성질 급한 신혼부부 한 쌍이 주인의 허락도 없이 먼저 들어가 기웃거리고 있다.
제주는 섬이라는 자연적 특이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많은 신들을 모셔왔다. 따라서 다양한 민간 신앙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곳이기도 한다. 그래서 인지 무속신앙촌에는 점집, 심방집, 처녀당, 포제단, 미륵당, 해신당, 본향당 등이 있었다.
4만7000여 평의 대지를 한바퀴 돌아보고 나니, 다리가 아파 왔다. 제주민속촌박물관의 초가를 배경으로 독자와 함께 사진을 찍기도 하고, 당시 제주인들의 인내와 지혜를 말하기도 했다.
제주민속촌박물관 한가운데 서 있는 정자에 올라서니 제주의 남쪽 온 동네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하얀 순백의 백합꽃이 핀 마당을 빠져 나오는 순간 내 귓가에는 할머니와 손자의 다듬이 소리가 들려왔다.
뚝딱뚝딱. 뚝딱뚝딱.
제주민속촌에서 울려 퍼지는 방망이 소리는 사색의 즐거움에 리듬을 더해 주었다, 그것은 분명 아날로그의 접속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