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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내가 했던 그들의 인사말 '좀 리업 수어'와 '수어 스다이'가 어떻게 다르냐고 물었다. 전자는 웃어른에게 정중하게, 후자는 친구 사이에 가볍게 나누는 인사말이라고 한다. 우리말의 '안녕하세요', '안녕' 정도 되는 말인가 보다.
캄보디아에서 온 교사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게 되었다. 내년에 캄보디아에 세워질 기능 대학의 교사로 뽑힌 이들이 교육을 받으러 온 것이다. 이들은 우리 나라에서 4개월 동안 교육을 받으면서 각자의 전공- 외식 조리, IT, 관광- 외에 공통으로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배우게 된다고 한다.
첫 시간이라 자기 소개를 하는데 이들은 지난 학기에 내가 가르쳤던 대학생들보다 훨씬 능숙한 영어를 구사한다. 캄보디아에선 대개 열 살 정도에 영어를 시작한다는데 최근 들어선 우리 나라와 마찬가지로 그 연령이 낮아져 여섯 살만 되어도 영어를 시작한다고 한다.
이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게 된 나는 그동안 배운 한국어 교사 과정을 실습하게 되어 내심 많이 흥분되어 있었다. 마치 운전을 배우고 있는 사람이 조교 없이 혼자서 운전대를 잡았을 때의 짜릿한 심정이라고나 할까.
한국어의 첫 수업을 위해 내가 준비한 자료는 한글 자, 모음의 플래시 카드와 포스터였다. 캄보디아 학생들은 지난달 하순경에 왔으니 이제 채 한 달도 안 되는 '완전 초보'인 한국어 학습자들이다.
그런 만큼 한글을 처음 깨치는 어린 아이로 간주하여 나는 그들을 엄마된 심정으로 가르치기로 했다. 또한 우리말과 우리글을 낯선 외국인들에게 가르치는 만큼 사명감을 가지고 애국자의 심정으로 가르치기로 했다.
첫 수업은 한글 플래시 카드와 포스터에 나오는 자, 모음을 큰 소리로 읽으면서 시작되었다. 잘 쓰지 않고 발음하기 어려운 '기역, 니은… 피읖, 히읗' 대신에 '가, 나… 파, 하'로 읽게 하니 큰 소리로 잘 따라서 한다. 한글을 몇 차례 읽은 다음 기본적인 한국어 표현도 함께 가르쳤다.
안녕하세요?
저는 OOO입니다.
저는 캄보디아에서 왔습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미안합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한국어에 대해 '완전 초보자'인 이들은 캄보디아에서 어려운 시험을 통과하여 한국에 온 엘리트답게 아주 똑똑하다. 더구나 이들 중에는 미리 책을 구입하여 혼자서 주경야독(?)으로 공부를 한 친구도 있어 감동을 받았다.
'찬드라'가 바로 그 감동의 주인공이다. 그는 열 두 명의 일행 가운데 '주머니 속 송곳(낭중지추)같은 존재'이다. 첫날 내가 가르친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대신 그는 '정말 고마워요'라는 표현을 쓴다. 어디서 배웠느냐고 물으니 다른 친구들이 대답을 한다.
"한국에 온 첫 날부터 잠도 안 자고 한국어 공부를 해요."
될 성 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다르다더니 그는 내 클래스의 '다른' 떡잎이다.
맹자는 '군자삼락'의 하나로 천하의 영재를 얻어 가르치는 즐거움을 꼽았다. 그런데 외국인에게 우리말을 가르치는 일은 그런 기쁨 외에 우리 나라를 다른 나라에 알리는 작은 '애국의 길'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첫 날, 첫 수업을 시작하면서 나는 당당한 '한국어 원어민'의 자격으로 한국어를 가르쳤다. 이 수업은 다음 달 중순까지 계속될 것인데, 우리말을 가르치는 일이 그리 녹록할 것 같지 않다는 불길한 조짐(?)이 여기저기서 감지된다. 물론 보람 있고 흥미로울 거라는 기분 좋은 예감 역시 내 머릿속을 휘감고 있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