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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행기로 이동하는 연주양
보행기로 이동하는 연주양 ⓒ 김재경
몸은 말짱한데 뇌를 다쳐 병원치료를 받았다. 치료 후 호전되는 듯해서 퇴원했지만, 연주양은 성격이 과격해지고 종종 집을 뛰쳐 나가는 정신분열증을 앓았다. 파출소를 통해 정신병원에 수용되며 악몽이 시작되었다.

병원에 장기간 누워 있으며 힘줄이 굳어지고 하반신은 기능을 잃어갔다. 독한 약물로 이가 모조리 삭아 버렸다. 어머니는 억세게 삶의 끈을 부여잡고 악착같이 일했던 식당일을 접고 연주양의 병 시중에 매달렸다.

구세주가 된 보건소.

어머니는 연주양에게 치아를 해주고 온갖 수단방법을 다 동원했지만, 어린이 수준으로 떨어지는 지능과 하반신 마비는 속수무책이었다. 가슴이 숯검정처럼 타 들어가던 순간 동안보건소 간호사가 정신분열1급 장애인 연주양을 방문했다.

간호사는 오랫동안 정신질환으로 두문불출하고 있던 연주양의 부모를 설득, 만안 보건소 정신보건센타 프로그램에 참석시켰다. 만안 보건소까지 연주양을 동행하려면 3층 빌라에서 업고 내려와야 했기에 인력과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며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연주양은 명랑하게 옛 모습을 찾아가고 있었지만, 일주일에 한 번 출석도 버거운 상태였다. 이동할 때마다 난리법석이지만 빠르게 변화되는 연주양의 모습을 지켜보며 가족들은 안양6동 만안 보건소 근처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어머니와 동행
어머니와 동행 ⓒ 김재경
아파트 경비원인 아버지의 수입으로 생계를 꾸려야 했던 어머니는 연주양을 아기처럼 유모차에 태워 재활센타까지 동행했다. 힘겨운 모녀의 동행을 보고 보건소에서 휠체어를 대여해 주었다.

다리가 된 스쿠터

유모차보다는 훨씬 편리했지만, 휠체어는 항상 밀어야 하고 만안구의 도로 여건상 불편이 많았다. 이 때 삼영약국 (안양1동)의 안병호 약사가 "가정 형편이 어렵고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에게 주고 싶다"며 스쿠터 1대를 보건소에 기증을 했다.

김미덕 간호사는 "그 스쿠터를 김연주양에게 주면 어떻겠느냐"고 제의, 보건소 직원들은 흔쾌히 만장일치로 연주양에게 주는 것을 수락했다. 연주양은 스쿠터를 타며 세상을 맘껏 누빌 수 있는 새로운 다리를 얻었다. 스쿠터에 앉은 순간만큼은 세상에서 최고가 된 기분이었다. 스쿠터를 몰고 나가면 노인들은 "어디서 샀느냐"며 부러워한다.

먹고살기 급급해서 엄두도 못 냈던 소중한 스쿠터를 기증받았지만, 연주양이나 가족들은 기증자가 누군지도 모른다. 기증자는 인터뷰조차 완강하게 사양했다. 보건소 유선희 약사를 통해 "추가적으로 필요한 분이 있으면 일년에 1대 정도는 더 기증할 생각이라"고 뜻을 밝힌 것이 전부다.

김양의 어머니는 "스쿠터, 너무 좋아요. 일일이 안 밀어도 되고 연주가 좋아하니까 좋고, 무슨 말로도 고맙다는 말을 표현할 수가 없네요"라고 말했다. 스쿠터를 기증받으며 연주양의 하루 하루는 몰라보게 달라지고 있었다.

우울증에서 쾌활한 성격으로 바뀌었고 체중도 조절하고 한방치료나 재활 훈련에도 적극적이 되었다. 스쿠터와 함께 시작하는 연주양의 하루는 빈틈없이 빡빡한 일정이다. 화, 목은 수리 장애인 복지관에서 수영을 배우고, 월, 수, 금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재활 프로그램 (차 모임. 미술. 컴퓨터. 한문. 영어. 비쥬공예)에 신이 났다.

스쿠터를 주차하는 어머니
스쿠터를 주차하는 어머니 ⓒ 김재경
어쩌나 보려고 어머니는 "힘든데 오늘 하루만 쉬자"고 하면 "꼭 가야 된다"며 먼저 설치는 연주양이다. 스스로 밥 먹고 옷도 입지만 목욕시키고 머리를 묶어 주는 것은 언제나 어머니의 손길이 필요하다.

작은 언니(30)는 "장애자일수록 깨끗하고 단정해야 된다"며 주머니를 탈탈 털어서 예쁜 옷을 도맡아서 사준다. 그런 언니가 연주양은 한없이 고맙기만 하다. 연주양은 "비쥬공예 시간에 만든 예쁜 팔찌와 목걸이, 반지, 귀걸이를 언니들에게 선물할 때가 제일 기쁘고 행복해요"라고 말한다.

즐거운 영어시간

인터뷰 도중 연주양이 영어시간이라며 황급히 스쿠터를 이동하기에 따라 나섰다. 교실에는 20여 명의 장애우들이 카세트에서 흘러나오는 선율을 따라서 유인물을 보며 팝송을 부르고 있었다. 연주양은 영문으로 된 문장에 한글로 토달아 놓은 유인물을 꺼냈다.

"영어공부 어렵지 않아요"라고 묻자 "영어는 잘 모르지만, 따라서 하니까 재미있어요"하고 아이처럼 싱글벙글하며 대답한다. 장애우들은 통문장 영어를 술술 잘 읽어 내려갔다. 연주양의 책상에는 학습교재인 '행복한 동행'과 한문, 영어, 일기까지 쓴 노트가 있었다. 일기장을 펼쳐보니 하루하루의 일상들이 꼼꼼히 기록되어 있었다.

"2004년 3월 9일. 화장실 문을 열고 들어가려고 하니까 잘 안 되었다. 그 이유가 운동인지 몰랐다. 이제부터 얼굴에 인상을 쓰지 않고 환하게 다녀야겠다고 생각한다"

서툰 필체지만 연주양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외롭지 않은 점심시간
외롭지 않은 점심시간 ⓒ 김재경
수업이 끝나자 "고맙습니다. 행복하세요"라며 박수 치는 연주양이 천진스러워 보인다. 동료 장애우들은 연주양의 턱에 생긴 멍에 대해 인사를 나누며 식당으로 향했다.

동료들이 빠져나간 텅 빈 교실, 무슨 과목이 재미있느냐고 물었다. "다 재미있다니까요"하며 활짝 웃는다.

즐거운 점심시간

연주양이 비닐봉지 안에서 도시락을 꺼낸다. 찝찔한 반찬 냄새가 학창 시절의 향수를 불러오고 있을 때였다.

"엄마가 싸 주셨어요."

잡곡밥에 깻잎, 김치, 불고기가 든 플라스틱 뚜껑을 열며 연주양은 필자에게 도시락을 권한다. 순간적으로 혼자서 식사하는 모습이 쓸쓸할 거라고 생각되었다. 그 때 한 간호사가 연주양 곁에서 도시락을 펼친다. 간호사는 "환경이 이렇게 만들어 주었어요"라고 말했지만 연주양을 배려한 넓은 마음이리라.

함께 식사하던 간호사는 "연주씨가 여기 오는 것을 좋아해요. 표정도 밝아졌고, 언어 발음도 많이 좋아졌어요. 글도 잘 쓰고 그림도 잘 그리고... 몸이 불편한데도 무궁무진한 에너지가 표출되고 있어요. 기능이 일반인과 다른 동료들과 접하며 서로 비교하고 어울리며 나날이 발전하는 모습을 보면 프로그램이 도구라는 생각이 들어요"라고 말한다.

지나가던 간호사가 "나도 한 입 줄래"하니 연주양은 얼른 불고기를 집어서 간호사의 입에 넣어준다. 활짝 웃는 모습이 어린이처럼 티없이 밝기만 한 연주양이다.

연주양은 "스쿠터를 타니까 편안해서 좋고, 여기 나와서 사람들과 얘기 하니까 좋고, 과자도 나눠 먹고 정말 행복해요. 그런데 그분(기증자)만나면 꼬옥 '감사합니다.'라고 말하고 싶어요" 라고 말한다.

익명을 요구한 기증자와 수혜자인 연주양의 이야기는 메마른 세상을 향한 청량제이자 아름다운 메시지가 되어 진한 감동과 함께 잔잔한 여운을 남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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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기- 인간 냄새나는 진솔한 삶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현재,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이며 (사) 한국편지가족 회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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